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시간끌기’ 전략 예상 빗나가…“경영권 승계작업 증거 추가 전 종료 전략” 분석도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22일 열린 파기환송심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뇌물공여, 특경가법상 횡령, 재산국외도피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돼 풀려났다. 하지만 지난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상고심에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원심 판결을 뒤집고 파기환송했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이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에서 진행 중이다. 앞서 지난 10월 25일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이 열렸다. 이날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변론할 생각”이라며 “대법 판결에서 한 유무죄 판단을 다투지 않고, 오로지 양형 판단을 다투겠다”고 밝혔다. 또한 양형에 관한 변소, 영재센터 대가성 등 3가지 부분을 새 기일에 설명하면서, 증인도 신청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 부회장 측은 “심리할 사항이 많지 않아 기일 자체는 길지 않을 것”이라며 신속한 재판 진행을 부탁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유무죄 판단과, 양형 판단 기일을 나눠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2차 기일을 22일로, 3차 기일도 2주 뒤인 오는 12월 6일로 사전에 일정을 잡았다.
당초 예상됐던 삼성 이재용 부회장 측의 파기환송심 전략과는 거리가 있는 행보다. 앞서 대법원이 집행유예형 원심을 뒤집은 이유는 말 3마리 구입액 34억 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 원 등을 뇌물로 인정, 뇌물 규모가 86억여 원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대법원은 당시 삼성그룹에 경영권 승계 현안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처럼 횡령액이 50억 원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이 부회장 구속 가능성이 다시 높아졌다. 이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재용 부회장 측이 파기환송심 기일을 최대한 미뤄 선고를 늦추는 작전을 세우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판사 출신 법조계 관계자는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판결 후 언제까지 선고를 내려야 한다는 규정이 따로 없다. 파기환송심 과정에서 어떤 증거가 새로 제시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며 “이재용 부회장 측 입장에서 보면 구속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파기환송심을 최대한 끌어 구속 시점을 늦춰야 한다. 이후 문재인 정권이 바뀌고 사면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이재용 부회장 측에서 속전속결 재판 진행을 요청하면서 그 배경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삼성 문제를 지적해온 법조계 관계자는 “1차 기일에서 재판부가 느닷없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훈계성 당부를 했다. 재판부가 엄한 훈계를 한 다음 완화된 형량을 선고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에 재판부와 삼성 측이 집행유예 선고에 대한 사전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하지만 삼성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 측에서도 재판부의 이러한 지적을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전에 조율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다. 이에 오히려 삼성 측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의혹 등 또 다른 삼성 비리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끝내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박영수 특검 측은 파기환송심에서 이재용 부회장 기소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과정 등에서 확보한 경영권 승계작업을 입증할 증거자료까지 제출할 계획이다. 특검은 “앞으로 입증의 핵심은 승계작업”이라며 “이 부회장을 위한 승계작업이 존재했느냐, 어떻게 진행됐느냐, 대통령 우호조치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거로 내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이미 대법원이 경영권 승계 현안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부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 문제 등도 결국 경영권 승계 작업과 연결된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이 얹히거나 추가기소될 수도 있으니까, 그 전에 빨리 재판을 끝내는 게 좋다는 판단이 섰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 재판은 변호인이 담당해 진행하기 때문에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현장]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2차 공판, 어떤 내용 오갔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2차 공판이 22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에서 열렸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0월 25일 1차 공판에 이어 이날 기일에도 법원에 직접 출석했다. 공판 예정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서울고법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심경이 어떠냐’ ‘1차 공판 재판장이 주문한 부분에 대한 답변이 있느냐’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온 것이 있느냐’ 등의 질문에 대답 없이 법원으로 들어갔다. 이날 공판에서는 ‘승계 현안’과 ‘자발적 뇌물 지원’ 유·무죄 여부를 두고 특검과 이 부회장 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대한 부정 청탁을 2심과 달리 대법원은 인정했다”며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지원한 점을 인정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한 문서를 재판부에 입증 자료로 제출했다. 반면 이 부회장 변호인은 “자발적 지원이 아니었다”며 “승마를 지원한 이유는 박 전 대통령의 질책 때문이다. 자발적 의사에 의한 지원이 전혀 아니었다는 부분은 꼭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영재센터 지원에 대해서는 “박 전 대통령의 공익적 요청으로 지원한 것”이라며 “대가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극히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을 증인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이 ‘강요에 의한 뇌물’임을 강조하는 것은 최근 대법원이 이 부회장과 달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유죄를 확정하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공판은 3시간여 만에 마무리됐다. 양형에 대한 심리가 이어질 3차 공판은 오는 12월 6일 예정돼 있다. 이를 마지막으로 이 부회장의 재판 절차는 마무리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최종 선고는 빠르면 연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서울고법 앞에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관련 이재용 부회장의 주주 손해배상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공익변론센터와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주주를 모아 이재용 부회장을 상대로 주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측은 “대법원이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삼성의 승계작업 존재 및 뇌물 제공의 대가성을 인정했다”며 “부당한 합병비율로 이 부회장이 얻은 부당이득은 3조~4조 원”이라고 설명했다. 소송의 대리인을 맡을 김종보 변호사는 “삼성물산 일반 주주들이 합병 당시의 손해배상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아직 없다”며 “이번 주주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피고는 당시 합병으로 이익을 얻은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총수일가, 합병에 찬성한 이사진, 회계사기로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린 삼성바이오로직스 및 회계법인 등이 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9월 1일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주주였으면 참여 가능한 원고인단은 오는 25일부터 법무법인 지향의 홈페이지를 통해 모집한다. 민웅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