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모욕 감내했지만 명분·실리 모두 잃어…민생당 총선 지휘 예상, 직접 출마는 고심 중
숱한 모욕을 감내했다. 누군가는 노욕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뒷방 노인네로 나앉았다고 손가락질했다. 이른바 징크스인 ‘만덕산의 저주’를 꺼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영국 신사’는 없었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얘기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2월 24일 국회에서 퇴임 기자회견을 마치고 김정화 민생당 공동대표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손 전 대표가 2월 24일 퇴임했다. 백의종군도 선언했다. 2018년 9월 2일 당 대표로 선출된 지 541일 만이다. 같은 날 호남계 3당(바른미래당·대안신당·민주평화당)은 민생당으로 뭉쳤다.
현역 의원 20명의 원내 교섭단체가 된 민생당은 4·15 총선에서 민주당과 미래통합에 이어 ‘기호 3번’을 획득했다. 호남에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일대일 경쟁을 펼칠 발판을 마련했다.
민생당의 공간은 지난해 4·3 보궐선거 이후 10달째 사퇴 압박을 당한 손 전 대표가 길을 터주면서 가까스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손 전 대표는 명분도 실리도 잃었다. 제3지대 공간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뺏겼다. 1월 19일 귀국한 그는 손 전 대표 면전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을 테니 전권을 넘기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개혁적 보수의 파트너였던 유승민 의원도 손 전 대표와 결별하고 미래통합당에 합류했다.
손 전 대표의 영원한 복심으로 불린 이찬열 의원도 통합당에 몸을 실었다. 당권파였던 김관영·김성식 의원도 손 전 대표와 절연했다. 손 전 대표가 마지막까지 버틴 명분이었던 ‘미래세대’와의 통합 논의도 물거품 됐다. 사실상 모든 것을 잃은 셈이다.
손 전 대표는 국회에서 가진 퇴임 기자회견에서 “손학규 개인에 대한 온갖 수모와 치욕이 쏟아졌다”며 “(심지어) ‘정신이 퇴락했다’는 말도 들었다. 27년의 정치 인생을 통틀어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모욕을 감내해야 했다”고 지난 1년 반을 회고했다.
그는 “남은 욕심은 단 하나, 대한민국 정치 구조를 개혁하고 세대교체를 이뤄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 ‘제7공화국 시대’를 열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전 대표의 꿈을 이어주는 매개물은 ‘총선 승리’다.
손 전 대표는 민생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지휘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대표는 이와 관련해 “꼭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마다치 않을 것”이라고 수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민생당이 국민의당의 녹색 돌풍을 재현할지는 미지수다. 호남당이란 꼬리표 역시 손 전 대표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민생당 출범 날에 김한길계인 임채훈 의원은 미래통합당에 합류했다. 외곽 지대에 있는 일부 의원들도 동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대표가 직접 선수로 출전할 수도 있지만, 패배 땐 정계 은퇴가 불가피한 만큼,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은 낮다. 손 전 대표도 총선 출마와 관련해선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고 말을 아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