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증 환자 대다수 3040 대졸 회사원…“피해자 목소리 내기 어려운 토양” 범죄로 발전
일본 통계에 따르면 성 의존증의 70%가 30~40대 남성들이었다. 직업별로는 회사원이 가장 많았고,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사진은 영화 ‘치한전차’ 스틸컷.
누구나 성욕을 가지고 태어난다. 특히 사춘기 시절엔 성적 호기심이 왕성하고, 성적 욕구도 강하다. 하지만 이들이 성 의존증이 된다거나 하물며 성 범죄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성 의존증으로 발전하는 걸까.
통계에 따르면, 성 의존증의 70%가 30~40대 남성들이었다. 직업별로는 회사원이 가장 많았고,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정신보건 복지사 사이토 아케미 씨는 “치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만나보면, 의외로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남성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직장에서는 성실한 샐러리맨으로, 가정에서는 좋은 남편이자 아빠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성범죄를 반복하다 붙잡혀 ‘청천벽력 같은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사이토 씨는 “평소 이들이 치한 AV 동영상에 많이 노출돼 있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 적고, 자신의 쾌감만을 추구한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성추행의 계기로는 “직장상사의 꾸지람 같은 스트레스가 촉발이 되어 우연한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든지 “신체가 접촉됐을 때 강한 충격을 잊지 못해서” “남의 성추행을 목격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걸 보고 모방하게 됐다”는 답변도 나왔다.
반면, 어린 시절 부정적인 환경으로 인해 ‘성 의존증’에 시달리는 환자도 있다. 관련 치료기관인 ‘에노모토클리닉’의 미노루 원장은 성 의존증 환자 B 씨(34)의 사연을 들려줬다. B 씨는 미성년자 때 의료소년원에 수용된 적이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교도소에 복역하는 등 총 8번의 실형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 씨가 멈출 수 없었던 것이, 바로 ‘하이힐 도둑질’이다.
B 씨는 여성의 하이힐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해왔다. 단순 절도가 아니다. 지하철역 계단 등 앞에서 걷는 여성의 다리를 향해 갑자기 손을 뻗치고 하이힐을 강탈하는 식이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행위로 보이겠지만, 성 의존증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여성이 착용하고 있는 특정 물건에 집착하는 페티시즘이다.
“3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난 B 씨는 초등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왕따를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엄마의 하이힐’에 묘한 관심이 싹텄고, 성적 욕구로까지 번지게 됐다. 처음 하이힐을 훔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을 보자 어느새 쫓고 있었으며, 여성의 왼발에 손을 가져다댔다. 당연히 피해여성은 놀라 비명을 질렀다. 상담사가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자 B 씨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다만 “하이힐을 훔치는 것에 성공하면 스릴과 쾌감,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죄책감이 들거나 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성관계에 대해서는 “섹스는 하고 싶지만 여성과 말하는 것이 무서워 아직 동정”이라고 밝혔다. 검사 결과, B 씨는 성 의존증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이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진단됐다.
이런 사연도 있다. 공무원 S 씨(26)는 도촬로 벌써 세 번째 체포되어 상습범 처분을 받았다. 지하철역 내에서 스마트폰으로 여성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한 혐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진단기준에 의하면, 도촬은 ‘절시증’이라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된다.
공무원 집안에서 엄격하게 자란 S 씨는 “어린 시절 부모가 안정지향적인 가치관, 도덕적인 인생관을 강요했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S 씨는 약간의 발달장애가 있어 가족들과의 충돌이 끊이질 않았다. “취업 후에는 대인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의 감정을 겪었고, 그때 성으로 해소하고자 도촬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스스로도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파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했다. 결국 S씨는 부모와 함께 치료기관을 찾아왔다.
일본 법무부는 2014년부터 성 범죄자들에게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성 중독을 일종의 치료 대상으로 여기는 의료기관도 등장했다. 요컨대 성폭력 가해자를 ‘의존증’이라는 테두리에서 진단하고, 치료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들의 생활습관을 안정시키고, 재범 방지를 위한 의사소통 훈련도 실시한다.
‘주간여성’에 따르면 “해마다 치료를 원하는 성 범죄자 및 성 의존증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에노모토클리닉을 찾은 이들은 무려 2000명이 넘는다. 그 중 치한이 800여 명으로 최다였고, 도촬이 400여 명, 강제성교가 200여 명, 소아성애가 150여 명 순이었다.
일본은 성 범죄 가운데 특히 치한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진은 영화 ‘치한전차’ 스틸컷.
앞서 말했듯이 치한이나 도촬의 경우 가해자 대부분이 평범한 직장인 남성들이다. 한편, 소아성애자는 어떤 정신적 장애를 안고 있는 케이스가 많다. 정신과 전문의 후쿠이 씨는 “성추행 피해자 쪽으로 눈을 돌리면, 압도적으로 여중고생이 많다”면서 “가해자들에게 유니폼은 순종의 상징이자 지배욕을 자극하는 일종의 기호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성 범죄자들 가운데는 실행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며 강도를 높여가는 등 게임으로 탐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엉덩이에 손등을 대는 정도였다가 급기야 속옷 안에 손을 넣기도 한다.
후쿠이 씨는 “성추행을 통해 정복감을 느끼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자기긍정감이 낮은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가해자와 상담하다 보면 본인 역시 과거 성적인 학대를 받았다거나 엄격한 가정환경 혹은 왕따를 당한 사실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추행범들은 기가 세 보이는 여성보다는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해 보이는 쪽을 표적으로 삼는다. 마치 왕따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를 때와 같은 선택이다. 폭력은 언제나 그렇듯이 약자를 노린다.
그렇다면 치료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행동치료가 중심이다. 치료자가 끊임없이 ‘피해자가 어떠했을지’를 생각하게 하는 등 인지 왜곡에 대해 조언하면서 행동을 수정해나간다. 치료는 최소 3년이 기본이다. 미노루 원장은 “마음속에 숨어있는 어둠은 내장 질환처럼 병소를 제거한다고 해서 바로 낫는 게 아니다. 꾸준히 치료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성 범죄 가운데 특히 치한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죽하면 치한을 뜻하는 일본어 ‘치칸(chikan)’이 국제적으로 통용될 정도다. 대체 어떤 환경이 치한을 폭주하게 만드는 걸까. 정신과전문의 후쿠이 씨는 “다른 나라 여성들처럼 강한 의사 표시를 하지 못하는 일본인 여성의 성향”을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던 미투 운동이 유독 일본에서만은 미지근했던 이유를 “성범죄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토양에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와 관련, 사이토 씨는 일본을 ‘남존여비 중독사회’라고 표현했다. 그는 “모든 성 범죄는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한다. 의존증이라고 해도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면서 “성을 통해 여성을 지배하려는 ‘남성 중심 사회’의 왜곡된 가치관을 일본 사회가 먼저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