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사이버머니를 구입한 후 이를 되파는 수법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돈세탁 업자들이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이같은 돈세탁 현상의 하나로 꼽힌다.
사이버머니란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화폐로서 오프라인에서도 실제 현금과 거래되는 ‘제2의 화폐’. 돈세탁 업자들은 사이버머니의 유통 허점을 악용해 손쉽게 불법적인 돈을 유통시키고 있다.
최근 몇주 사이에 경찰에 꼬리가 잡힌 비슷한 사례만 4건. 전문가들은 이같은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정치인이나 범죄조직의 자금 세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례로 대학 강사인 백아무개씨(30)는 최근 해킹을 통해 빼낸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백씨는 B상품권 사이트의 보안 허점을 이용해 빼낸 상품권으로 사이버머니를 구입한 뒤, 이를 다시 되팔아 현금화하다 덜미를 잡혔다.
비슷한 시기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프로그램을 이용, 조직적으로 돈세탁을 감행한 김모씨(28)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사이버머니 자동 수집 프로그램인 ‘업자팩토리’를 이용해 사이버머니를 모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수법으로 김씨 일당이 벌어들인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경찰 관계자는 “불과 한달여만에 5경9천조원의 사이버머니를 모아 1백조당 12∼15만원을 받고 판매했다”며 “이들 환전상을 통해 7천만원이란 거액이 현금화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이렇듯 사이버머니의 맹점을 이용한 돈세탁 업자가 최근 들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부당하게 얻은 신용카드 정보나 개인정보를 이용해 사이버머니를 구입한 후, 시세보다 싼값에 되파는 수법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긴다.
문제는 이같은 방법을 이용할 경우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검은돈의 세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인하대 법대 원혜욱 교수는 “현재까지 알려진 범죄 사례는 초보 단계에 불과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정치인이나 범죄조직의 검은돈까지도 세탁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이버머니를 통한 거래는 불법 거래에 대한 사실 여부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 원 교수는 “전자상거래 등이 활성화되면서 사이버머니를 이용한 지불액이 홍수처럼 늘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일일이 거래를 감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적인 거래 혐의가 포착됐다 하더라도 처벌할 법적 근거도 없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사이버머니를 현금화하더라도 범죄행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용정보 유출 부분만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의 적용을 받아 처벌할 수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의 허점을 계속 방치할 경우 이를 악용한 불법적인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실제 요즘 사이버 공간에서는 사이버머니만을 전문적으로 세탁하는 업자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사이버머니를 사들인 후 시세보다 값싸게 판매하는 방법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이미 사이버머니를 통한 돈세탁이 사회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범죄조직까지 가담해 사이버 돈세탁에 열을 올릴 정도다. 원 교수는 “이들은 마약 판매를 통해 번 돈을 감추기 위해 사이버머니를 구입한다”며 “일부의 경우 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전자상거래 업체와 같은 위장 계열사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까지 국내에서 이같은 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다. 그러나 돈세탁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인터넷 등을 통해 검은돈이 유입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조심스러운 견해다. 이석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