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정부 비판 대자보 붙인 대학생 약식기소 벌금형 ‘시끌’
2019년 11월 말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붙은 대자보. 사진=전대협 제공
2019년 11월 말 단국대 천안캠퍼스 학생회관과 체육관 등 5곳엔 문재인 정부의 친중 노선을 비판하고 홍콩의 자유화를 지지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얼굴과 함께 “나의 충견 문재앙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연동형비례제를 통과시키고 총선에서 승리한 후 미군을 철수시켜 완벽한 중국의 식민지가 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칠 것”이라는 글이 적혔다.
천안 동남경찰서는 곧장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차량을 추적해 대자보를 붙인 전대협 회원 김 아무개 씨(25)를 잡아들였다. 혐의는 건조물 침입이었다. 수사는 속전속결이었다. 2019년 12월 16일 검찰에 송치된 이 사건은 10일 뒤 즉각 약식기소로 판단됐다. 벌금 100만 원이 부과됐다.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의 일이었다.
이 사건이 ‘정권 차원의 전대협 탄압’으로 알려지자 급했던 건 단국대였다. 단국대 관계자는 “우리는 건조물 침입을 당한 적이 없다. 대학 캠퍼스는 외부인에게 24시간 개방된 공간으로 누구나 오가는 곳이다. 외부인이 대자보 등으로 정치 의사를 표현해도 함부로 떼지 않는 것이 대학 전통이고 수사를 의뢰한 적도 없다”고 했다. 경찰은 그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죄목을 적용했다”고만 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일단 단국대는 사실상 수사 의뢰에 가까운 첩보를 경찰에 제공했다고 드러났다. 천안 동남경찰서 보안계 관계자는 “2019년 4월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보안계는 대자보 등이 붙으면 이적물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단국대에 연락해 ‘이런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에 단국대 학생처 직원이 ‘CCTV 등 자료가 다 있다’고 먼저 연락을 줘 현장에 출동했다”고 밝혔다.
물론 단국대 입장에서는 경찰 요청이 있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펼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 경찰의 행보다. 현장에 출동한 보안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이 대자보를 이적행위로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보안계는 국가보안법 등의 문제를 조사하는 곳이다. 하지만 출동 뒤 올라온 보고는 건조물 침입으로 20대 남성을 잡아 넣는 족쇄가 됐다. 천안 동남경찰서 보안계장은 “우리 계에서 적용할 수 있는 건이 아니었다. 다른 과에 적용 가능성을 물어봤다. 형사계에서 건조물 침입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대자보 붙이는 게 표현의 자유라고 판단됐다면 단국대는 굳이 이 사실을 CCTV 장면까지 확인해가며 경찰에 먼저 연락할 필요가 없다. 경찰은 첩보가 들어오더라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드러나지 않으면 굳이 타 부서에 협조를 요청해 “다른 법 적용이 가능한지 알아보라”고 안 해도 됐다. 하지만 절차대로 진행된 이 사건은 20대 청년을 범죄자로 만들어 버렸다.
전대협의 대자보나 유인물 배포가 하나같이 건조물 침입이 죄목으로 적용됐다. 명예훼손 등으로 적용한 경찰서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사실 이와 같은 정권 비판 대자보 부착이나 전단 배포는 2015년 이전까지 애초 국가원수모독죄나 명예훼손 등으로 처리됐다. 그런데 2015년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 이후 더 이상 국가원수모독죄나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하지 못하게 됐다. 그러자 경찰이 건조물 침입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1월 1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뿌려진 전단. 사진=전대협 제공
경찰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있었던 정부 비판 전단 배포 역시 건조물 침입 혐의를 적용했다. 2019년 5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단을 뿌린 혐의로 당시 전대협 회원이었던 김 아무개 씨(33)는 건조물 침입 혐의를 받아 경찰에 붙들려갔다. 영화 ‘어벤져스’의 악당 타노스와 문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전단에 담겼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월 10일 경찰은 전대협 회원 김 아무개 씨(30)를 붙잡았다. 이날 오후 3시쯤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 독재 정권은 민주화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전단 2000장을 지상으로 뿌린 혐의 때문이다.
한국 언론의 심장이라는 한국프레스센터 소유는 서울신문사와 정부로 나뉘어 있다. 한국프레스센터는 지하부터 11층까지 서울신문사 소유고 12층부터 20층까지는 정부 소유다. 전대협은 정부 소유인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전단을 뿌렸다. 경찰은 정부 소유 건물에서 전단을 뿌린 청년을 건조물 침입으로 붙잡았다. 수사 속도도 초특급이다. 정식 신고 절차 및 고소를 거쳐도 100일을 보통 넘기는 사건이 한 달 만에 기소까지 이뤄졌다. 전대협이 뿌린 대자보와 전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담겼다. “문재인 정권은 민주, 인권, 평화, 노동, 공정 법치를 외쳐왔지만 지난 3년간 이들이 말한 민주는 독재적 반헌법 인민민주주의였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