외부 낙하산보다 황창규 회장 측근 더 경계…“통신업 전문성? ‘탈 통신화’가 업계 트렌드”
서울 KT 광화문빌딩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황창규 회장의 뒤를 이을 KT 차기 회장 선임절차가 본격화됐다. KT는 지난해 정관 변경을 통해 회장 선출 방식을 2단계에서 4단계로 강화했다. 우선 지배구조위원회에서 회장 후보자를 고르고 후보심사위원회에서 심사를 진행, 이사회에서 최종 대상자를 선정해 주주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한 것.
KT지배구조위원회는 지난 10월 23일부터 11월 5일까지 외부 회장 후보 공모접수를 진행한다. 이어 KT는 회장 후보자 발굴을 위해 전문기관 추천도 받을 예정이다.
이에 앞서 KT의 ‘차기 CEO(최고경영자) 선임 프로세스’는 지난 4월부터 착수, 사내 후보군은 이미 검증 작업을 마치고 후보가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KT 현직 내부임원 중에서는 이동면 미래플랫폼사업부문장(사장)과 구현모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사장), 오성목 네트워크부문장(사장), 박윤영 기업사업부문장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황창규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구현모 사장의 경우 황 회장의 첫 번째 비서실장을 지낸 뒤 3년 만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해 눈길을 끌었다.
KT 전직 임원들도 후보물망에 올랐다. KT 사장과 종합기술원장을 역임하고 올해 초까지 포스코ICT 사장을 지낸 최두환 포스코ICT 사내이사와 KT사업본부장(전무)을 지내고 현재 삼성SDS를 이끌고 있는 홍원표 삼성SDS 사장, KT 개인고객부문장(사장)을 역임했으며 회장 직무대행을 맡기도 한 표현명 전 롯데렌탈 사장 등이 꼽힌다. 임헌문 전 KT 매스총괄 사장과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전 KT IT기획실장), 노태석 전 서울로봇고 교장(전 KTIS 대표) 등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KT의 공모를 통한 외부 인사들도 떠오른다. 노무현 정부 시절 나란히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노준형 전 장관과 유영환 전 장관이 후보로 거론된다. 이어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도 물망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정동채 전 장관이 직을 수행한 노무현 정부 당시는 방송통신업무가 문광부 관할이었다. 또한 국회의원 시절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상임위원도 맡았다.
후보군이 추려져가면서 차기 회장을 어떤 인물이 해야 하는지 자질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가 ‘낙하산 논란’이다. KT는 민영화된 지 17년이 넘었지만, ‘오너 없는 회사’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시달려왔다. 실제 2009년 이석채 회장, 2013년 황창규 회장은 외부 출신으로, 정권과의 관계에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차기 회장 선출 과정에서는 ‘외부 낙하산’보다 ‘황창규 낙하산 인사’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제기된다. 지난해 회장 선출 방식 정관을 변경할 때도 KT 안팎에서는 사실상 내부 승계에 유리한 형태로 바꿨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4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황창규 KT 회장. 사진=최준필 기자
이러한 선임 개입 발언이 논란이 되자 지난 4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열린 ‘KT 화재원인 규명 및 방지대책에 대한 청문회’에서 황창규 회장은 “차기 대표는 KT 이사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권한이 없다”며 “(차기 CEO 선임 절차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입장에도 불구하고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KT 경영기획부문장 김인회 사장이 사내이사로서 지배구조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회장후보심사위원회도 사외이사 전원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김 사장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김 사장은 황 회장과 같은 삼성 출신이자 황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김 사장은 황 회장의 비서실장을 거쳐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사장이 황 회장의 의중을 전달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혹이 적지 않다.
KT 새노조(위원장 오주헌) 관계자는 “황창규 회장 이후 KT는 불법정치자금 사건, 경영고문 불법위촉, 계열사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또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딸 등 채용비리 사건도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차기 CEO는 내부·외부인사 관계없이 황창규 회장의 후계자가 아닌 적폐경영을 청산하려는 의지를 가진 이가 선출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거론되는 내부인사들은 모두 황창규 회장의 측근들이다. 황 회장이 임기 이후 자신의 신변을 보호해줄 이들을 내세운 것이다. KT의 개혁을 이끌 CEO로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의 낙하산보다 황창규 낙하산 인사를 더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구현모 사장과 오성목 사장 등은 아현국사 화재, 정치자금법 위반 등 KT를 둘러싼 비리 의혹에 연루돼 있기도 하다.
이어 통신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CEO로 와야 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KT는 사기업이기 이전에 국가기간망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성을 위해서도 통신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가 차기 회장에 올라야 한다”고 전했다. 따라서 KT를 잘 알고 경영할 수 있는 내부인사가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의견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KT는 더 이상 통신회사만이 아니다. 금융·부동산·게임·문화·스포츠 등 계열사가 40여 개에 이른다. 또한 현재 KT는 케이(K)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 딜라이브 인수 합산규제, 정치인 후원 의혹에 대한 미 증권거래위원회 회계 조사 등 긴급 현안이 산적해 있다”며 “이에 KT에는 통신업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거시적 관점을 가지고 KT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영향력 있는 CEO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통신 라이벌 SK텔레콤은 ‘탈 통신’을 추진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9월 초 SK텔레콤 월간보고 자리에서 “SK텔레콤에서 통신사업자라는 인식을 주는 ‘텔레콤’이라는 단어가 사명에서 제외돼야 한다”며 “이동통신사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하루빨리 데이터와 AI(인공지능) 사업 중심으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K텔레콤이 통신뿐 아니라 AI,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5G통신, 커머스, 보안서비스 등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
KT 역시 지난 10월 30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통신사에서 ‘AI 전문기업’으로 탈바꿈을 선언했다. 5G기술과 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에 AI를 전방위로 적용해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기 회장에 통신업에 대한 전문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KT는 올해 안에 차기 회장을 내정하고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정식 임명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차기 회장 자리를 둘러싼 ‘왕좌의 게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