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찬금 대가로 기사 삭제해 파문
경향신문이 기업의 요청으로 기사를 삭제하는 일이 경향신문 측 성명서로 드러났다. 해당 성명서 원문은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사진=경향신문 홈페이지 캡처
한국 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는 22일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성명의 첫 머리에 “독립언론 경향신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고 적었다. 이어 “12월 13일 자 경향신문 1면과 22면에 게재 예정이었던 A기업에 대한 기사가 해당 기업의 요청을 받고 제작과정에서 삭제됐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A기업은 경향신문에 기사 삭제를 조건으로 협찬금 지급을 약속했다. 사장과 광고국장은 A기업에 구체적 액수를 언급했다. 사장은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에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다. 이에 편집국장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해당 기자는 사표를 냈다.
기업과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즉시 경향신문 기자들은 사장, 국장, 해당 기자를 면담했다. 면담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12월 19일 기자 총회를 열었다.
경향신문지회는 “경영난과 정부의 견제, 변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오직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감시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적었다. 이어 “그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적절한 통제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라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경향신문지회는 “이번 일을 외부로 솔직하게 공개하고 사과드리는 것이 독자 여러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며 “이번 일이 경향신문이 더 나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내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사태를 조사하고 재발 방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는 사과의 뜻을 밝히며 성명문에 5가지 결의사항을 적었다. △사장은 즉각 모든 직무를 중단한다. 신속하게 차기 사장 선출 절차에 착수한다 △편집국장, 광고국장은 모든 직무를 중단한다. 사규에 따라 두 사람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검토한다 △A기업이 약속한 협찬금의 수령 절차를 중단한다 △기자협회, 노동조합, 사원주주회가 포함된 내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한다 △이 모든 과정을 내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한다 등이다.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신성호 교수는 이번 경향 신문 사태에 대해 언론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기사와 광고 사이에는 방화벽이 있어야 하는데 (경향신문 사태)에서 이게 무너진 것”이라며 “어느 기업으로부터 광고를 받고 기사를 삭제해줬다는 것은 경제 권력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스스로 포기해버린 것”이라고 했다.
사장, 편집국장 등이 사퇴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신 교수는 “그만큼 (경향신문) 내부에서도 중대한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라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번 일은 다른 언론사에게 ‘유사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참고 사례가 되었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 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의 해당 사과문 원문은 현재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이에 경향신문 관계자는 “사안을 엄중히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에서 홈페이지에 있던 성명문을 기사형태로 재송고했다”고 설명했다.
유하영 인턴기자
△ 다음은 경향신문지회의 성명서 전문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독립언론 경향신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019년 12월13일자 경향신문 1면과 22면에 게재 예정이었던 A기업에 대한 기사가 해당 기업의 요청을 받고 제작과정에서 삭제됐습니다. A기업은 기사 삭제를 조건으로 협찬금 지급을 약속했습니다. 사장과 광고국장은 A기업에 구체적 액수를 언급했습니다. 사장은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습니다. 편집국장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기자는 사표를 냈습니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이 사실을 인지한 즉시 사장·국장·해당 기자 면담을 거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12월19일 기자총회를 열었습니다. 경향신문의 편집권은 경영권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습니다. 경향신문 구성원들은 오랫동안 ‘독립언론’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 왔습니다. 경영난과 정부의 견제, 변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오직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감시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적절한 통제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사장과 편집국장, 광고국장은 이번 일에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했습니다. 경향신문은 내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이 사태를 면밀히 조사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것입니다. 경향신문 구성원들은 이번 일을 외부로 솔직하게 공개하고 사과드리는 것이 독자 여러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이번 일이 경향신문이 더 나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아래는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의 결의사항입니다. 1. 사장은 즉각 모든 직무를 중단한다. 신속하게 차기 사장 선출 절차에 착수한다. 1. 편집국장, 광고국장은 모든 직무를 중단한다. 사규에 따라 두 사람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검토한다. 1. A기업이 약속한 협찬금의 수령 절차를 중단한다. 1. 기자협회, 노동조합, 사원주주회가 포함된 내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한다. 1. 이 모든 과정을 내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한다. 2019.12.22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