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단순화와 구조조정으로 수익 확대…‘대형마트의 혁신’은 지켜볼 대목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3개 법인 통합에 나선 것과 관련, 지배 구조를 단순화하고 구조조정을 본격화해 수익성을 높이는 등 투자금 회수를 위한 ‘알짜 매물’로 만들려는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사진=홈플러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홈플러스(주)는 홈플러스스토어즈(주)와 홈플러스홀딩스(주) 합병을 이사회에서 결의했다. 연내 홈플러스가 모회사 홈플러스스토어즈를 합병한 뒤 2020년 2월 내 1단계 합병법인이 지주사 홈플러스홀딩스를 합병하는 두 단계로 진행할 예정이다.
홈플러스는 1997년 삼성물산 유통사업부문에서 출발해 1999년 영국의 테스코와 합작한 뒤 2008년 홈에버(옛 까르푸)를 인수하며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다. 통합을 마무리하면 홈에버 인수 뒤 홈플러스스토어즈로 분리 운영하던 32개 점포는 홈플러스로 통합, 총 140개 점포가 하나의 법인이 된다. 지배구조도 기존 ‘MBK-홈플러스홀딩스-홈플러스스토어즈-홈플러스’에서 ‘MBK-홈플러스’로 단순해진다.
법인 통합은 2008년 홈에버 인수 당시부터 꾀해왔으나 법인마다 조직, 운영, 재무, 정서가 달라 쉽지 않았다. 그러나 MBK는 2015년 테스코에 7조 원을 주고 경영권을 인수한 뒤 복잡한 지배구조를 현재 수직구조로 정리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법인 통합으로 조직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유통업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겠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법인 통합이 MBK가 홈플러스의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운영비 절감을 통해 엑시트하기 위한 초석이라고 보고 있다. 지배구조를 일원화하면 절차가 줄어 점포 효율화와 인력 구조조정 등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MBK가 대주주가 된 2015년 이후 홈플러스는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인수 초기부터 내수 부진과 정부 규제 강화에 부딪쳤고 최근 온라인 강세와 경쟁 과열, 1인 가구 증가와 대형마트 수요 감소로 유통업 전반이 침체기에 놓이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홈플러스 개별 영업이익은 2015년 마이너스 1490억 원에서 2016년 3090억 원으로 흑자전환했으나 2017년 2699억 원, 지난해 1510억 원으로 급감했다. 장기 경기 침체와 업계 출혈경쟁으로 전망도 밝지 않다. 때문에 MBK가 구조조정으로 수익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홈플러스를 매력적인 매물로 만들려는 전략이라는 것이 업계 해석이다.
홈플러스는 온라인 역량 강화와 업태 전환으로 극복하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2021년까지 전국 140개 점포를 온라인 물류센터로 전환해 전통적인 장보기와 온라인 배송이 공존하는 ‘쇼킹’(쇼핑+피킹) 매장을 구현한다는 구상이다. 장보기 전문사원을 1400명에서 4000명으로, 신선식품 배송을 위한 콜드체인 차량은 기존보다 3배 많은 3000여 대로 늘리기로 했다.
온라인 배송이 크게 몰리는 지역은 점포의 물류 기능과 규모를 업그레이드한 점포 풀필먼트센터(FC, Fulfilment Center)를 구축해 온라인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계획도 있다. 기존 대형마트에 창고형 할인점의 장점을 결합한 ‘스페셜’ 매장도 현재 16개에서 2021년까지 80개로 늘리기로 했다.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인수 4년째인 홈플러스에 대해 법인 통합에 나서면서 추후 엑시트를 위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사진=최준필 기자
그러나 유통업계 과열 경쟁이 여전해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MBK의 엑시트에 빨간불이 켜진 이유다. 롯데와 신세계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이미 온라인에 뛰어들었다. 이마트는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구축하는 동시에 기존 점포를 물류센터로 활용하는 투트랙 전략을 펴고 있고, 롯데마트도 일부 매장에 컨베이어 등 자동화 설비를 구축해 물류 거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더해 쿠팡 등 이커머스 강자는 물론 새벽배송 선두주자 마켓컬리 등과 과열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규제에 따른 제약도 적지 않다. 대형마트 심야 영업시간 제한과 주말 의무휴업 규제가 온라인 영업에도 적용되는 탓에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는 동안에는 배송이 불가능하다. 연중무휴 24시간 서비스하는 이커머스업체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온라인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데다 규제에 가로막힌 홈플러스가 얼마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오프라인 매장 창고를 물류센터로 활용하려는 전략도 규제 때문에 큰 성과를 보긴 힘들 것”이라고 봤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 박주근 대표는 “신세계 이마트뿐 아니라 롯데쇼핑도 온라인 집중 전략을 공표한 상태에서 홈플러스가 어쩔 수 없이 시장 상황을 따라가는 형국”이라며 “성장 정체는 분명한 만큼 MBK 입장에선 엑시트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모펀드는 투자금 회수가 제1목적이니만큼 MBK가 홈플러스 재무구조 개선과 구조조정으로 수익성을 끌어올려 서서히 엑시트에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MBK는 최근 홈플러스 리파이낸싱에 성공해 시간을 벌었다. 홈플러스 인수 과정에서 빌린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을 추진해 지난 10월 말 은행과 증권사로 구성된 대주단과 5년 만기로 2조 1500억 원 규모 대출 약정을 체결했다. 주어진 5년 내에 보유 점포를 매각 및 세일 앤드 리스백(매각 후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현금화하고, 사업 운영비를 절감해 배당이익을 늘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 회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 MBK는 인수 과정에서 불어난 차입금을 갚기 위해 매년 꾸준히 자산을 매각해왔다. 박주근 대표는 “법인 통폐합과 자산 매각을 통해 지배·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사업비용을 줄여 배당금을 높이는 방식으로 수익성 제고에 힘쓸 것”이라며 “유통 전문가라기보다는 재무통으로 불리는 CFO(최고재무책임자) 출신 임일순 대표를 앉힌 것도 이런 이유”라고 봤다.
같은 맥락에서 홈플러스의 온라인 역량 강화도 장기 발전을 위한 투자라기보다는 덩치는 줄이되 수익성은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롯데마트나 이마트와 달리 홈플러스는 매각 차익을 내는 것이 목적인 사모펀드가 대주주이니만큼 투자보다는 사업비용 축소에 신경 쓸 것”이라며 “수익이 안 나는 점포들을 온라인 물류센터로 바꿔 온라인에 대응하면서도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레버리지를 내려는 듯하다”고 예측했다.
지켜볼 가치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홈플러스는 경쟁사와 달리 기존 자산만 활용하는 방식으로, 물류센터 시공에 드는 거액의 비용과 기간을 줄일 수 있다. 아울러 점포가 전국 도심 곳곳에 들어서 있어 위치적 강점을 활용해 상권 중심으로 근거리 배송을 활성화한다면 품질과 운영의 효율성, 배송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쟁사들과 달리 홈플러스는 매장이 넓다는 기존 장점을 활용해 물류체계를 구축하고,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 형태로 업태를 다변화했으며, 전국이 아닌 동네 상권에서만 서비스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며 “홈플러스가 성공한다면 이커머스 시대에 살아남는 한국형 대형마트의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