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권 행사 여부 결정 안 됐다”지만 카카오가 쥔 지분 1% 경영권 향방 가를 캐스팅보트 가능성
경영권 분쟁이 한창인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면서 다가오는 주주총회에서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재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2019년 12월 200억 원을 투입해 한진칼 지분을 1%가량 매입했다. 주주명부 폐쇄일인 2019년 12월 26일 이전에 매입한 것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행사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카카오 측 설명이다.
카카오는 대한항공과 앞서 최근 업무협약(MOU)을 맺은 데 따른 협력 차원이라며 경영권 개입 여부에 선을 긋는다. 카카오 관계자는 “전사적으로 협력해 시너지를 내고자 지분 투자를 했다”며 “의결권 행사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경영권에 개입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대한항공과 카카오는 2019년 12월 5일 여러 사업 분야에서 협력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
그러나 카카오 주장과 달리 지분 1%는 조원태 회장의 ‘백기사’라는 것이 재계와 금융투자업계 중론이다. 남매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데다 3월 주총을 한 달 남짓 남겨두고 여론전이 치열한 지금, 공개하지 않아도 될 지분 보유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증권거래법상 지분이 5% 이상이면 주요주주로 간주돼 지분 변동이나 보유 목적 변경 등을 공시할 의무가 있다. 카카오는 지분 1%임에도 보유 사실이 공개됐다.
특히 조 회장 입장에서는 3월 주총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호 여론을 형성해 기타주주 표심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총수 일가를 비롯한 델타(보유 지분 10%)와 KCGI(17.29%), 반도건설(8.28%) 등 주요주주 표심도 중요하지만, 표 대결이 양측 박빙으로 전개될 경우 국민연금(4.11%)과 소액주주(30.38%)의 판단에 따라 조 회장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공개하지 않아도 될 지분 1%가 드러난 데는 취임 이후 6개월간 젊고 새로운 기업 이미지를 만들고자 힘썼다는 것을 강조하고, 앞으로 카카오 기술·플랫폼을 접목해 서비스를 혁신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주주들에게 경영능력을 입증하려는 조 회장 의지가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며 “앞으로도 이런 성과들 위주로 기타주주를 설득하는 작업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실제 2019년 11월 대한항공은 15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기내안전 영상을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이 출연하는 뮤직비디오 형태로 제작하는 등 젊은 이미지로 탈바꿈을 시도해왔다.
모빌리티에 힘쓰는 카카오와 혁신에 주력하는 대한항공의 이해관계가 합치한다는 점도 양측이 손잡을 만한 이유다. 카카오는 지난해 9개 택시회사를 사들이고 국내 최대 가맹택시사업자 타고솔루션즈(현 KM솔루션즈)를 인수하는 등 승차서비스사업에 주력하는 동시에 카카오T바이크, 주차장 연결 서비스 등으로 다양한 이동수단·시설을 연결해왔다.
카카오가 향후 항공권과 숙박시설 예약 음식점·쇼핑몰 추천 등 앱 하나로 쇼핑과 배송, 영화관람 등 모든 서비스를 연결하는 복합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거듭나려 한다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진입장벽이 큰 항공 분야에 직접 진출하기보다 대한항공과 협력해 사업 범위를 확장하려는 전략이라는 것.
대한항공 입장에서도 카카오의 빅데이터·인공지능(AI) 기술과 국민적 플랫폼 카카오톡을 활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개개인 특성에 맞는 마케팅을 펴거나 앱 하나로 항공권을 예약하는 등 이용 편리성을 높일 수 있다. 서비스 혁신에 따른 기업가치 제고는 주주들에게 경영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상황 아래 조 회장 체제에서 MOU를 체결했다는 점에서 경영권·사업권을 쥔 조 회장이 향후 사업 협력을 약속하며 카카오에 지분 매입을 요청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항공 사업을 이끄는 현재 수장은 조 회장으로, 그 체제 아래 카카오와 MOU를 맺은 만큼 카카오가 우군일 가능성이 높다”며 “지분 1%라도 급한 조 회장과 사업 확장을 위해 대한항공과 협업이 필요한 카카오 간 내부적 딜이 이뤄졌을 수 있다”고 했다. 앞의 IB업계 관계자도 “지난해 양사의 MOU 체결 소식에 겉으론 전략적 제휴지만 사실상 지분 매입을 통한 백기사 역할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많았다”며 “지분 매입 사실이 공개되면서 확실해진 것”이라고 했다.
카카오가 2019년 12월 한진칼 지분을 1%가량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진칼 경영권 분쟁의 변수가 늘었다. 카카오는 경영권 참여 목적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금융투자업계와 재계에서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 우군일 것으로 보고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2019년 6월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카카오의 1% 의결권은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6.49%)과 조원태 회장(6.52%)의 지분율 차이는 0.03%로 극히 미묘해 지분 1%가 아쉬운 상황이다. 다른 주요주주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뚜렷하지 않다.
IB업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과 김남규 KCGI 부대표, 반도건설 임원이 최근 회동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세 사람이 힘을 합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KCGI는 그간 경영권 참여 명분으로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갑질 문제를 지적하며 전문경영인 도입을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과연 손을 잡을지 의문이다. 반도그룹도 조양호 전 회장 시절 인연으로 투자했을 뿐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변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총수 일가 간 지분율이 비등한 데다 KCGI와 반도그룹, 국민연금의 입장이 불분명하고 복잡해 팽팽한 대결구도가 형성될 경우 카카오 지분 1%가 경영권 향방을 가르는 캐스팅 보트가 될 수 있다”며 “다만 기타주주 영향력도 크고 총수 일가 간 합의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치열한 여론전과 합종연횡의 결론은 주총이 돼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