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로맨스에서 벗어나 콘텐츠 질 높여…잘나가던 케이블·종편은 스타 섭외 집중 ‘고전’
#‘동백꽃’이 피고 ‘낭만’이 돌아오다
요즘 월화수목금토일, 일주일 내내 시청률과 화제성 1위 드라마는 지상파에서 방송되고 있다. 월화는 SBS ‘낭만닥터 김사부2’가 절대 강자다. 배우 한석규를 앞세워 시즌2로 돌아온 이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은 무려 14.9%(닐슨코리아 기준). 2회는 18%까지 치솟으며 동시간대 방송되는 tvN ‘블랙독’(5.5%), JTBC ‘검사내전’(5.0%)을 압도하고 있다.
월화극은 배우 한석규를 앞세워 시즌2로 돌아온 SBS ‘낭만닥터 김사부2’가 절대 강자다. 사진=SBS ‘낭만닥터 김사부2’ 홈페이지
그 바통은 KBS 2TV 수목극 ‘99억의 여자’가 이어받는다. 영화 ‘기생충’의 헤로인이자 새로운 ‘칸의 여왕’으로 떠오른 배우 조여정을 앞세운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11.6%를 기록했다. 빈약한 스토리 탓에 점차 시청률이 하락하고 있지만 수목극 1위 자리는 굳게 지키고 있다.
주말로 넘어가면 SBS ‘스토브리그’가 버티고 있다. ‘스포츠 드라마는 망한다’는 편견을 비웃듯 1회 5.5%로 시작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1월 11일 15.5%로 최고점을 찍었다. 비시즌에 접어든 프로야구단이 다음 시즌을 준비하며 팀을 재정비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린 이 드라마는 배우 남궁민, 박은빈의 호연을 앞세워 ‘웰메이드’라는 평가를 받으며 시청자들의 단단한 지지를 받고 있다(관련기사 로맨스 빼니 ‘야덕’들이 푹~ 야구보다 재미있는 ‘스토브리그’의 비밀).
여기에 토일 방송되는 KBS 2TV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 역시 전작들의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 중반 시청률을 유지하며 여전히 맹주로서 위력을 발휘한다.
지상파 드라마 역습의 첨병은 지난해 방송된 KBS 2TV 수목극 ‘동백꽃 필 무렵’이었다. 주위의 편견과 냉대 속에서도 꿋꿋이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와 그녀를 지키려는 순박한 시골 경찰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시청률 6.3%로 시작했지만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23.8%로 막을 내렸다. ‘까불이’라는 연쇄 살인마를 배치시켜 스릴러적 요소도 가미한 ‘동백꽃 필 무렵’은 복합장르 드라마로서 전 연령층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
지상파 드라마 역습의 첨병은 지난해 방송된 KBS 2TV 수목극 ‘동백꽃 필 무렵’이었다. 연쇄 살인마를 배치해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한 복합장르 드라마로 전 연령층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진=KBS ‘동백꽃 필 무렵’ 홈페이지
‘동백꽃 필 무렵’과 비슷한 시기에 방송돼 시청률 면에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젊은 감각을 유지하며 ‘지상파 드라마는 진부하다’는 편견을 깬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과 관계없이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TV드라마 화제성 순위에서 수시로 1위를 기록했다. 10~20대의 사용 빈도가 높은 SNS 상에서는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지상파 드라마의 올드한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내는 데 성공했다.
SBS 드라마본부 관계자는 “지상파의 평균 시청률이 하락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좋은 콘텐츠가 나왔을 때 대중에게 미치는 파급력은 가장 크다. 케이블, 종편 채널의 경우 소위 ‘대박’이 난 작품도 시청률 10%에 도달하기 어렵지만, 지상파 드라마는 20% 고지를 쉽게 넘는다”며 “결국 콘텐츠의 완성도 높으면 지상파의 위력이 배가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왜 대중은 지상파로 돌아왔나?
대중이 다시 지상파 드라마로 눈을 돌린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콘텐츠다. 의학드라마는 극중에서 의사들이 사랑하는 이야기, 법정드라마는 법관들이 사랑하는 이야기라는 뻔한 로맨스에서 벗어난 것이 주효했다. ‘스토브리그’가 대표적이다. 이 드라마는 중반에 접어들 때까지 별다른 멜로 코드를 넣지 않았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남녀 주인공들의 ‘진도를 빼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지상파 드라마인 SBS ‘열혈사제’, KBS 2TV ‘닥터 프리즈너’ 등도 멜로 코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낭만닥터 김사부’ 역시 시즌1 때부터 의학과 돌담병원이라는 시골병원을 둘러싼 인간군상에 초점을 맞추며 전폭적 지지를 얻었다. 결국 사랑 이야기는 다만 거들 뿐이고, 대중은 신선한 이야기 자체에 집중한다는 의미다.
SBS ‘스토브리그’는 빤한 로맨스에서 벗어난 것이 주효했다. 사진=SBS ‘스토브리그’ 홈페이지
시즌제 드라마가 점차 정착해가는 것도 지상파 드라마의 달라진 점이다. 지난해 MBC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미니시리즈는 ‘검법남녀 시즌2’였다. 법의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드라마는 민지은 작가가 취재한 풍부한 표본과 정교한 대본이 빛을 발하며 웰메이드 시즌제 드라마로 정착했다. ‘낭만닥터 김사부2’ 역시 그 궤를 같이 한다. 타이틀롤인 김사부 역의 한석규를 제외하면 시즌1을 함께했던 배우 서현진, 유윤석, 양세종 등은 시즌2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담병원과 김사부라는 큰 틀 안에서 시즌1의 명맥을 이으며 방송 초반부터 시청률이 폭발했다.
반면 tvN, JTBC 드라마들은 왜 고전을 면치 못할까. 여러 가지 요인을 들 수 있지만 여러 드라마 외주제작사의 말을 종합하면 ‘지상파 드라마들의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스타 위주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스타들이 지상파 드라마를 선호하던 시절, tvN과 JTBC는 스토리에 집중했다. 하지만 스타들이 지상파보다 오히려 tvN, JTBC를 선호하면서 ‘대본이 좋은 드라마’가 아니라 ‘스타가 선택한 드라마’를 편성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2019년 초 이미 드라마 기획회의에서 보류된 작품이지만, 배우 A가 “내가 출연하겠다”고 나서자 편성된 드라마가 대표적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졸작이라는 평가 속에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한 중견 드라마 외주제작사 대표는 “스타가 붙으면 해외 수출이 용이하기에 제작사나 편성 방송사 입장에서는 선호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하지만 스타와 기획사의 입김에 이끌려 다니면 드라마의 질적 저하는 피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