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끈질긴 보도, 최순실 게이트 보도 등으로 영향력과 신뢰도 면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뉴스룸을 시청하기 위해 시간을 맞춰 알람을 울리게 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도무지 얼굴을 내밀지 않던 인사들도 손석희 앵커의 인터뷰에는 응했다. 그러면서 뉴스룸은 지상파 뉴스의 시청률을 제쳤다. 놀라운 변화였다. 모든 분야에서 ‘팩트 체크’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분명히 뉴스는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지만 그 ‘사실’이란 것이 알고 보면 절대적이지 않다. ‘사실’을 담는 시각과 ‘사실’을 고르는 시각이 사실을 해석하고 조명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을 점검하고 그 사실을 담아내는 자신의 시각을 성찰해내는 능력이 없으면 독선에 빠지거나 부화뇌동하기 쉽다.
나는 그저 뉴스룸에서 채널을 돌렸다는 친구 몇을 만났을 뿐인데 통계는 그 몇이 몇이 아니었나보다. 뉴스룸의 시청률이 바닥을 기기 시작했단다. 그러던 중 뉴스룸의 간판스타 손석희 앵커가 그 자리를 떠난다는 보도가 나왔다. 뉴스룸의 시청률이 바닥을 친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은 아니라고 하지만, 말은 그렇다 해도 모양새는 어쩐지 얄팍한 언론의 생리 같다.
차라리 1년 전에 떠났더라면 떠나는 자나, 이어받는 자나 아름다웠을 텐데! 이형기 시인이 노래하지 않았는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어쩐지 지금은 그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혹 손석희 사장은 JTBC에서 더 이상 입지가 없는 것은 아닌지. 손석희도 손석희지만 진창에서 시작해야 하는 서복현 기자는 또 얼마나 힘들까. 그에게 그런 리더십이 있을까. 그는 손석희가 아닌데.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 사람의 힘만은 아니다. 그를 꽃으로 혹은 희생양으로 만들어내는 무리의 힘이 있다. 손석희, 그가 아름다운 꽃이었던 것은 그를 지지해주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룸은 원래 그들의 지지자를 회복할까, 아님 손석희를 버리고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태도에 묻어있는 것처럼 기득권에 안주하는 JTBC의 화신이 될까.
때로는 지지해주는 그룹과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룹이 그의 생각을 따라갈까, 그가 그룹에서 이탈되고 말까. 그룹이 그 생각을 따라가면 그것은 그의 리더십이 그룹에 녹아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독선이면 그룹이 그를 버릴 것이다. 그런데 따라가기엔 이상하고 버리기엔 아까운 안타까운 것일 때는 어찌해야 할까.
자리를 비우는 손석희 앵커는 시원할까, 허전할까. 분명 여기저기서 상처 입었을 그는 스스로 폐허가 됐다고 느낄까, 아니면 사는 게 그런 거려니, 넘어갈까. 그의 느낌을 알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말과 행동으로 갈채 한가운데 있었던 그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을 보고 ‘저게 뭔가’ 관심을 두게 된다.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그는 아까운 인물이다. 그가 그의 삶의 위기에서 어떻게 명예를 회복해가는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