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년대 초 가전시장에서 일대 접전을 벌였던 삼성과 LG의 전쟁이 다시 한 번 재현되고 있다. 이들의 전쟁은 현대, 대우, SK 등 한국 재계의 강자들이 사라지거나 위축되면서 선두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1등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두 재벌의 경영마인드를 더욱 공격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도 이들의 충돌이 격화되는 배경이다.
삼성과 LG가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부문은 가전, 휴대폰, 카드, 증권, 건설, 광고 등이다. 이들 분야에서 두 재벌은 한치의 양보없는 일전불사의 자세다.
[삼성전자 VS LG전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거의 전 사업부문에서 충돌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의 경우는 LG가 지난 99년 정부 주도의 빅딜에 의해 손을 뗀 관계로 삼성과의 충돌을 피하고 있지만, 이를 제외한 대다수 가전, 정보통신분야 등에서는 국내외에서 불꽃경쟁을 벌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각 전자품목에 있어 두 회사가 ‘주장하는’ 시장 점유율을 합하면 120%가 훌쩍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두 회사간에 영업뿐만 아니라 자존심 대결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두 회사가 지난 3월 금감원에 제출한 사업 보고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LG전자는 백색가전에 있어서만큼은 삼성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고 주장한다. LG전자 관계자는 “매출액을 기준으로 볼 때 LG의 백색가전 총 매출은 6조4백여억원으로 삼성전자의 가전보다 24%나 앞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매출에 있어서는 LG보다 조금 뒤지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각 품목별 시장 점유율은 대부분 50% 이상이라고 밝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백색가전은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등.
삼성은 ‘하우젠’이라는 통합브랜드를 쓰고 있고, LG는 각 품목마다 다른 이름을 붙여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삼성은 ‘하우젠’(에어컨), ‘지펠’(냉장고), ‘하우젠 드럼세탁기’(세탁기)를 생산하고 있고, LG는 ‘휘센’(에어컨), ‘디오스’(냉장고), ‘트롬’(세탁기)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 3월 금감원 공시자료를 보면 매출액에 있어서는 LG가 삼성을 앞선다. 지난해 각 품목별로 보면 LG 에어컨이 2조원대, 냉장고 1조2천여억원, 세탁기는 9천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반면 삼성은 에어컨 9천4백억원, 냉장고 1조2천여억원, 세탁기 4천5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단순 수치로 보면 LG의 가전 제품 매출이 삼성을 앞지른다. 그러나 삼성은 금감원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세탁기의 경우는 국내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전자제품의 경우 워낙 종류가 다양하다보니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결국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
전자의 또 다른 사업부인 TV부문도 경쟁이 치열하기는 마찬가지. 현재 삼성전자는 ‘파브’ 브랜드를 내건 TV를 생산하고 있고, LG전자는 ‘X캔버스’를 앞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컬러TV시장이 2%라는 저성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전체의 10.3%를 기록해, 업계 1위를 달성했다”며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삼성 애니콜 VS LG 사이언]
휴대폰 부문은 판매대수를 기준으로 보면 삼성과 LG가 경쟁이 되지 않는다. 삼성이 국내외에서 압도적으로 LG를 앞선다. 현 상황으로선 LG가 삼성을 추월한다는 것은 먼 미래 얘기처럼 보인다. 삼성은 지난해 국내와 해외를 포함해 총 4천2백만여 대의 휴대폰을 판매했다. 삼성은 “이는 전년보다 48%나 증가한 수치”라며, 이제 노키아, 모토롤라와 더불어 세계 3강 체제를 구축했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그러나 LG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사이언’의 판매대수가 ‘애니콜’보다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 점유율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다”며 삼성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 관계자는 “기술력은 우리가 세계 최고수준”이라며 “북미시장에서는 ‘사이언’이 더 잘 팔리고 있고, 현재 시장 점유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만큼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지난해 LG전자의 ‘사이언’은 국내와 해외에서 총 1천6백만 대가 팔려 세계5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카드 VS LG카드]
최근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카드’ 부분에 있어서도 삼성과 LG의 불꽃대결이 한창이다. 지난 90년대 후반 신용카드업의 규제가 풀리면서 두 회사는 자존심 대결이라도 벌이는 듯 숨가쁘게 회원을 늘려왔다. 이는 두 회사의 광고문구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연말 LG카드는 ‘갚을 수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하고 카드를 쓰자’는 문구를 사용했고, 삼성카드는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광고를 내걸었다. 이 광고가 방영될 당시 카드 이용자들은 경쟁사인 두 회사에서 한쪽은 생각을 하고 카드를 쓰라고 하고, 다른 쪽은 능력을 보여달라니 어느 쪽 말을 따라야할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돌았을 정도.
현재 카드부문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곳은 LG. 지난해 12월을 기준으로 LG카드는 전체 시장의 23.2%를 점유해, 삼성(22.2%)을 간발의 차이로 앞지르고 있다. 이는 카드 이용액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LG카드 이용액은 할부나 리스를 포함, 지난해 총 1조4천1백억원에 달해 삼성보다 높다.
그러나 신용카드 회원수에 있어서는 삼성이 앞선다. 삼성카드는 약 1천4백92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고, LG카드는 약 1천3백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 삼성의 카드회원수가 많다는 얘기는 향후 삼성카드 회원이 씀씀이를 늘일 경우 LG와의 역전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된다.
LG카드 관계자는 “회원수는 실제로 카드를 사용하는 고객 외에도 단순히 보유하고 있는 고객수까지 포함된데다가, ‘고무줄’ 집계인 경우가 많다”며 “점유율 1위 자리가 역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기획 VS LG애드]
광고분야에서도 두 회사의 신경전은 뜨겁다. 제일기획과 LG애드가 주인공이다. LG애드의 경우 지난해 12월 세계적인 광고대행사인 WPP사로 지분을 넘겼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예전과 같이 LG 계열사로 남아있지는 않다. 그러나 현재 LG애드의 경영진이 기존의 멤버인데다가, 광고물량에 있어서도 대다수의 그룹 광고를 가져올 것으로 보여 LG그룹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현재 이 시장에서는 삼성의 제일기획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제일기획은 지난해 총 매출 1조2천1백억원대를 기록해, 전체 시장의 18.76%를 점유하고 있다. 더욱이 한 해 동안 시장상승률이 무려 31.5%에 달하는 등 명실공히 업계 1위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그러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곳은 LG애드. LG애드는 지난해 총 7천3백억원대의 매출을 올려 전체 시장에서 11.4%를 차지했다. 시장점유율을 보면, LG애드 역시 전년대비 16.9%나 올랐으나, 제일기획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LG애드는 지난해 세계적인 광고대행사와 손을 잡음에 따라 향후 광고시장의 대대적인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VS LG경제연구소]
매출액이나 제품경쟁이 아닌 브레인 전쟁터라는 점에서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소는 비교대상이다. 삼성과 LG그룹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양대 연구소는 두 그룹뿐만 아니라 국내 재계에 미치는 영향력도 막강하다.
더욱이 삼성과 LG 연구소에는 그룹의 ‘핵심 브레인’으로 꼽힐 만한 박사급 인력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 향후 삼성과 LG 두 그룹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이렇다보니 삼성과 LG 연구소의 자존심 대결을 만만치가 않다.
특히 연말, 연초에 예상치로 작성하는 ‘증시보고서’나 ‘경제성장률’ 등의 내용이 담긴 보고서는 늘 두 연구소의 보고서가 나란히 비교돼 신문지상에 오르내릴 정도다. 또다른 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연구소를 두고 순위를 매기는 것은 기준의 모호성 때문에 쉽지 않지만, 삼성과 LG가 업계 톱을 다투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