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사업장뿐 아니라 대형 영화관·매장서도 일거수일투족 체크…“근무 중 CCTV로 지적하면 형사처벌 대상”
실제로 알바천국이 아르바이트생 29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아르바이트 근무장 10곳 중 8곳은 직원 관리 목적으로 CCTV를 설치했고 아르바이트생의 71.2%는 CCTV로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
CCTV는 정해진 목적으로만 사용해야지 감시를 위해 사용하면 법에 저촉된다. 서울에 위치한 한 CGV 지점. 사진=허일권 인턴기자
이 같은 일은 편의점이나 당구장, 커피전문점 등 소규모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영화관이나 매장에서도 CCTV를 통해 아르바이트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지적하는 일이 잦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CGV,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 6개 지점을 취재한 결과 아르바이트생들은 CCTV를 통해 감시받고 업무를 지시받는 느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CGV A 지점 미소지기(아르바이트생)는 “공간 대비 CCTV가 많고 늘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아 긴장한 상태로 근무한다”고 말했다. 메가박스 한 크루(아르바이트생)는 “CCTV로 실시간 감시·청취한다는 걸 알고 나선 입을 꾹 다물게 됐다”며 “집에 혼자 있는 강아지가 된 기분이 들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동료들의 증언과 선임자의 고백에 따르면 아르바이트생들이 느끼는 감정은 괜한 게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CGV B 지점 선임미소지기는 “사무실을 통제탑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사무실에서 20여 개의 CCTV 화면을 실시간 보면서 무전으로 지시했다”며 “영화관은 넓고 인력이 적어 CCTV를 활용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CCTV로 감시·녹음하는 것은 불법이다. 영상정보처리기기운영자는 영상정보처리기기의 설치 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임의조작하거나 다른 곳을 비춰서는 안 되고 녹음 기능은 사용할 수 없다. 이를 어길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개인정보보호법(제25조 제5항, 제72조 제1호)에 명시됐다.
이민 법무법인 창과방패 변호사는 “근무 중 CCTV로 감시·지적하면 형사 처벌 대상이며 민사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며 “아르바이트생이 업주의 감시행위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 100만 원의 위자료가 지급된 판결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앞의 CGV와 메가박스의 경우는 불법으로 간주될 여지가 충분하다. CGV 관계자는 “CCTV로 업무지시 한 것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하고 이동하면서 무전으로 지시한 것을 오해할 수 있다”며 “CGV는 관계법령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CCTV를 설치·운영하고 있으며 녹음 기능은 없다”고 부인했다. 메가박스 관계자 역시 “CCTV는 고객클레임, 도난, 화재 등을 위한 목적으로만 활용한다”며 “CCTV에 녹음 기능은 없고 보안업체에 문의해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사업장 점주들은 스마트폰으로 CCTV를 볼 수 있어 24시간 업무지시를 내릴 수 있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 편의점의 CCTV 모습. 사진=허일권 인턴기자
개인사업장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CCTV를 활용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CCTV를 24시간 확인할 수 있어 아르바이트생을 더 옥죄고 있다. 파리바게트 한 지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사장님이 스마트폰으로 CCTV를 확인해 업무지시 했다”며 “쉬면 바로 연락이 와서 매장 청소도 안 됐는데 쉬고 있냐며 화를 내셨다”고 말했다.
작은 주스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학생은 “손님이 없어 앉아 있다 보면 ‘과일 트레이 정리해라, 창문 닦아라’와 같이 지시가 왔다”며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데,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고 전했다.
점주들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한 편의점 점주는 “일부 아르바이트생은 손님이 없으면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며 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유통기한 확인, 창고정리, 청소 등 할 일이 많은데도 안 하고 있으니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CCTV 감시와 관련해 고용노동부에 근로자의 권리 보호 등에 관해서 보완할 것을 권고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직접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민간기업은 인권위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도입된 후 CCTV 감시 피해자를 돕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사업장을 지도·감독할 수 있지만 처벌할 수는 없다”며 “국회서도 법 제정 때 괴롭힘 영역이 크고 모호해 처벌조항을 넣지 않았다”고 말했다.
CCTV 감시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아르바이트생이 사업주를 고소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2013년 CCTV,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기를 이용해 직원을 감시하는 등의 노동인권 침해 실태에 관해 조사한 결과, 직장 내 전자감시로 개인정보가 침해됐을 때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응답은 28.4%에 그쳤다. 직장인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아르바이트생이 사업주를 고소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제20조에 따라 사업장 내 근로자 감시설비 설치는 노사가 합의해 CCTV 감시 범위를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상시근로자가 30인 이상인 사업장만 의무라고 명시돼 아르바이트 사업장에 적용하긴 무리다.
서울 관악구의회 이기중 의원(공인노무사)은 “아르바이트생이 부당한 일에 직접 대처하지 않아도 보호할 수 있는 실효성을 지닌 법이나 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일권 인턴기자
“너희 부모가 그렇게 키웠더냐”…언어폭력 시달리는 알바생 업체들은 한결같이 CCTV에 녹음 기능은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녹음 기능이 의심되는 사례도 발견됐다. CGV D 지점은 지난 10월 한 미소지기의 부정을 제보받고 CCTV 영상을 전수조사해 직접 감찰에 나서 부정을 저지른 아르바이트생 10여 명을 찾아냈다. 문제는 CGV D 지점 점장이 미소지기와 면담 과정에서 보여준 CCTV 영상에 소리도 녹음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면담을 한 미소지기는 “면담 중에 점장님이 본인 핸드폰에 저장된 CCTV 영상을 보여줬는데 영상을 재생하자 소리도 같이 녹음돼 있었다”고 털어놨다. 뿐만 아니라 이 점장은 ‘너희 부모님이 그렇게 키웠냐, 이러라고 CGV에서 일하는 거 허락한 거냐’, ‘지금 스스로 퇴사하지 않으면 미소지기위원회를 여는데 그렇게 되면 앞으로 CJ그룹에 취업할 수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미소지기는 전했다. 이민 변호사는 “퇴사 강요는 형법에 따라 강요죄, 협박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또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CGV 관계자는 “감찰을 위해 핸드폰으로 CCTV를 촬영해 주변 소음이 들어간 걸 녹음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면담 중 부모님 언급 등은 사실무근이며 미소지기 본인이 자술서를 쓰고 자발적으로 퇴사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면담 녹취파일에는 점장이 면담 중 미소지기의 부모님을 언급한 사실이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허일권 인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