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승리가 ‘호남 고립’ 탈피 분수령…당권 경쟁 피하고 대세론 안주하면 ‘여론조사 1위 저주’ 시달릴 수도
당에 복귀한 이낙연 전 총리가 1월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몸집을 키워 돌아왔다.”
이낙연 전 총리가 1월 14일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온 직후 여권 관계자들이 보인 반응이다. 이 전 총리는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원내에 진입한 이후 17년 동안 호남·비노(비노무현) 프레임에 갇혔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손학규계에 속했을 만큼, 당 주류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3년 전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 발탁이 이 전 총리의 정치인생 전체를 바꿔놓은 셈이다.
관전 포인트는 이 전 총리의 정치 복귀 ‘타임 스케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1월 당 복귀→4월 서울 종로 출마→8월 당권 도전’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전 총리의 8월 당권 도전은 총선 결과에 따라 유동적이다. 이 전 총리가 종로 승리를 통해 대선 직행열차에 탑승한다면, 당 안팎으로부터 당권 도전을 권유받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비문(비문재인)계뿐 아니라 친문(친문재인)계 내부에서도 결은 다르지만, 이 같은 기류가 감지된다. 비문계의 이낙연 띄우기가 ‘대세론 형성’을 위한 필살기라면, 친문계 내부에선 ‘선 검증’의 연장선이다. ‘포스트 문재인 자리를 꿰차려면, 친문 방어막부터 뚫어보라’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재선의 친문계 관계자는 “이 전 총리는 여당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면서도 “대권으로 가려면 당 기여가 우선”이라며 당권 도전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일각에선 당권·대권 분리 규정 등을 이유로 차기 주자군인 이 전 총리의 당권 도전에 선을 긋기도 한다. 하지만 이 총리가 당권을 잡을 경우 20대 대선(2022년 5월) 1년 전까지는 대표직을 수행할 수 있다. 약 9개월간 자기 정치의 멍석이 깔리는 셈이다. 지지기반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 총리로선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전 총리 구상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는 자연인 신분과 동시에 당에 복귀했다. 그는 1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에 참석, 당 지도부가 위촉한 상임고문직을 수락했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 저는 매사 당과 상의하며 제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애초 민주당은 1월 말 중앙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출범 때 이 전 총리를 삼고초려할 계획이었지만, 이른바 ‘이낙연 효과’ 극대화를 위해 약 보름간의 시차도 줄였다. 여의도로 돌아온 이 전 총리는 ‘당 상임고문’을 비롯해 조만간 인선을 단행할 공동선대위원장, 종로 총선 후보자 등 세 개의 직함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낙연 전 총리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이해찬 당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첫 번째 시험대는 ‘총선 승리’다. 이 전 총리는 헌정 사상 첫 국회의장 출신인 정세균 국무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아 종로 수성에 나선다. 발판은 마련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최근 서울 종로구 교남동 한 아파트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이 전 총리 측은 전세 계약 전 이 아파트의 행정 등록상 주소지를 수차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결심만 굳으면, ‘이낙연 vs 황교안’의 빅매치가 성사된다.
이 전 총리 승리 가능성은 반반이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와 당 지지도 등을 감안하면 이 전 총리가 우세하지만 종로는 전통적으로 보수색이 짙은 곳이다. 15∼18대 총선에선 보수 계열 후보가 내리 연승했다. 자존심이 강한 종로 유권자의 특성도 변수다. 이 전 총리가 정 총리에 이어 또다시 종로에 깃발을 꽂는다면, 네 번째 종로 출신 대통령 탄생에 성큼 다가선다. 종로는 이미 윤보선·노무현·이명박, 세 대통령을 배출한 ‘정치 1번지’다.
이낙연 전 총리 임무는 종로 수성에 그치지 않는다. 당의 승리와 함께 이 총리가 선대위원장직을 맡을 ‘권역의 압승’도 끌어내야 한다. 민주당은 이 전 총리에게 전국 단위보다는 권역별 지원유세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오세훈 학습효과’ 때문이다. 보수진영 대권 잠룡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대 총선 당시 정 총리와 종로에서 맞붙었지만, 타지역 유세에 집중하다가 완패했다. 오 전 시장은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39.7% 득표율에 그쳤다. 정 총리는 52.6%로, 예상 밖 대승을 거뒀다. 여권 한 관계자는 “종로와 연이 없던 오 전 시장이 다른 지역 유세현장을 다니는 모습이 언론에 나오면서 지역 주민들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고 말했다.
국무총리비서실 1기 멤버였던 배재정 전 비서실장(부산 사상구), 지용호 전 정무실장(서울 동대문을), 이상식 전 민정실장(대구 수성을)을 비롯해 문은숙 전 시민사회비서관(경기 의정부을), 우기종 전 전남도청 정무부지사(전남 목포), 이남재 전 이낙연 전남지사 정무특보(광주 서구을) 등 ‘이낙연 사단’ 생환 여부도 이낙연 대세론의 관전 포인트다.
원내에서는 이 전 총리 지역구를 물려받은 이개호 의원(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이, 하부조직에서는 국무총리실에 몸담았던 남평오 전 민정실장, 노창훈 전 정무지원과장, 양재원 전 민원정책팀장, 김대경 전 주무관 등이 이낙연 사단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리는 1월 15일 동교동계 정대철 전 의원과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도 만나 정치 복귀 의견을 교환했다. 동교동계 인사의 세 규합 신호탄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전 총리가 종로와 함께 여권 총선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된다면, 그간 족쇄로 작용했던 ‘호남 고립’을 완전히 탈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호남 후보 필패론’은 광주와 전남·북 후보의 발목을 번번이 잡았던 아킬레스건이었다. 정 총리도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호남 후보의 경쟁력 약화 논란에 시달리면서 예선에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전북의 맹주였던 정 총리가 종로에 둥지를 튼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호남은 진보진영 최대 텃밭이지만, 호남 후보들은 경선 때마다 고립무원에 빠졌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호남 후보 필패론은 일종의 저주와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 전 총리의 종로 입성과 총선 승리가 ‘호남 고립’ 탈피의 최대 분수령이라는 얘기다.
그다음 단계는 당권 도전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임기는 올해 8월까지다. 2년 임기인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2018년 8월 26일 당 대표로 선출됐다. 다만 민주당이 4·15 총선에서 참패하거나 예상 밖으로 고전한다면,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이 총리의 당권 도전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 선거 패배한 당의 통상적인 시나리오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조기 전당대회’ 등이다. 이 과정에서 이 전 총리가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드러낼 경우 ‘이낙연 대세론’은 날개를 달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 전 총리가 총선 이후 치고 나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차기 당권 경쟁은 사실상의 ‘대선 전초전’이다. 차기 후보가 나오든, 그 대리인이 나오든, 차차기 후보가 나오든, 미래권력을 둘러싼 전쟁의 장이다. 이 전 총리가 친문계에 막혀 당권 도전에 실패한다면,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5부 능선을 넘은 대권 길목에서 ‘국무총리 잔혹사’를 이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굳이 안 나와도 꽃길을 탈 수 있는데, 모험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당내 요구에도 불구하고 몸 사리기로 일관한다면, ‘여론조사 1위 저주’에 시달릴 수도 있다.
상수는 이 전 총리 여의도 컴백에 따른 ‘당내 역학구도 변화’다. 비문계와 호남 전·현직 의원들은 ‘못 먹어도 고’를 외칠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 총선 국면에서도 ‘이낙연 대세론’이 공고할 경우 친문계 일부에서도 이탈자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점은 자기 정치에 나선 이 전 총리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분기점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여당이 이 전 총리의 자기 정치를 둘러싸고 극한 계파 갈등에 빠질 때다. 이는 진보진영 고질병이다. 2007년 대선 패배도, 2012년 총선 패배도 계파 갈등이 한몫했다. 이 경우 이 전 총리의 ‘내가 제일 잘나가’ 외침은 딱 여기까지다. ‘국무총리 잔혹사’와 ‘여론조사 1위 후보 저주’를 풀 열쇠는 이 전 총리의 의지에 달렸다. 이낙연 리더십은 진짜 시험대에 올랐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