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면 개그, 액션이면 액션, 조금 추접스러운(?) 브로맨스까지 “코믹 액션 영화의 새로운 역사 쓴다”
영화 ‘히트맨’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개그와 액션을 하나의 장르로 묶으려 할 경우 어느 한 쪽은 상대적으로 모자라거나 넘쳐 균형을 잡기 쉽지 않다. 이런 영화를 껄끄러워하는 이들은 과장되고 작위적인 개그 연기에 거부감을 느끼고, 그렇다고 무게만 잡아대면 ‘아저씨 원빈’인 줄 아는 액션 연기에도 썩 호감을 보이지 않는다. 제작자로서는 이 균형에 가장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행히 이 영화는 도가 지나치다 싶은 지저분한 개그의 맥을 리듬감있게 끊어내고, 무게를 너무 잡아서 스크린이 내려앉겠다 싶은 진지한 액션도 관객들이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센스 있게 조절한다. 연기의 냉온탕을 8배속으로 오가다 보니 극의 흐름이 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연과 조연을 막론하고 모든 배우들이 몸 사리지 않고 원초적인 개그에 빠져드는 모습도 ‘히트맨’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미 ‘동갑내기 과외하기’ ‘탐정 시리즈’ 등을 통해 자신만이 가진 개그 감각을 떨쳐 보였던 권상우는 물론이고, 3040세대에게 ‘가문의 영광 시리즈’로 대한민국 대표 코믹 배우로 자리매김했던 정준호의 코미디 귀환은 그야말로 “형님이 돌아왔다”다.
영화 ‘히트맨’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권상우가 맡은 전설의 암살 요원 ‘준’을 키워낸 국정원 악마교관 ‘덕규’로 분한 정준호는 극중에서 권상우와 살짝 추접스러운(?) 브로맨스로도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준에게 따라 붙은 국정원 요원들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한 무한 유턴 신에서 두 중년 남성의 실없는 주거니 받거니는 대사만 들어도 관객들의 폭소 세포를 자극한다. 정말 원초적인 개그까지도 몸 사리지 않고 해내는 두 명의 합을 보고 있자면 이 영화에 굳이 진지한 접근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신을 즐기기만도 벅차니까.
14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히트맨’의 기자간담회에서 권상우는 정준호와의 첫 호흡에 대해 “선배님이 제게 위안이 되고, 버팀목이 되는 느낌이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라며 “선배님 또한 극 후반으로 갈수록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주시니까 저희가 더 신이 나고 더 내려놓고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차 안에서 신들을 찍을 때 ‘우리 영화 재밌게 잘 나오겠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권상우의 혼신을 불태운 코믹 연기는 정준호와 함께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양 쪽 다 중후하고 근엄한 중견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욕과 액션과 침샘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는 연기로 그야말로 코믹 액션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영화 ‘히트맨’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준호는 2012년 ‘가문의 귀환’ 이후 8년 만에 코미디 영화를 다시 선택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정준호는 “세월이 빠르게 지나면서 코미디와 현실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나도 좀 발전한, 좀 더 깊이있고 재미있는 캐릭터로 코미디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던 찰나 이 작품을 만났다”라며 “코미디는 현장에서 상대 배우와 호흡이 중요한데 (저희가) 상당히 잘 맞아서 영화를 찍는 내내 스태프 반응이 괜찮았다. 노력만큼 관객들의 좋은 평가를 바란다”고 말했다.
권상우와의 첫 호흡에 대해서도 “촬영장에 가면 말은 없어도 동향이다 보니 통하는 게 많다. 서로가 눈빛과 행동을 보면 ‘잘 하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선배를 잘 배려해주고 현실의 여러 상황을 잘 이해하고 이끌어줬다”라며 “후배에게 민폐가 아닐까, 요즘 시대에 맞는 코미디가 나올까 고민했는데 후배들이 너무 잘 받쳐줘서 잘 연기했던 것 같다”고 자신을 보였다.
영화 ‘히트맨’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히트맨’은 최원석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는 ‘히트맨’의 탄생 비화에 대해 “코미디 영화를 사랑해 정말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꿈을 좇는 이야기도 담아내고 싶었다”라며 “꿈을 좇는 것은 말은 멋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지 않나. 하지만 그것을 희망적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 감독에 따르면 이 영화는 애초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권상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그는 “코미디와 화려한 액션이 다 되는 배우는 권상우 선배님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한편 영화 ‘히트맨’은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국정원을 탈출한 비밀 프로젝트 방패연 출신 전설의 암살요원 ‘준’(권상우 분)이 늘 역대급 별점테러와 악플을 받는 신세에 좌절하다, 술김에 국정원 시절 1급 기밀인 자신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리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았다.
새 웹툰은 하루아침에 초대박이 나지만 국정원 악마교관 ‘덕규’(정준호 분), 냉혈보스 ‘형도’(허성태 분), 방패연 후배 ‘철’(이이경 분)과 테러리스트들의 더블 타깃이 된 준은 아내 ‘미나’(황우슬혜 분)와 딸 ‘가영’(이지원 분)을 지키기 위해 ‘전설의 암살 요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분명히 총과 칼, 피와 살점까지 튀기고 있는데 도무지 진지해질 수 없는 코믹 액션의 진수를 보고 싶다면, “형이 왜 여기서 나와?” 라는 대사를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면 심심한 설 연휴를 위한 좋은 선택이 될 것. 110분, 15세 관람가. 22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