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폭행·성희롱 논란…출연 정지·방송 중단 너머 아동·청소년 참여 프로 재점검할 때
12월 10일 ‘보니하니’ 라이브 방송에서 불거진 개그맨 최영수의 하니 폭행 논란 장면. 사진=보니하니 라이브 방송 캡처
#‘보니하니’가 던진 작지 않은 돌
12월 10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보니하니’에 출연 중인 개그맨 최영수가 보니 역을 맡고 있는 걸그룹 버스터즈의 멤버 채연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타격 장면이 직접 포착되지는 않았지만 ‘퍽’소리가 나고, 채연이 이후 팔 부위를 감싸고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어 폭행이 이뤄졌다는 추측이 우세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다른 개그맨인 박동근은 채연에게 “너는 리스테린 소독한 X”이라고 말했다. ‘리스테린 소독’은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을 상대로 한 은어인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은 커졌다.
이에 대해 최영수는 “때리지 않았다”고 해명했고, 채연 측도 “친분이 쌓여 생긴 해프닝”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결국 최영수·박동근은 출연정지 조치됐고, ‘보니하니’는 내부 정비를 위해 잠정 중단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채연이 현재 상황에 대해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자책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엄밀히 말해 직접 폭행이 가해지지 않았더라도,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인 채연을 상대로 위협을 가하는 동작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줄 수 있다. 박동근의 경우도, 채연은 그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하지만 ‘독한 X’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짐짓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이미 장난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게다가 그들이 교육방송 콘텐츠에 등장하는 출연자라는 점에서 도덕적 책임은 더욱 크다.
김명중 EBS 사장은 12월 11일 “사태의 심각성을 엄중히 받아들여 2명을 출연 정지하고, 관련 콘텐츠 영상을 삭제했다”며 “향후 출연자 선정 과정을 전면 재검토하고, 징계 등 후속 조치를 엄격히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허점은 계속 드러나고 있다. 대중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해당 영상에 대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민원을 200건 넘게 넣었다. 하지만 이 영상은 EBS 채널이 아니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스트리밍됐다. 방송법을 근거로 심의하고 처벌하는 방심위로서는 방송법에서 비껴있는 유튜브 콘텐츠에 대해서는 삭제를 요구할 수는 있지만 그들을 직접 제재하긴 어렵다. 점차 방송 권력이 TV에서 유튜브를 비롯한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심의 시스템조차 미비하다는 뜻이다.
‘보니하니’ 이전에도 몇몇 유명 유튜브 채널에서는 아동 학대에 가까운 콘텐츠가 제작돼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임신과 출산 연기를 시키거나 거대한 양의 대왕문어 혹은 매운 음식을 먹이는 콘텐츠가 올라오기도 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지적받은 몇몇 콘텐츠들이 삭제되기는 했지만 각종 매체를 통해 노출되는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확실한 장치가 없다는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항간에는 펭수 덕에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EBS가 ‘보니하니’ 사태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다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실상은 그 반대”라며 “그동안 대중의 관심사에서 상대적으로 비껴있던 EBS가 미처 짚지 못했던 문제를 이제야 바로잡을 기회를 가진 것이다. 추후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보니하니’를 넘어 어린이가 참여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 곳곳에 ‘제2의 보니하니’가 있다?
물론 대중문화계에서 어린이를 보호하려는 노력은 지속돼 왔다. 2015년에는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지침을 담은 대중문화예술인 표준 부속합의서가 제정돼 발효됐다. 이에 따르면 대중문화예술제작업자는 15세 미만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으로부터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대중문화예술용역을 제공받을 수 없으며, 용역제공시간은 1주일에 35시간을 넘으면 안 된다.
또한 15세 이상 19세 미만의 청소년 역시 용역을 제공하는 시간이 1주일에 40시간을 초과하지 못하고,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1일 1시간 1주일에 6시간까지만 연장할 수 있다. 이는 자라나는 청소년의 학습권·수면권·휴식권 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10대 연습생들이 많은 가요계의 경우, 아이돌 가수 데뷔를 원하는 적잖은 청소년들이 합숙생활을 하며 밤낮없이 트레이닝을 받지만 이를 감시하고 제재할 방법은 없다. 데뷔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의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오전부터 방송국에 와서 대기하다가 드라이 리허설, 카메라 리허설, 최종 리허설을 거친 후 무대에 오른다. 자신의 무대를 마친 뒤에도 프로그램이 종료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담당 PD에게 인사를 하고 현장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하루 근무 시간은 12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그들이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대다수 아역 배우들이 조·단역이기 때문이다. 성인 주인공에 맞춰져 스케줄이 돌아가기 아역들의 대기 시간은 무한정 길어지곤 한다.
영화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은 어린이 배우들을 존중하고 인격체로 바라보며, 신체 접촉 시 주의하라는 등의 촬영수칙을 미리 공표해 영화계에서 귀감이 됐다. 사진=영화 ‘우리집’ 홍보 스틸 컷
아동 성폭행 등 선정적 장면을 다룬 작품을 촬영하는 과정에서도 그들의 인권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보호를 위한 관련 법규 21조 2항에 따르면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에게 과다한 노출 행위나 지나치게 선정적인 표현행위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2011년에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다룬 영화 ‘도가니’ 촬영 도중 아동보호법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한 중견 영화사 대표는 “아이들이 많이 출연하는 영화 ‘우리집’을 촬영한 윤가은 감독은 어린이 배우들을 존중하고 인격체로 바라보며, 신체 접촉 시 주의하라는 등의 촬영수칙을 미리 공표해 영화계의 귀감이 된 바 있다”며 “모든 환경을 일순간 바로 잡을 수는 없지만 ‘보니하니’ 사태를 계기로 아동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보다 체계적인 장치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