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주 이사직 복귀 시도 포기해야 화해 가능…접점 사라진 서미경 모녀와의 관계 정리도 주목
신격호 명예회장 영정 앞에 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롯데그룹
#부친 사망 계기로 두 형제 화해할까
고 신격호 명예회장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두 아들의 화해를 보지 못했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신동빈 회장은 2015년 롯데그룹 경영권을 두고 ‘형제의 난’을 벌였다. 신격호 명예회장 생전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하지 못하면서 생긴 사달이다.
형제의 난 이후 법정 다툼과 이사회 분쟁 등으로 소원해진 두 사람은 공식석상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전혀 교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부친의 별세를 계기로 다시 마주하게 됐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2018년 10월 신동빈 회장 국정농단·경영비리 재판 2심 선고 이후 1년 3개월 만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은 부친의 임종을 함께 지켰다고 한다. 장례기간 내내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진 신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상주 역할을 하며 나란히 자리를 지켰다.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신격호 명예회장 빈소에서 함께 자리한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앞)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최준필 기자
실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해 ‘부친의 당초 구상대로 본인은 일본롯데를 맡고, 한국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경영하는 것으로 합의해 형제간 분쟁을 멈추자’는 내용의 편지를 신동빈 회장에 전달했다. 하지만 롯데그룹 측은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시도를 진정한 화해보다는 경영권 복귀를 위한 의도로 본 것이다.
형제간 화해를 위해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롯데홀딩스 이사직 복귀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이 광윤사 등을 통해 일본롯데 이사직 복귀를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사실 신 전 부회장 입장에서는 남은 카드가 얼마 없다”며 “부친 임종을 계기로 동생에게 화해를 요청할 수 있다”고 화해 가능성을 점쳤다.
#서미경과 딸 신유미
신격호 명예회장의 부인은 공식적으로 3명이다. 세 번째 부인인 서미경 씨와는 사실혼 관계를 맺으며 딸 신유미 씨(전 롯데호텔 고문)를 뒀다.
서미경 씨는 장례 첫날인 지난 19일 밤 11시 10분쯤 신격호 명예회장 빈소를 찾아 30분쯤 머물다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딸 신유미 씨와 함께하지는 않았다. 신 씨는 딸로서 상주에 이름을 올렸다.
신 명예회장은 두 사람에게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유미 씨는 2010년부터 2017년 2월까지 롯데호텔 고문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롯데그룹 내 어떤 역할도 하지 않고 있다.
2018년 10월 롯데 경영비리 혐의 선고공판에 출석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세번째 부인 서미경 씨. 사진=박정훈 기자
신격호 명예회장이 말년에 법원에 출석하고 법적 처벌을 받은 것도 서미경 씨 모녀를 챙겨주다 적발됐기 때문이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시네마 영화관 매점 운영권을 서 씨 등이 최대주주인 회사에 헐값에 넘겨 롯데쇼핑에 손해를 끼친 혐의와, 신 씨 등에 101억 원의 허위 급여를 지급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과 서미경 씨 모녀의 접점이 많지 않기는 하다”면서도 “신동빈 회장 등 자녀들이 부친이 살아 있는 동안은 서미경 씨 모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제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친 별세 이후 개인 재산 등을 두고 어떻게 나올지 지켜볼 필요도 있다”고 귀띔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남은 개인 재산은 총 1조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롯데지주(3.1%), 롯데제과(4.5%), 롯데칠성(1.3%), 롯데쇼핑(0.9%) 등 국내 상장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비상장사 롯데물산 지분 6.87%도 갖고 있다. 4500억 원대로 평가 받는 인천 계양구 골프장 부지도 신 명예회장 명의다. 일본에서도 광윤사와 일본롯데홀딩스 등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신 명예회장의 자산과 지분 처리를 두고 관심이 모아진다. 2017년부터는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인 사단법인 선이 맡아왔다. 신 명예회장이 사망하면서 한정후견은 종료되고 법에 따른 재산의 상속 절차가 개시된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전광판에 게시된 고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빈소. 상주에 딸 신유미 씨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미리 작성한 유언장이 있다면 그에 따라 상속 절차가 이뤄진다. 신유미 씨 역시 호적에 올라있는 만큼 재산 상속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유언장의 작성 시점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신 명예회장이 치매 증상 등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상실된 상황이라면, 유언장 효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개인 재산과 관련된 내용은 알려진 바가 없다”며 “유언장 내용도 가족들만 알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을 아꼈다.
#신동빈의 일본기업 이미지 벗기
신격호 명예회장은 일본으로 넘어가 껌 하나로 시작해 부동산업과 제과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 한국으로 돌아와 백화점과 마트 등 유통을 중심으로 화학, 호텔, 테마파크, 금융 등 전 분야로 사업을 넓혀 롯데를 재계 5위 그룹으로 성장시켰다(관련기사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별세…껌으로 시작해서 유통공룡 이루기까지). 처음 기업을 세운 곳이 일본인 데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이 일본에 있고 일본 관련 비즈니스가 상대적으로 많은 등의 이유로 일본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실제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로 불거진 일본 불매운동에서 롯데그룹은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롯데그룹이 한국에 진출한 1967년과 동시에 고속성장 해 1980년대 후반 이미 한국롯데가 일본롯데 규모를 추월했다. 2013년에는 83조 원의 매출을 올려 4조 5000억 원의 일본 롯데와 격차를 20배로 벌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 명예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 오너일가를 둘러싼 일본 국적 의혹은 이어지고 있다. 롯데그룹으로서는 국내에서 이러한 이미지 탈피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도 경영권 안정을 위해서는 일본롯데와의 관계 정리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신동빈 회장은 올해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과제를 해결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주사 전환과 신 회장이 지향하는 ‘원 롯데’ 구상의 완성에 호텔롯데 상장만 남겨두고 있다. 일본롯데홀딩스와 일본롯데 계열사가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는 호텔롯데 상장은 호텔롯데에 대한 일본롯데의 지분을 낮추고 한일 롯데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이다. 계획대로 국내 증권 시장에 상장한다면 일본기업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호텔롯데 상장 과정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려면,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면세점의 실적이 관건이다. 이에 따라 호텔롯데는 새해 면세점 해외 진출을 활발히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