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재계 1세대…한·일 양국에서 성공한 사업가
#‘롯데’를 세우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1922년 경상남도 울주군(현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이는 호적상 출생년도이고 실제로는 1921년생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일요신문DB
그는 폭격으로 인해 공장이 무너지는 등 몇 차례 좌절을 겪었지만 1946년 도쿄에서 비누와 포마드 등 유지 제품을 생산하며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1947년에는 신 명예회장은 껌에 관심을 갖고 껌 사업에도 뛰어들어 소위 대박을 이뤘다. 많은 돈을 벌어들인 그는 1948년 현재 롯데그룹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주)롯데를 설립했다.
롯데라는 이름의 기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신 명예회장이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인물 ‘샤롯데’에서 따왔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껌 회사 리글리 사의 상품인 ‘로타(Lotta)’에서 기원한다는 것이다. 다만 재계에서는 전자의 설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 진출 후 사세확장까지
1950년대 후반, 롯데는 한국에 진출해 서울에 공장을 만들어 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한국 롯데의 경영을 맡았던 신 명예회장의 동생 신철호 전 사장이 서류를 위조해 롯데를 인수하려다가 발각돼 이른바 ‘형제의 난’이 불거졌다. 다음은 1966년 ‘동아일보’ 기사의 일부다.
“1958년 5월, 신격호 명예회장이 신철호 사장에게 150만 원의 자본금을 줘 한국 롯데를 설립, 5형제가 공동으로 경영해오던 중 신철호 사장은 재산과 이권을 가로챌 목적으로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춘호 씨(현 농심그룹 회장)의 도장 등을 위조해 롯데 이사직을 사임한 것처럼 등기부상의 명의를 변경했다. 검찰은 내사를 진행하다가 확증을 잡고 신철호 사장을 구속했다.”
이후 한국 롯데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관리 하에 운영됐다. 1970년대 한국 롯데는 칠성한미음료(현 롯데칠성), 삼강산업(현 롯데푸드) 등을 인수하면서 종합 식품기업으로 발돋움했다. 1979년에는 롯데리아 1호점을 세우면서 국내 최초로 패스트푸드에 진출했으며 비슷한시기 롯데쇼핑센터라는 백화점을 세워 유통업에도 진출했다.
1990년대에는 부산할부금융(현 롯데캐피탈)을 설립해 금융업에도 진출했으며 롯데시네마를 론칭해 영화관 사업까지 나섰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각종 인수·합병(M&A)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해 거침없이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당시 롯데는 두산주류BG, 파스퇴르유업, 바이더웨이, 동양카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인수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국적 논란
롯데그룹이 재계 서열 5위까지 올라가는 와중에도 한동안 신 명예회장의 국적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사진=일요신문DB
그간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아왔던 롯데는 2015년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롯데그룹은 당시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한국 국적으로 출생하여 현재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하며 단 한 차례도 한국 국적을 포기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종합소득세, 재산세 납세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이 그간 일본에서 시게미츠 타케오로 활동해왔고, 신동주·동빈 두 아들도 각각 시게미츠 히로유키, 시게미츠 아키오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 진실과 상관없이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아왔다.
#왕자의 난과 퇴진
2015년 1월 신동주 전 부회장이 돌연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해임당했다. 이를 놓고 각종 추측이 오갔지만 롯데 측은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같은해 6월에는 신동빈 회장이 일본 L투자회사 12곳 모두에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L투자회사는 일본 롯데가 지주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름을 바꾼 기존 계열사들이다. 신 회장은 그해 7월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도 선임됐다.
그런데 2015년 7월 말, 신격호 명예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신 회장의 해임을 시도했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은 긴급 임시 이사회를 열어 신격호 명예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에서 전격 해임시켰다. 신동빈 회장의 승리였다.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을 회장으로 임명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히는 한편 신동빈 회장에 대한 해임 지시서를 공개했다. 이에 신동빈 회장 측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지시서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맞섰다. 여기에 롯데그룹 계열사 사장단들이 신동빈 회장을 지지하면서 신 회장이 대세가 됐다. 이후 신 전 부회장은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의 해임안을 제안했지만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을 거치면서 신격호 명예회장은 총괄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지위가 바뀌었다. 명예회장은 이름뿐인 직책으로 별다른 권한이 없다. 2017년 6월, 신 명예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해 사실상 신격호 체제는 막을 내리게 됐다.
#말년과 사망
신 명예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난 후에도 좋지 못한 말년을 보냈다. 2016년 롯데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대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이때 신 명예회장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서미경 씨와 장녀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을 헐값에 넘긴 배임 혐의를 받았다. 또 서미경 씨 딸인 신유미 씨에게 허위 급여를 지급한 혐의도 같이 받았다.
2017년 12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비리 혐의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2017년 말, 법원은 신 명예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지만 고령인 점을 감안해 구속은 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2심 재판부는 징역 3년으로 감형했지만 이번에도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신 명예회장은 소공동 롯데호텔에 거주했지만 2017년 롯데호텔이 개보수 공사를 시작하면서 잠실 롯데월드타워로 거주지를 옮겼다. 지난 6월 19일, 롯데호텔의 공사가 끝나자 신 명예회장은 다시 롯데호텔로 돌아왔다. 그러나 90대인 신 명예회장에게 거주지가 바뀌는 등의 환경 변화는 건강에 치명적이었고, 이후 수차례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