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의리적구토’를 한국영화의 시발로 보는 관점에서 2019년은 한국영화 100주년이었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듯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 한국영화의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2020년 마침내 단 한번도 어떤 부문에도 후보조차 올리지 못했던 아카데미영화제에서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석권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이 뭐 대단한 일이냐. 그저 미국에서 주최하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뿐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의 변방, 아니 아시아의 변방인 한국영화가 이제 자기만의 브랜드를 갖게 되는 아주 유의미한 첫걸음이라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전자회사의 제품들은 북미나 유럽의 전자제품 양판점에서 저가 브랜드만 모아놓은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걸 기억할 것이다. 삼성전자, LG전자 제품들이 수많은 해외 브랜드들과 뒤섞여서 잘 보이지도 않는 한쪽 구석에서 고객을 기다리다가 한국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마케팅을 통해서 이제는 한국제품들이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어떤 양판점에서도 당당히 고유의 부스를 차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한국영화가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세계 최대 영화시장인 북미나 유럽에서 한국영화라고 하면 영화를 사랑하는 마니아층이나 아니면 학생들 사이에서만 관심을 갖는 아시아 또는 제3세계의 영화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9년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 그리고 이번 아카데미에서의 쾌거는 영화 마니아나 영화학도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음이 분명하다.
물론 한 번의 수상으로 하루아침에 브랜드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제 한국영화가 자기만의 고유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시발점이 됐다고 믿는다. 한국은 지난 100년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비약적으로 발전한 몇 안 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오직 가난을 그리고 불행을 자손들에게는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자신들을 희생해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세계인이 놀라워하는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어냈고 그간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이 우리산업을 견인해왔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우리 민족 100년은 어떤 산업이 견인해갈까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본다. 전 세계적인 4차산업 발전으로 앞으로의 세대는 그간 어떤 앞선 세대보다 가장 많은 여가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 여가시간에 무수한 콘텐츠를 소비할 것이라고 예측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인공지능이 가장 대체하기 어려운 것이 창의력이다. 결국 앞으로의 세대는 엄청나게 늘어난 여가시간의 많은 부분을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쓸 것이다. 게다가 조만간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된다면 수십억 대의 안방극장이 자동차 안에 장착되는 것이다. 자율주행자동차에서 과연 우리들은 무엇을 하게 될까. 결국 콘텐츠를 소비할 것이다.
스토리 비즈니스는 한국처럼 부존자원이 적은 나라가 집중하고 선택해야 할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이 도와서인지 우리민족은 창의적인 민족이다. 조상님들의 우수한 창의력 유전자가 아직도 우리들 피 속에 남아있기에 한국은 세계에서 몇째 안가는 우수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국가가 됐다.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할 때다. 앞으로의 백년을 이끌어갈 대한민국 먹거리 산업으로 스토리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엔 봉준호를 능가하는 미래의 스토리 밀리언달러 베이비들이 무수히 커 나오고 있다는 것을 새겨야 할 때다.
대한민국 스토리텔러들 만세 만만세다.
원동연 영화제작자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