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극복으로 우주탐사 경쟁 식었지만 핵전쟁은 막아…빈부격차로 참혹한 현실 실제와 비슷
‘보이즈 투 더 프리히스토릭 플래닛’가 상상한 2020년은 인류가 달에 기지를 세우고 화성 유인탐사까지 가능한 모습이었다. 사진=‘보이즈 투 더 프리히스토릭 플래닛’ 포스터
2020년이 시작되면서 가장 주목받은 영화는 1965년 개봉 영화 ‘보이즈 투 더 프리히스토릭 플래닛’이다. SF 영화가 55년 전에 상상한 2020년의 모습은 화성 유인탐사였다. 영화는 2020년에는 인류가 달에 기지를 세우고 화성 유인탐사를 할 거라고 상상했다. 주된 스토리는 화성으로 간 세 대의 우주선이 화성에서 고대 생명체를 만나며 겪는 일이다. 2000년 개봉 영화 ‘미션 투 마스’ 역시 2020년을 배경으로 세계 최초로 우주 비행사들이 화성 착륙에 성공한 뒤 각종 위협에 직면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실제 ‘보이즈 투 더 프리히스토릭 플래닛’이 개봉하고 4년 뒤인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다. 당시의 발전 추세라면 2020년에 달 기지를 세우고 화성 유인탐사도 가능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깨지면서 양국의 우주 탐사 경쟁의 열기도 급격히 식었다. 만약 냉전이 종식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정말 화성 유인탐사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냉전 종식으로 얻은 것도 많다. 적어도 1980년대 SF 영화가 예상한 최악의 상황인 3차 세계대전이나 핵전쟁은 피했다. 1988년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붕괴된 도쿄에 새롭게 건설된 혼란스러운 도시 ‘네오도쿄’의 201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는 핵전쟁 이후 혼돈과 무질서로 휩싸인 2019년이 배경이다.
#SF 영화가 그린 2020년에 비하면 그나마…
오토바이 폭주족이 네오도쿄 교외의 폐쇄된 고속도로에서 패싸움을 하고 정부는 인간을 실험체로 하는 비밀 초능력 개발 프로젝트를 자행하는 ‘아키라’ 속 2019년이나 항상 산성비가 내리고 스모그가 짙게 깔려 자연 본연의 빛을 잃은 음울한 회색 빛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블레이드 러너’의 2019년에 비하면 현실 속 2020년이 훨씬 살 만하다. 비록 화성은 못 가지만. 이미 오래 전에 냉전이 종식됐음에도 2002년 개봉 한국 영화 ‘예스터데이’가 상상한 것과 달리 2020년에도 한반도가 통일이 되지 못한 부분은 다소 아쉽다.
‘아키라’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붕괴된 도쿄에 건설된 혼란스러운 도시 ‘네오도쿄’의 201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진=‘아키라’ 홍보 스틸 컷
아예 2020년을 제목으로 활용한 KBS 2TV 방송 어린이 공상과학만화 ‘2020 우주의 원더키디’(1989년 방송)에서도 지구는 암울하고 황폐하다. 지구가 인구 증가와 환경오염으로 황폐화돼 새로운 삶의 터전이 필요한 지구인이 우주로 향하는 내용이 ‘2020 우주의 원더키디’의 주된 내용이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출연한 1987년 개봉 영화 ‘런닝맨’의 배경은 2019년이다. 이 영화는 2019년 미국이 전체주의 국가가 됐다고 상상한다. 식량 부족으로 대량 학살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사회는 무시무시해진다. 정부는 고대 로마 시절처럼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고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런닝맨’이라는 경기를 도입한다. 사형을 받은 죄수들이 격투를 벌이고 이를 TV로 방송하는 것. 상대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잔혹한 경기지만 승리하면 사면 받아 휴양지에서 자유롭고 안락한 휴가를 누릴 수 있게 된다.
‘2020 우주의 원더키디’(1989년 방송)가 상상한 2020년의 지구는 인구 증가와 환경오염으로 암울하고 황폐하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막강한 인류의 적, 영화가 걱정한 미래의 모습
당연히 영화, 특히 SF 영화에선 ‘적’의 개념이 필수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라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 속 2020년의 적은 무엇일까. ‘런닝맨’에선 전체주의 국가가 된 미국 정부가 국민들을 감시 조정할 목적으로 ICS라는 중앙 관리 회로를 도입해 국민들의 자유를 철저하게 통제한다.
이병헌이 출연한 2009년 개봉 영화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도 배경이 2020년이다. 여기서 인류의 적은 테러리스트 군단 ‘코브라’. 일종의 테러리스트 조직이지만 현실 속 ‘이슬람국가’(IS) 정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무시무시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악당들이다.
과거 SF 영화들은 복제인간(내지는 인조인간, 사이보그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2019년을 배경으로 한 ‘블레이드 러너’다. 이 영화는 반란을 일으킨 뒤 지구로 잠입한 복제인간들과 복제인간을 찾아내는 블레이드 러너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특히 자신이 복제인간임을 모르는 복제인간을 둘러싼 정체성 문제는 이 영화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호평 받는 결정적인 포인트가 된다.
‘블레이드 러너’는 핵전쟁 이후 혼돈과 무질서로 휩싸인 2019년이 배경이다. 사진=‘블레이드 러너’ 홍보 스틸 컷
2005년 개봉 영화 ‘아일랜드’는 이를 정반대 시점에서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질병을 가진 인간에게 장기 제공을 위해 제작된 ‘복제인간’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지상 낙원 ‘아일랜드’에 가는 게 간절한 꿈이지만 사실 ‘아일랜드 행’은 스폰서(인간)에게 장기 등 신체부위를 제공하고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복제인간이고 ‘악역’은 인류다. 질병 치료를 위해 복제인간까지 활용하는 인간의 탐욕과 이를 활용해 돈을 버는 대기업의 자본주의가 ‘악’으로 그려진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