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 감찰무마·김기현 하명수사 등 ‘직권남용’ 수사 본격 개시…영장 청구는 늦춰질 가능성
청와대로 수사가 번질 수밖에 없어 청와대와의 충돌도 예상된다. 조 전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부적절한 의사 결정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청와대 민정수석실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 수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로 시작된 검찰과 청와대의 충돌이, 자칫하면 시즌2를 맞을 기세다.
#조국 영장 잠시 숨 고르고 수사 확대
최근 비공개로 잇따라 조사를 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제 조 전 장관 일가 수사에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 ‘의혹’ 수사로 바뀌었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한다.
실제 대검찰청은 11월 26일 울산지검에서 수사 중이던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이 고발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로 이첩시켰다. 의미가 큰 사건의 이첩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황운하 전 청장 사건이지만, 사건의 본질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서서히 조국 전 장관 가족을 넘어 조국 전 민정수석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백원우 당시 대통령 민정비서관이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관련 첩보를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박형철 비서관은 “지방선거를 전후해 현직 선출직 공직자와 관련한 비리 첩보가 이런 경로로 전달된 것은 김 전 시장의 사례가 유일했다. 똑똑히 기억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원우 전 비서관이 전달한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관련 첩보 보고서’는 정식 공문 등록 절차를 생략한 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산하 특별감찰반 파견 경찰을 거쳐 경찰청에 전달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을 거쳐 울산지방경찰청으로 사건이 보내졌고,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은 직권남용·뇌물수수 혐의로 김기현 전 시장 측근 3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울산지검은 지난 3월 이 사건을 모두 혐의 없음 처분한다. 울산지검은 당시 95쪽에 달하는 불기소 결정문을 통해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수사권 남용 논란을 야기했다”며 이례적으로 경찰 수사를 지적했다. 일련의 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한 검찰 수뇌부는 이를 빌미로 민정수석실과 경찰 모두를 겨눈 수사를 시작했다.
청와대가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비리 첩보를 일선 경찰에 내려 보내고, 10차례 가까이 수사 보고를 받았다는 것은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실 업무 범위를 넘는다는 판단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민간인이 된 인물의 수사를 보고 받는 것은 민간인 사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지적했는데, 실제 검찰이 확보한 경찰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울산지방경찰청이 김 전 시장의 비리 의혹과 관련해 내사한 건수가 1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11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을 둘러싼 경찰 수사에 권력기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울산지검장이었던 송인택 전 검사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증거도 없이 수사했다. 1950년대도 아니고 2000년대에 이런 수사를 경찰이 했다. 일개 하위직도 아닌 (인물을 상대로)”이라며 “경찰청장까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 경찰이 나섰다고 작심 지적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백 전 비서관은 “관련 제보를 단순 이첩한 이후 그 사건의 처리와 관련한 후속조치에 대해 전달받거나 보고받은 바 없다”고 선을 그었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11월 27일 “청와대는 개별 사안에 대해 하명 수사를 지시한 바 없다. 청와대는 비위 혐의에 대한 첩보가 접수되면 정상적 절차에 따라 이를 관련 기관에 이관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야당 광역단체장 후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유도하는 ‘하명 수사’를 지시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선거 결과 울산시장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30년 친구 관계로 알려진 송철호 현 시장이 당선됐다.
사건 전체에 걸쳐 ‘경찰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 전 장관을 직접 겨냥한 수사라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사건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경찰이 권력의 눈치를 본, 전형적인 나쁜 사건”이라며 “서울중앙지검에서 맡아 할 필요성이 있을 정도로 문제가 있는, 수사 흐름에 따라 조국 당시 민정수석을 소환해 확인해야만 하는 파급력 있는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유재수 구속…민정수석실 내 ‘보고루트’ 확인 불가피?
뇌물수수 의혹을 보고했지만, 정권 실세라는 이유로 감찰이 무마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수사도 성과를 내고 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이정섭 부장검사)는 유재수 전 부시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한 번에 발부 받았다.
유재수 전 부시장은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은 부인했지만, 법원은 “범죄혐의 상당수가 소명됐고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도 있다”며 구속영장 발부를 결정했다. 유 전 부시장은 금융위에서 근무하던 2016년부터 금융업체 서너 곳에서 자녀 유학비와 골프채를 비롯한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고, 동생 취업을 청탁한 혐의다. 그 대가로 해당 업체가 금융위원장 표창장을 받도록 해 각종 제재를 피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줬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이정섭 부장검사)는 유재수 전 부시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단 한 번에 발부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그리고 검찰은 구속에 성공할 정도로 확실한 범죄 관련 증거들을 민정수석실 내 수사관들이 보고 했음에도, 청와대가 감찰을 그만하라고 지시한 ‘무마 의혹’을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김태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수사관의 폭로로 드러난, 유재수 전 부시장 관련 의혹은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직접 겨눈 셈이다.
이 사안 역시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조 전 장관이 지난해 국회에서 당시 유 전 부시장 비위 첩보의 근거가 부족했다며 감찰 무마 의혹을 직접 부인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 전 장관의 부인은 유재수 전 부시장이 구속되면서 힘을 잃게 됐다.
김태우 전 수사관이 제출한 관련 고발장에는 조 전 장관 등의 지시로 유재수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이 갑작스레 중단되고, 되레 유 전 부시장은 별다른 징계 없이 금융위원회를 떠나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영전했다며 당시 배경에 ‘윗선’이 있음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을 비롯한 당시 감찰 라인을 불러 이른바 ‘윗선’의 지시로 감찰이 중단됐는지를 캐물었는데, 조만간 조국 전 민정수석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을 소환해 감찰이 무마된 과정을 확인할 방침이다.
특수통 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사건이지만, 사건을 보고 받고 더 확인하라고 하거나, 내려 보내는 일련의 과정에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고의로 수사를 유도했거나 막았다면 직권남용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며 “여태껏 서울중앙지검의 수사가 조 전 장관의 가족 비리로 향했다면 이제부터는 조국 전 민정수석의 ‘직권남용’을 입증하는 쪽으로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면서 “조 전 장관 일가의 추천장 입학 비리와 사모펀드 비리 의혹이 시즌1이었다면, 이제 조국 당시 민정수석의 업무 처리를 향한 시즌2 수사가 막이 오른 셈”이라며 “상황에 따라 서울동부지검의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합쳐서 진행할 수도 있으며 영장도 시즌2 수사 흐름에 맞춰 늦게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