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과 호남서 통합신당 출범 예고 악재…자체 여론조사 결과 보수 단일후보와 대결 시 서울 확 줄어
2월 10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사진=박은숙 기자
민주당은 20대 총선 때 텃밭 호남에서 3석을 얻는 데 그쳤지만 123석으로 원내 1당을 차지했다. 보수의 아성인 PK(부산·울산·경남)에서 예상 밖 선전을 하고, 최대 표밭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이런 흐름은 2017년 대통령선거와 2018년 지방선거로까지 이어졌다. 몇 년 새 치러진 전국단위 선거에서 민주당이 연승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4월 총선을 앞두고 여권엔 긴장감이 역력하다. 우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PK 여론이 눈에 띄게 악화됐다. 민주당은 일찌감치 PK 공략 해법 마련에 나섰고, 당 지도부가 연일 이곳을 찾아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9년 총 17차례 PK를 방문했는데, 정가에선 총선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올해 들어서도 설 연휴 경남 양산 자택에 들린 뒤 불과 10여 일 만인 2월 6일 다시 부산을 찾았다.
민주당의 PK 탈환 전략의 정점은 김두관 의원이 찍었다. 김포를 지역구로 하는 김 의원은 당의 거듭된 요청에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을 출마를 선언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고향 출마를 접고 이곳에 출마하기로 하면서 양산을은 가장 뜨거운 지역구 중 하나가 됐다. 당초 민주당은 김 의원뿐 아니라 인천의 송영길 의원 등 여러 중진급 의원들에 대한 PK 차출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엔 PK보다 더 급한 불이 발등에 떨어졌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다. 민주당은 20대 총선 때 수도권 122석 중 82석을 따냈다. 서울(49석)에서만 35곳에서 승리했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서울에서 12석을 얻는 데 그쳤다. 한 친문 의원은 사석에서 “솔직히 영남권에서 고전하더라도 데미지는 크지 않다. 저번 총선 때 9석 아니었느냐”고 반문하면서 “하지만 수도권은 다르다. 여기서 20대와 같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과반은커녕 원내 1당이 어려울 수 있다”고 토로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월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21대 총선 ‘경남 양산을’ 출마선언을 한 후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엄살’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긴 하다. 이와 관련, 얼마 전 민주당 몇몇 의원실이 합작해 자체 실시한 서울 지역구 가상 대결 조사가 관심을 모은다. 이는 공천을 앞두고 여권 후보군들의 경쟁력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서울 지역 여론이 심상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보수 진영이 단일 후보를 내면 선거 판세는 더욱 힘들 것으로도 점쳐졌다. 조사가 이뤄진 시기는 보수통합 논의에 의문부호가 달려있던 때였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등 보수 정당들은 ‘미래통합당’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으로선 보수진영 단일 후보와 겨뤄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 조사에 깊숙하게 관여한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보수진영 통합이 결정되기 전, 잠정 후보군을 대상으로 만든 비공식 조사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권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받던 서울의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결과는 눈여겨볼 대목이다. PK가 어렵다고 총력을 기울이자고 하는데, 개인적 생각으론 수도권과 서울이 더 우려스럽다. 관망하던 중도층 일부가 민주당 비토로 돌아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당초 민주당이 과반을 넘길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은 호남과 수도권에서의 압승을 바탕으로 했다. 중도층 표심이 아직은 문재인 정부에 쏠려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하지만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며 중도층 일부가 이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집토끼’라고 할 수 있는 진보진영은 분열했다. 물론, 이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속단할 순 없지만 최소한 ‘무조건 1번’은 아니라는 게 정가의 우세한 관측이다.
민주당이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에 대한 고발을 취하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민주당은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칼럼에서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고 주장했던 임 교수와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고발한 바 있다. 이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2월 14일 취하했다. 중도와 진보 진영에서 비판 목소리가 불거지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한 비문계 의원은 “이렇게 빨리 취하한 것을 보면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싶었다. 솔직히 친문 쪽에선 칼럼에 문제가 많은데 왜들 그러느냐는 식의 분위기가 다수이긴 하다. 아마 총선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밀고 갔을 것이다. 조국 때를 떠올려 보라”면서 “조국 때 설마 했던 중도층이 임 교수 건을 계기로 확 빠질 수도 있었다. 특히 수도권 판세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보수진영 통합신당인 ‘미래통합당’의 출범, 그리고 호남을 기반으로 할 가능성이 높은 호남신당의 등장은 민주당 주름을 더욱 깊게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친문 중진 민주당 의원은 “호남의 경우 석권까지 노렸는데, 지금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서울도 비상상태다. 보수진영이 위기감을 갖고 움직이는 사이 우리는 계속 헛발질만 했다”면서 “솔직히 지금 1당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게 사실”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