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3년 7월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클린턴 대통령과 YS. | ||
“레이니 주한대사가 내일 기자회견을 합니다.” 내용인즉 ‘회견 직후 주한미군 가족과 민간인 및 대사관 가족을 서울에서 철수시킨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미군 가족이나 대사관 직원들을 철수하는 것은 미국이 전쟁 일보 직전에 취하는 조치였다. 더욱이 레이니 대사는 딸과 손자 손녀에게도 한국을 떠나라고 지시해 뒀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유사시 영변을 폭격할 계획을 세워놓았다는 것은 사전에 알고 있었다. 민족의 공멸을 가져올 ‘선제 북폭’을 감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즉시 레이니 대사를 수소문했다. 16일 오후 비밀리에 집무실로 그를 불러 단독으로 1시간 동안 요담했다. 레이니 대사는 나와 오랜 친구였지만 그에게 강력히 경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은 절대 안되고 가족 등 미국인 소개도 안됩니다. 내 얘기를 바로 클린턴 대통령에게 연락해 분명히 전하세요.”
레이니 대사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대사관으로 돌아갔다. 그날 새벽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클린턴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게 말이 됩니까.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이상 우리 60만 군대는 한 명도 못움직입니다.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드는 것은 절대 안됩니다. 전쟁이 나면 남북에서 군인과 민간인이 수없이 죽고 경제는 완전히 파탄나며 외국 자본도 다 빠져나가게 돼요. 당신들이야 비행기로 공습하면 되지만 그 즉시 북한은 휴전선에서 남한의 주요 도시를 일제히 포격할 겁니다. 전쟁은 절대 안됩니다. 나는 역사와 국민에게 죄를 지을 수 없소.”
나의 강력한 추궁에 클린턴 대통령은 억지로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