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한국당’ 전략 성공 시 20석 이상 기대…4+1 균열 빈틈 노려 민주당과 손잡는 방법도
그러자 한국당 내에선 연동형 비례제를 막지 못할 바에야 역으로 이를 유리하게 이용하자는 구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자매정당, 즉 ‘비례한국당’의 창당이다. 정당 득표율을 흡수, 향후 합당해 세를 불리자는 전략이다.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2월 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12월 19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만일 더불어민주당과 좌파연합 세력이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를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비례한국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간 물밑에서 논의되던 자매정당 창당이 공식석상에서 처음 언급된 셈이다. 그만큼 내부적으로 상당한 준비를 마친 것으로 읽혔다.
자매정당 창당은 지난 4월 한국당 반대에도 패스트트랙 열차가 출발한 이후, 대응 카드 중 하나로 꾸준히 검토되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년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될지라도 한국당에 불리한 구도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연동형 비례제가 통과될 경우 비례 의석을 정당득표에 따라 보존해주기 때문에 지역구 의석이 많은 거대 정당보다 군소 정당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1인 2투표제에서 지역구는 한국당 후보, 지지정당은 한국당 2중대 정당을 찍게 해 의석을 늘리자는 게 한국당 전략이다.
한국당 지도부 한 관계자는 “지지자들로 하여금 지역구는 한국당에, 정당은 비례당에 찍게 계속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이러한 아이디어는 선거법에 정통한 한 친박계 의원이 물밑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짠 끝에 나온 것이다. 의원들한테도 의원총회에서 여러 차례 설명이 있었고 공감을 많이 받았다”라고 말했다.
한국당 지도부에선 자매정당 전략이 제대로 작동할 경우 최소 20석을 넘는 의석을 얻을 수 있다고 계산한다. 이미 내부적으로는 신당 창당 요건인 발기인 200명을 확보, 대기해 놓은 상태로 파악된다. 신당명과 비례 순번까지도 정했다는 얘기가 뒤를 잇는다. 말 그대로 당장 내일이라도 정당 등록에 나설 수 있게 준비했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 대안신당, 정의당이 12월 5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패스트트랙 법안과 예산안을 다룰 ‘4+1’ 협의체 회동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박완수 한국당 사무총장은 “언제든 등록을 할 수 있게 절차라든지, 준비를 하고 있다”며 “아직 당명 공모를 한 적은 없고 당 내부 논의를 통해 적정한 이름을 한국당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려고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황교안 대표 역시 이 같은 계획을 보고 받고 용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패스트트랙 투쟁 국면에 접어들던 12월 16일 한국당 의원총회에서는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강연에 나섰다. 주제는 바로 연동형 비례제 대비, 위성정당 효과 등이었다. 황 대표는 이 강연을 함께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당 한 중진 의원은 “당 입장에선 2중대 정당이 ‘비책’으로 평가받는 듯하다”며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이 계획을 듣고, ‘우리도 새롭게 정당을 꾸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던 것으로 들었다”라고 귀띔했다.
이 밖에 기존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되어 있는 보수계열 정당을 2중대 정당으로 지목한 뒤 향후 인수합병 하는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11월 기준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은 총 34개에 달한다. 이 중 새누리당, 친박연대, 한나라당, 공화당, 핵나라당 등 보수계열로 보이는 정당도 상당수 있다.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제에 대한 ‘출구 전략’을 짜면서 여당과의 실질적 협상이 어떻게 이뤄질지가 관심사다. 한국당이 사실상 연동형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물론 대외적으로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제와 관련 “좌파 연합의 짬짜미 선거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아직까지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한국당 당론은 지역구 270석에 비례대표 폐지에 머물러 있다.
당 협상론파 사이에선 선거법에 있어 연동형 비례제를 최소한으로 받는 등 민주당과 이해관계를 일치시켜 돌파구를 찾아내자는 시각이 있다. 범여권의 군소정당을 내치고 거대 양당이 결합, 서로 얻어낼 것은 얻어내자는 주장이다. 한 중진 의원은 “연동형을 25% 정도만 적용하면 현재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 어차피 민주당 내에서도 선거제 개편은 지역구 의원들이 민감하기 때문에 반대 기류가 심하다. 이를 이용해 차라리 민주당과 손잡고 선거법을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받고, 민주당이 원하는 공수처를 도입 시기 연장, 기소권을 빼는 등 조건부로 받는 방법이 있다”고 귀띔했다.
당 전략가로 꼽히는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최근 ‘선거법 개정안 원안 상정, 자유투표’를 제안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당론을 떠나 무기명 비밀투표를 한다면 민주당과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들의 이탈표로 선거법이 ‘부결’ 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셈이다. 김재원 의장은 공수처 협상에 대해선 “충분히 해볼 수 있다”며 민주당에 손짓하는 상태다. 최근 4+1 협의체가 선거법에 대한 이견으로 공조가 흔들리는 가운데 한국당이 ‘빈틈 파고들기’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당의 이러한 협상론은 내년도 예산안 표결 과정에서 봤을 때 4+1 협의체가 뭉칠 경우 표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나 의원직 총사퇴도 역부족이라는 현실적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당은 황 대표를 중심으로 한 ‘강경 투쟁’ 노선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투쟁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면서도, 한편으론 협상의 문을 열어두고 최악의 경우 ‘자매정당’을 통해 연동형 비례제 출구를 모색하는 ‘3개의 트랙’으로 대응 전략을 짠 셈이다.
하지만 자매정당 구상에 당내에선 지나친 ‘정치 공학적’ 접근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급조한 정당이 과연 여론의 지지와 표심을 얻을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한 수도권 비박계 의원은 “페이퍼컴퍼니가 연상되는 정당에 누가 표를 찍어주겠느냐. 일반 여론에는 꼼수로 비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극렬 지지자가 아니면 결국 중도 표심은 우리를 외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향후 ‘당명 싸움’ 등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당이 검토했던 ‘비례한국당’은 이미 지난 10월 중앙선관위에 창당준비위를 등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례한국당을 등록한 최인식 씨는 “한국당에 당명을 팔 생각이 없다”고 못을 박아놓은 상태다. 연동형 비례제가 통과될 경우 신당은 더욱 늘어나 한국당의 자매정당 구상에 혼란이 더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