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행동주의 펀드와 운용사 이름 올려…다음 타깃 현대홈쇼핑·KISCO홀딩스란 예측도
지난 2월 20일 서울 여의도 한국금융투자협회 3층 불스홀에서열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주최 ‘주주총회의 문제점과 대안 모색’ 세미나에서 포럼 초대 회장인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지난해 11월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이 협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당시, 주요 참여자로 꼽혔던 이들은 모두 이에 대해 부인했다. 당시 강성부 KCGI 대표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학자들 중심으로 포럼 이야기가 나온 것이 와전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지난해 12월 12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사단법인 형태로 창립됐다(관련기사 스튜어드십코드 엎친데 ‘행동주의펀드 연합군’ 덮치나).
거버넌스포럼의 법인등기부에는 강성부 대표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등 11인이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재웅 쏘카 대표를 비롯한 기업인과 교수, 전문가 역시 포럼에 다수 참여하고 있으나, 국내 주요 행동주의 펀드와 운용사 대표들이 한데 모였다는 점에서, 이 포럼을 매개로 한 공동전선이 마련될지가 최대 관심사다.
지난 2월 20일 열린 거버넌스포럼 세미나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한 발제자는 발표 중 의결권 자문사의 영향력 증대를 설명하며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서스틴베스트,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이 엘리엇의 현대차 배당상향 요구에 대해 반대를 권고했던 것들을 예시로 들었다. 발제자는 “우연하게도 예시에 포함된 국내 주요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분들이 이곳에 계신다”고 언급했다. 업계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모두 포럼에 모여 있다는 설명이다.
거버넌스포럼 초대 회장을 맡은 류영재 대표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주식회사의 권력은 주주들에게서 나온다”며 “만일 이것을 부정하고, 이 철학이 존중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시장경제와 주식회사 제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 아닐 것”라고 말했다. 이어서 “향후 우리의 주주총회 관련한 담론들이 이 철학적 방향성과 정배열되고 보다 구체화되어 구현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할 때 우리나라의 진정한 기업거버넌스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거버넌스포럼이 처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대상은 한진그룹이다. 거버넌스포럼은 지난 2월 14일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거버넌스포럼은 토론 제안문을 통해 “한진칼의 지분 경쟁이 가족 간 불화나 분쟁으로만 비치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라며 대립하고 있는 양측이 공개 토론을 통해 소수 주주를 상대로 발전 계획 및 주주가치 제고 정책을 설명하기를 제안했다. 거버넌스포럼에는 최근 한진칼 지분경쟁에 캐스팅보트로 부각되고 있는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황성환 대표 등도 이름을 올라와 있다. 강성부 대표와 황성환 대표는 모두 서울대 투자동아리 ‘SMIC’ 1기 출신이다.
거버넌스포럼이 처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대상은 한진그룹이다.
거버넌스포럼의 구성원으로 봤을 때, 포럼의 주요 참여자들이 몸담은 회사가 연합해 한 기업을 공략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음 타깃으로 예측되는 곳은 현대홈쇼핑과 KISCO홀딩스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현대홈쇼핑을 상대로 VIP자산운용과 힘을 합치고 KISCO홀딩스를 상대로는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과 연대할 가능성이 있다.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는 등기부에 이사로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포럼 회원으로 참여 중이다.
현대홈쇼핑의 경우 이미 지난해 3월 주총에서 국내외 운용사 연대에 강력한 압박을 경험한 바 있다. 당시 미국 투자회사 돌턴인베스트먼트와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VIP자산운용 등 세 곳이 손을 맞잡고 현대홈쇼핑에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소각 등 주주가치 개선 조치를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이 이변 없이 현대홈쇼핑 사내이사에 재선임됐으나, 현대백화점그룹은 주주가치 제고 방안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현대홈쇼핑은 올해 주총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현대홈쇼핑은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고 185억 원 상당의 자사주 매입과 주당 2000원의 현금 배당을 결의했다. 배당금 총액은 234억 원으로 전년(222억 원) 대비 5.2%가량 늘었다.
KISCO홀딩스의 경우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주총 시즌 이전부터 투자 기업들에게 주주가치 증대를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KISCO홀딩스 지분 12.79%를 보유한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지난 2월 5일 공시를 통해 지분 보유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더욱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과 KISCO홀딩스의 지분을 1% 수준으로 보유한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이 연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두 회사는 지난해 6월에도 함께 사외이사 후보 추천 등의 주주제안을 한 바 있다. 밸류투자파트너스 자산운용은 지난 2018년 여섯 차례 KISCO홀딩스에 주주서한을 보내 자사주 매입과 경영진 면담 등을 요구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거버넌스포럼 행보를 지켜본 한 재계 관계자는 “같은 업종끼리 연합하고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거버넌스포럼에 참여한 펀드와 운용사들은 행동주의를 통해 이익을 얻고 경우에 따라 경영권 분쟁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므로, 연합이라는 방법을 활용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한진의 경우에서 KCGI 행보를 보아도 알 수 있듯, 행동주의펀드나 운용사들도 아마추어가 아니다. 기업들이 아직까지 포럼에 적극적인 대응을 않고 있지만 포럼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