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금호석유 실적 곤두박질, 경영권 승계 오리무중…유상증자 예고 아시아나 지분 딜레마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산적한 경영 과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은 2015년 석유화학업계 CEO 간담회 및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박찬구 회장. 사진=연합뉴스
금호석유는 3분기 매출 1조 2200억 원, 영업이익 687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매출은 15.9%, 영업이익은 54.5% 줄어든 실적이다. 금호석유는 올해 상반기 화학업종의 전반적인 부진 속에서 홀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서며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3분기 금호석유의 부진한 실적은 페놀유도체 사업부문이 2016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전망보다 이익감소세가 컸다.
페놀유도체는 금호석유 매출의 3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주요 사업 부문이다. 공급과잉으로 시장 전망도 불투명하다. 4분기는 금호석유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비수기에 해당한다. 정기보수까지 고려한다면 4분기 실적은 더욱 추락하리라는 것이 증권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와 같은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호석유는 경쟁 업체에 비해 석유화학 분야에 집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경쟁업체가 배터리와 태양광 같은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는 사이 금호석유는 본업에만 충실했다. 박찬구 회장은 공격적인 사업 확장 대신 안정과 내실에 초점을 맞춘 경영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업황 개선을 기다리는 것을 빼놓고 달리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
올해 박찬구 회장은 사내이사 재선임 과정에 진통을 겪었다. 주주환원 정책 강화 카드를 앞세운 국민연금은 올해 주주총회를 앞두고 배임 등의 이유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박찬구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난해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보인 금호석유는 국민연금 등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배당 확대와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제시한 뒤에야 박 회장은 재선임에 성공할 수 있었다.
현재 국민연금의 금호석유 지분율은 8.37%. 올해 초와 비교해 1.01% 감소했지만 여전히 2대주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 경영진의 우호세력으로 꼽히는 블랙록의 지분이 감소했다. 블랙록은 현재 5.12%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3월 8.31%에 달하던 지분율과 비교하면 3.18%나 감소했다. 결론적으로 실적 부진이 장기화할 경우, 경영권 기반이 흔들릴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경영권 승계 불확실성도 리스크
1948년생인 박찬구 회장이 70세를 넘어서며 경영권 승계 과정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간단치 않다. 금호석유의 경영권 승계 후보군에만 3명의 이름이 올라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후보로는 1978년생인 박찬구 회장 아들 박준경 상무. 박 상무와 동갑내기 사촌으로 박삼구·찬구 회장의 형인 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 박철완 상무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박준경 상무의 동생이자 박찬구 회장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주형 상무도 유력한 경쟁자로 꼽힌다. 박주형 상무는 금호가 역사상 처음 여성으로 회사 지분을 확보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분율을 보면 박철완 상무가 10%로 확보해 최대주주에 올라있다. 이어 박준경 상무 7.17%, 박찬구 회장 6.69%, 박주형 상무 0.82% 순이다. 박찬구 회장과 자녀의 지분을 합하면 박철완 상무의 지분을 넘어서지만 격차는 크지 않다.
이런 가운데 이번 정기인사에서 이들 중 승진자가 나올지 주목된다. 지난 인사처럼 내년 초 진행될 정기 주주총회 이후 정기인사명단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박준경 상무와 박철완 상무는 2015년 동시에 상무로 승진했다. 4년여 동안 상무를 맡아왔기에 올해 승진 가능성이 있다. 박준경 상무만 승진한다면 후계구도는 명확해진다. 하지만 이 경우, 박철완 상무의 위치가 애매해진다. 단일 분야에 집중한 금호석유의 사업 성격상 계열분리도 쉽지 않다.
특히 박준경 상무는 보유 지분 100%가 대출을 위한 담보로 잡혀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박철완 상무는 보유 지분의 27.68%만 담보 대출에 쓰였다. 실제 대출 금액 등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주가 하락으로 인한 반대매매가 이뤄질 경우, 박준경 상무가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금호석유화학 본사. 사진=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 지분 어떻게 되나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과 박찬구 회장은 2009년부터 그룹 경영에 대해 이견을 보이며 대립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2016년 극적으로 화해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는 제스처에 불과했다는 것이 재계의 전반적인 평가이다. 실제로 올해 박삼구 전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내려놓는 상황에서 금호석유 측은 별다른 의사 표시 없이 사태를 관망하기만 했다.
또 박삼구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은 지난 4월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관련해 “과거 계열 분리 당시 약속도 있고, 시장에서 억측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채권단과 합의해 (금호석유가) 매각에 참여할 수 없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2016년 화해 의사 표명 당시 박찬구 회장이 경영권 분쟁 때 박삼구 전 회장 쪽으로 돌아선 임원을 내칠 것을 원했지만 박삼구 전 회장이 그러지 않아 결국 화해는 물 건너갔다”라고 말했다.
현재 박삼구 전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금호석유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이다. 2010년 계열 분리 당시 박삼구 전 회장과 박찬구 회장 측은 각각 보유하고 있던 금호석유와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정리하기로 합의했다. 박삼구 전 회장은 금호석유 지분을 매각했지만 박찬구 회장은 끝내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팔지 않았다. 현재 금호석유는 아시아나항공 주식 11.98%를 보유한 2대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이 HDC산업개발 품에 안긴 뒤 대규모 유상증자를 예고하면서 이 지분이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금호석유는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 참여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주주배정 방식 아닌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이 유력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호석유 입장에서는 앉아서 지분율 하락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2조 원 이상의 규모로, 금호석유가 배제된 채 유상증자가 이뤄질 경우 금호석유의 지분율은 3%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대해 금호석유 관계자는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지분율이 떨어지겠지만 항공업의 수요 등을 고려할 때 가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석유 입장에서는 지분율 감소가 뼈아프지만 당장 현금 유동성을 확보해야 할 정도로 재무 상황이 열악하지도 않아 내다 팔 이유가 없다. 결국 향후 아시아나항공의 가치가 오르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항공업계의 과열된 경쟁 상황 등을 고려하면 이는 단기적으로는 금호석유의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시간만 흐르고 있다.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