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평’ 해놓고도 외모지상주의 아닌 척…소개받은 당사자에게도 실례되는 말
웹툰이 대세인 요즘으로 치면 모니터를 부수고 나왔다 해야 정확할 듯하지만 어쨌든 만찢-이란 말은 어느 사이엔가 연예인들의 외양을 이야기할 때 널리 쓰이는 수식어가 됐다. 인터넷 이용자들 사이에서 돌던 말이 언론에 등장한 것은 2012년 7월 무렵부터로 이 키워드를 붙인 언론 기사만 작성일 기준으로 5200건이 넘어간다. 유행어처럼 예능 등에서 쓰인 것까지 합치자면 당연히 훨씬 더 많다.
마치 외모 칭찬인 듯 쓰이는 표현이지만, 이 표현이 바로 그 ‘칭찬’이란 어감으로 계속해서 노출되는 데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외모지상주의가 규정하는 아름다움이란
사실 사람의 외모와 관련한 관점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를테면 “사람을 타고난 외모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점은 일종의 도덕적 규율이지만, 한편으로 “마흔을 넘긴 사람은 얼굴 생김새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모두 담겨 있다”는 말은 단순한 인상론을 넘어 다수의 오랜 경험이 만들어낸 통찰이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논리와 이성을 떠나 그 자체로 힘을 만들어내는 아우라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관점들은 곧잘 충돌을 일으킨다. 어쨌거나 사람은 머리로 아는 대로만 움직이는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들어온 데에서 오는 인상평을 완전히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인상평이 마치 사회 규범처럼 자리 잡는다면 그게 곧 ‘외모지상주의’로 직결된다. “아름다움은 곧 힘이고 권력이다”라는 일면 수긍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답일 수만은 없는 이 화두 앞에서 많은 이들이 ‘노오력’과 포기와 체념을 겪고, 편견을 강화하기도 하며, 반대로 적극적으로 화두에서 자유를 추구하기도 한다.
그래도 외모지상주의라는 표현이 지닌 어감에 부정적인 면이 섞여 있듯, 이것만으로 사회적 기준을 두어선 안 된다는 일종의 합의와 비판이 서 가고 있다. 성형한 여성을 통해 미에 관한 사회의 고정관념과 암묵적 압박을 풍자해낸 만화 ‘내 ID는 강남미인!’이나 화장이라는 과정을 통해 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딪쳐야 했던 외모 차별과 굴레를 보여주는 만화 ‘화장 지워 주는 남자’ 등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도 여기에 있다. 사회 기저 인식과 분위기는 어쨌든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집단무의식에 가까울 만큼 사회별 특성마저 아득히 초월하는 미의식을 자극받음으로써 아름답다는 경탄을 절로 터트리는 경우가 분명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각자를(그리고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미적 기준이 고스란히 굴레로 작동하는 경우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런 굴레를 강제하는 관점이란, 지금 시대에 이르러서는 분명한 용도 폐기 대상이다.
#‘만찢’, 만화를 동원해 포장한 외모지상주의
이런 견지에서 ‘만찢’이라는 표현을 보자. 이 말은 두 가지 이유에서 상당히 위험하다. 일단 먼저 주목할 것은 이 표현이 궁극적으로는 외모지상주의를 되레 드러내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사람을 상대로 “만화책을 찢고 나왔다”라고 부른다는 건 어떤 함의를 찾든 결국은 대놓고 하는 외모 평가다. 그 형태가 연예인 뒷모습 사진만 골라 놓고 “숨 막히는 뒤태” 같은 제목을 붙이는 어느 뒤태 전문 언론인의 습관보다는 나을지 모르겠으되, 결과적으로는 대상을 소개하는 데에 최우선 순위를 외모에 두고 있으면서 만화를 끌어 붙임으로써 적당히 외모지상주의가 아닌 척하는 것이다. 결국은 ‘만화’를 붙여 부정적 뉘앙스를 희석함과 동시에 오히려 외모 이야기를 먼저 끄집어내는 스틸샷 조회수 장사로 소비하기 알맞게끔 하는 포장재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데 더 큰 문제는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다”는 말이 만화에 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이 표현은 만화라는 창작물 가운데에서 오로지 겉으로 드러나는 그림, 또 그 가운데에서 가상 인물인 캐릭터의 조형에만 오롯이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이 말은 결국 “만화는 현실에 없는 것=비현실적”이며 또한 “만화의 주연 캐릭터는 당연히 멋있고 예쁘다”라는 발상을 깔고 있다.
하지만 만화가 다루는 대상은 현실과 비현실에 걸쳐 매우 다양하고 넓게 퍼져 있으며, 진짜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형태가 아니어도 그 안 인물들이 품는 감정과 겪어내는 갖가지 일화는 그 안에서만은 분명한 현실이다. 만화 캐릭터의 미형은 일면 독자의 이입과 진입장벽을 낮춰 시장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서 선택되곤 하지만 작중 비주얼은 그 세계 안에서 조물주인 작가가 정한 작중 세계 속 약속일 뿐이다.
심지어 모든 만화 캐릭터-설령 주인공으로 한정한다 해도-가 미형으로 조형된 것만도 아니고 모든 만화가 픽션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만화에는 선남선녀의 로맨스 장르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자전적 경험의 정리는 물론 르포나 다큐멘터리 장르를 통해 곧잘 현실의 무게를 전달하기 위한 방식이나 도구로도 선택되곤 한다. 그래서 만화라는 매체를 현실에 없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데에 동원하는 시선은 만화를 너무나 초보적으로 오해하는 데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상 그 자체에 주목해주길
이렇듯 ‘만찢’이란 말은 만화를 멋대로 현실에 대치되는 대상으로 놓는다는 점에서 실례지만, 이 표현으로 소개 받은 당사자에게도 실례를 끼치는 말이다. 기껏 무언가를 하기 위해 나온 사람에게 대뜸 “내가 보기에 당신 외모는 만화처럼 현실에 없을 것 같네요”라고 ‘얼평(얼굴 평가)’ 해놓고는 딱히 할 말이 없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외모 평가를 해놓고도 외모지상주의가 아닌 척하고 있잖은가. 그래서 만찢은, 만화 원작 영상물을 원작과 함께 소개할 때 정도가 아닌 이상에야 절대로 칭찬이 될 수 없는 말이고 되어서도 안 된다.
남에 관한 정보로 관심을 끌기 위해 애쓰는 행태는 이제 누구랄 것도 없을 만큼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기왕 누군가를 소개하고 싶다면 이제는 저런 손쉬운 실례에 멈추기보다 대상이 누구고 무얼 하려고 그 자리에 있는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트래픽 또는 조회수, 공유 수가 우선인 인터넷 시대에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지만 모두가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 자체에 조금씩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