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심 앞두고 ‘CEO 중징계’ 사전통지…관련 규정 및 기관 징계 ‘변수’ 따라 결과 달라질 듯
#우리·하나 CEO 중징계 예고
금감원의 이번 사전통지의 핵심은 은행 CEO를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징계 수준이다. 중징계를 받으면 사실상 금융권에서 퇴출된다. 금융회사 임직원 제재는 주의-주의적경고-문책경고-직무정지-해임권고, 다섯 단계다. 문책경고 이상이 중징계로 분류된다. 해임권고는 5년간, 직무정지는 4년간 금융회사 임원 선임이 제한된다. 문책경고는 남은 임기는 마칠 수 있지만 3년간 임원 선임에 제한을 받는다.
금감원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에게 문책경고를 통보했다. 지성규 하나은행장은 경징계를 통보받았다. 이들은 모두 감독책임자로 명시돼 징계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 중구에 있는 우리은행 본점. 사진=우태윤 기자
앞서 DLF 종합검사와 분쟁조정 등을 진행해온 금감원은 그동안 은행과 책임자 모두 강도 높은 제재가 필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윤석헌 금감원장도 최근 기자단 송년회에서 “제재는 공정해야 한다. 다만 시장에 올바른 시그널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은행권에선 이 발언을 ‘일벌백계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하고 있다.
최종 징계 수위가 결정될 제재심을 금감원 수석부회장이 주재한다는 점도 중징계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배경이다. 일반적으로 제재심은 부원장보가 담당하지만 이번 DLF 제재심은 유광열 금감원 수석부원장 주재한다. 전직 금감원 관계자는 “수석부원장이 제재심을 열었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사안의 경중과 징계 수위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우리·하나, CEO 구하기 특명
중징계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서 우리·하나은행은 비상이 걸렸다. 사전 통보대로 중징계가 확정될 경우 CEO 개인을 넘어 금융지주 경영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의 경우 회장 임기는 오는 3월, 은행장 임기는 12월이다. 지난해 우리금융지주 출범 이후 회사 몸집을 급격하게 불려왔던 만큼 후계자 양성은 뒤로 미뤄뒀다. 하나금융지주는 김정태 회장의 임기가 2021년 3월까지지만, 함영주 부회장이 유력한 후계자로 꼽혀 왔다.
이에 따라 제재심에선 금감원과 은행 측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제재심은 법원에서 열리는 재판처럼 은행과 금감원이 동등하게 진술권을 갖고 각자의 주장을 할 수 있다.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제재심이 한두 차례 더 열릴 가능성도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최근 기자단 송년회에서 “제재는 공정해야 한다. 다만 시장에 올바른 시그널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은행권에선 이 발언을 ‘일벌백계’로 해석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금감원은 ‘소비자 보호’ 원칙을 강조하면서 강도 높은 제재 의견을 낼 것으로 관측된다. DLF를 전국 지점에서 판매한 것을 고려해 포괄적인 책임을 물어 CEO에 대한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금감원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은행들의 소명을 검토해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선 제재심 위원들이 엄중 조치 의견에서 크게 벗어나는 결정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우리·하나은행은 그동안 DLF 사태 수습을 위해 선임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대동해 방어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복수의 회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CEO가 전국 각 지점의 개별 투자상품의 판매를 모두 구체적으로 챙기지 않는다는 점과 DLF 사태 이후에도 직접 나서 적극적으로 피해회복에 나섰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최종 판단 가를 변수는?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둘러싼 각종 변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이 꼽힌다. 해당 규정에 따르면 감독 책임자는 직접 행위자보다 징계 수위가 1~3단계 감경될 수 있다. DLF 사태에서는 실무 직원과 임원이 행위자, CEO가 감독 책임자로 분류될 전망이다. 보통 CEO의 경우 직접 행위자로부터 몇 단계 위에 있어 문책경고를 통보 받았던 손 회장과 함 부회장 등이 경징계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대로 최근 DLF 분쟁조정위원회가 내린 결정은 은행에 불리하다. 위원회는 은행 본점 차원의 과도한 영업과 내부통제 부실이 대규모 불완전 판매로 이어졌다고 판단하면서 본점 과실을 인정했다. 금감원은 과도한 영업전략이 영업점으로 하달되고 본점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무력화 되는 일련의 과정을 CEO가 알지 못한 채 진행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CEO에게 충분히 책임을 물을 여지가 있는 셈이다.
두 은행의 기관 중징계도 CEO 징계와 연결될 수 있다. 금감원은 그동안 기관과 책임자에 대한 동시 징계 의지를 피력해왔다. 은행에 기관경고 이상의 중징계가 내려지면 양형주의에 따라 CEO도 강도 높은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기관 중징계는 기관경고, 업무정지, 인허가 취소 등이 해당한다.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건물. 사진=고성준 기자
은행별로 다른 변수도 있다. 하나은행은 DLF 내부문건 삭제 행위가 도마 위에 올라있다. 금감원은 지성규 행장의 승인에 따라 자료가 삭제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다만 CEO까지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금감원이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손태승 회장의 연임 결정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지난 12월 30일 우리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손 회장의 3년 연임을 사실상 확정했다. 금감원이 제재심 이후 3월 전까지 징계를 서둘러 내려도 손 회장은 결과에 불복해 재심, 이의제기, 행정소송 등 절차에 차례로 돌입할 수 있다. 재심만 고려하더라도 금감원이 결과를 통보하는 기간은 두 달가량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손 회장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후가 된다. 금감원 입장에서 징계 수위를 놓고 고민이 하나 더 는 셈이다.
이에 대해 우리금융 관계자는 “여러 의견이 나오는 건 잘 알고 있다”면서도 “DLF 제재심이 있어 부담스러운 면이 있지만 사태 발생 후 대처하는 과정, 지주 출범 초기 상황에서 조직안정과 기업가치 제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손 회장이 적임자라고 판단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