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조건부 허가로 유료방송 존재감 커져…SK텔레콤 중간지주사 전환, 실탄 확보 한계 뚜렷
SK텔레콤의 티브로드 인수·합병이 9부 능선을 넘었지만, 축배를 들기 아직 이르다는 말이 나온다. 숙원사업인 SK텔레콤 중간지주사 전환이 쉽지 않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SK텔레콤 본사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9년 12월 30일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인수합병 신청에 대해 조건부 인가했다. SK텔레콤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가 (주)티브로드와 (주)티브로드동대문방송, (주)한국디지털케이블미디어센터를 흡수·합병 할 수 있게 된 것. SK텔레콤은 케이블TV 2위 사업자인 티브로드(9.60%) 합병을 통해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을 기존 14.32%에서 23.92%로 늘렸다. 점유율만 놓고 보면 KT스카이라이프를 갖고 있는 KT(31.07%)와 CJ헬로를 인수하는 LG유플러스(24.54%)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셈이다.
티브로드 합병을 눈앞에 둔 SK텔레콤의 자신감은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의 기자간담회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박정호 사장은 지난 8일(현지시간) ‘CES 2020’이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SK텔레콤의 ‘뉴 ICT(정보통신기술)’ 사업 비전을 설명하며 “유료가입자 1000만 명의 종합 미디어회사”를 목표로 제시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9월 지상파 3사와 연대해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 서비스 ‘웨이브(WAVVE)’를 출범하며 OTT 강자 넷플릭스에 도전장을 던지기도 했다.
박정호 사장은 또 사명 변경과 자회사 상장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SK텔레콤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그는 ICT분야가 성장하고 MNO(이동통신사업) 비중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며 “정체성에 걸맞은 이름 변경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텔레콤’이라는 이름이 최근 통신사들의 변화 추세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 또 그는 “계열사별로 상황이 다르지만, 올해 말에서 2~3년 내에 상장이 가능한 계열사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박정호 사장의 이 같은 발언에 지난해 SK텔레콤이 공식화했던 중간지주사 전환이 재조명됐다. 박 사장은 취임 초부터 사명 변경과 중간지주사 전환 구상을 언급한 바 있다. 박 사장은 2018년 3월 열린 SK텔레콤 정기 주주총회에서 “전환 여부나 시기는 고심 중”이라고 말을 아꼈으나, 같은 해 10월경부터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 공식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후 지난해 1월 열린 ‘CES 2019’에서 박 사장은 “올해 꼭 중간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해 하이닉스 지분 10%를 추가 확보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SK텔레콤 중간지주사 전환의 시나리오 중 유력한 방안으로 물적 분할이 거론된다. SK텔레콤을 물적 분할해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분리하고, 투자부문을 SK(주)와 합병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SK(주)의 손자회사였던 SK하이닉스는 자회사가 된다. 자회사로 편입되면 현행 공정거래법상 그룹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M&A를 할 경우 증손회사가 되는 피인수기업의 지분을 100% 매입해야 하는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적극적인 투자를 통한 사업 다각화가 가능해진다.
다만 재계에서는 이 같은 구상이 당장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현재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의 지분을 20.07%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중간지주사로 전환 시 SK하이닉스의 지분을 10%가량 추가 매입해야 한다. 최근 확정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자회사 의무보유지분율을 기존보다 10%씩 높이는 방안이 포함됐다. 현행 상장사는 20%에서 30%로, 비상장사는 40%에서 50%로 높아지게 되는 것. 대신경제연구소는 2018년 SK그룹의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보고서를 통해 “SK텔레콤의 분할이 진행되면 중간지주(투자부문)는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약 5조 5454억 원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SK하이닉스의 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SK텔레콤의 자금 부담이 더욱 커진 셈이다. 현재 SK텔레콤의 곳간 사정으로는 지분 추가 매입은 언감생심이다. 2018년 기준 SK텔레콤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조 5099억 원,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4조 3325억 원이다. 더욱이 MNO 시장이 예전과 같지 않은 가운데 비 MNO 부문 성장을 위해 ICT 등 신사업에 투자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3조 원 가까이 투자했던 5G 부문에 대해 올해도 대규모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SK텔레콤 중간지주사 전환과 관련해 “SK하이닉스의 투자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자회사와 모회사가 가분수처럼 놓인 상황을 탈피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면서 “다만 그 경우 SK텔레콤이 SK하이닉스의 지분을 매입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SK텔레콤 관계자는 중간지주사 전환 계획에 대해 “하고 싶다는 바람은 있었으나, 5조 원가량 되는 실탄을 확보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올해에도 지난해와 비슷하게 5G 등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고, 5G 커버리지를 LTE 수준으로 확보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