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는 진부, 배우는 발군…반전 결말은 매력적
영화 ‘매리’ 스틸컷. 사진=유로픽처스 제공
게리 올드먼의 2019년 첫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인 ‘매리’는 호러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다. 관광객을 상대로 레저 투어업을 하던 데이비드(게리 올드먼 분)가 무엇엔가 홀린 듯이 딸의 이름과 같은 배 ‘매리 호’를 사게 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두 딸과 아내 사라(에밀리 모티머 분), 선원들과 함께 첫 항해에 나서면서 겪게 되는 기이한 이야기를 담았다. 망망대해 위의 저주 받은 배, 하나씩 악령에 홀리면서 자아를 잃어가는 등장인물들의 면면과 그 변화가 인상적이다.
영화의 홍보는 게리 올드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극중 대부분의 신은 사라(에밀리 모티머)의 시선을 통해 전개된다. 항해가 하루하루 길어지면서 미묘하게 변하는 배의 분위기와 승선하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를 예민하게 읽어내는 것도 사라의 일이다.
이렇다 보니 영화는 갑판 위의 데이비드와 그 아래 거주 공간 속 사라의 이야기로 양분되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항해 중에 발생하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관객들이 공포를 느끼는 지점은 바다가 훤히 보이는 갑판 위가 아니라 가족들이 살고 있는 배 위의 집인 셈이다. 오랜만에 나온 ‘고스트 쉽’ 소재가 지상에서도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는 저렴한 고스트 하우스가 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 ‘매리’ 스틸컷. 사진=유로픽처스 제공
놀라야 하는 지점을 전부 미리 눈치 주고 있다는 것도 2019년에 나온 호러 영화로써는 촌스러운 감점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알면서도 피할 수 없도록, 단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이제까지 다양한 악역으로 관객들에게 굵직한 인상을 남겨 왔던 게리 올드먼의 변신 덕이 커 보인다. 이번에는 사랑하는 두 딸과 아내를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 역으로 ‘매리’의 갑판 위에 선 그가, 대체 언제쯤 눈을 뒤집고 돌변할 것인지 기대하며 가슴 졸이게 되는 것이다. 가족의 사랑으로 결말을 내기 위해선 분열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은 호러와 드라마를 막론하고 모든 ‘가족애’ 영화의 케케묵은 지론이니까.
그렇게 80분 쯤 기다리다 보면 나머지 5분 정도에 관객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반전이 마중 나온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를 수 있지만, 감독인 마이클 고이가 연출했던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리즈를 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오히려 이런 결말을 선호할 수도 있다. 얼얼한 머리를 부여잡고 결말을 본 뒤, ‘이것’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를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영화를 관람할 관객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85분, 15세 이상 관람가. 11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