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 없는 업계 위기에 빚 상환에만 2조 원 사라질 가능성…에어부산 지분 매입도 숙제
김유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사스나 메르스 사례를 보면 감염병 확산 1~2개월이 지난 시점에 여객수송량이 저점을 기록하고 4~5개월 이후에는 과거 수준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나 감염자 수가 과거 수준을 상회하고 있긴 하지만 1분기 내에 사태가 완화된다면 하반기엔 여객 및 화물 수송량의 회복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고 전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오는 4월 말까지 주주총회와 인수대금 납부, 기업결합신고 등을 거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아시아나항공의 A350 기종. 사진=아시아나항공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을 인수키로 한 HDC현대산업개발(현산)에 관심이 쏠리기도 한다. 오는 4월 말까지 주주총회와 인수대금 납부, 기업결합신고 등을 거쳐 아시아나 인수를 마무리하려던 현산과 관련해 ‘승자의 저주’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일 아시아나는 전 임원이 급여의 30%(사장 40%)를, 모든 조직장은 급여의 20%를 반납한다고 밝혔다. 또 중국 노선을 약 79% 축소하고, 동남아시아 노선은 약 25% 축소하며 전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직 10일을 실시한다. 에어서울은 3월 1~15일 인천∼일본 다카마쓰 노선을 제외한 나머지 국제선의 운항을 중단한다. 또 3월 한 달 동안 에어서울 사장과 임원, 부서장들은 모두 급여를 100% 반납하기로 했다.
에어부산 상황도 심각한 건 마찬가지다. 지난 24일 에어부산 대표이사를 포함한 모든 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급여 20~30%를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또 에어부산 일반 직원은 3월부터 무급 희망 휴직에 나선다. 에어부산은 직원이 자율적으로 △주 4일 근무 △무급 15일 휴직 △무급 30일 휴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에어부산 관계자는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비용 절감과 수익성 제고 등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9월 말 기준 아시아나의 부채총액은 9조 7681억 원, 부채비율은 807.57%에 달한다. 2018년 9월 말 6조 7460억 원이었던 부채가 1년새 3조 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항공기 운용리스가 많은 항공업이 타 업종에 비해 부채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더욱이 아시아나의 재무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있다. 지난 25일 아시아나는 2000억 원의 단기차입금이 늘었다고 공시했다. 앞서 지난 12일에도 1000억 원의 단기차입금이 늘어난 바 있다. 게다가 아시아나는 2019년 6727억 원 적자라는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아시아나 관계자는 “최근 늘어난 차입금은 인수가 마무리되는 4월 전까지 사용할 목적으로 빌린 돈”이라며 “인수 후 2조 원 넘는 돈이 들어오는데 이전까지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 지원으로 정작 HDC현대산업개발 재무에 악영향이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사진=이종현 기자
현산은 아시아나 재무 정상화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을 투입한다. 아시아나 인수 비용 약 2조 5000억 원 중 구주 매입 비용을 제외한 2조 1772억 원을 유상증자를 통해 투입하는데 이 가운데 현산이 약 2조 100억 원을 내고, 나머지 4900억 원가량은 미래에셋대우가 낸다. 아시아나 관계자는 “유상증자가 끝나면 아시아나의 부채비율은 200% 후반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며 “이 정도면 항공사 기준으로는 재무구조가 상당히 안정화된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정작 현산 재무에 악영향이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1월 10일 현산은 아시아나 인수를 위해 4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신용등급 및 기존 사업 영향 최소화를 위한 유상증자 결정은 결국 주주가치에 대한 회사의 인식을 보여준다”며 “항공업에 진출하는 HDC그룹의 사세 확장이 현산의 주주들에게까지 긍정적이기 위해서는 피인수기업의 가치 제고가 필수적이지만 그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전했다.
앞서 2019년 11월 현산이 아시아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현산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로 유지했지만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꾼 바 있다.
당시 성태경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아시아나의 계열 편입으로 계열 전반의 재무 위험이 확대되고 계열 주력사인 현산의 지원 부담 가능성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판단된다”며 “인수 종결 후 현산의 자체 재무 여력 약화와, 아시아나에 대한 지원을 부담하게 될 가능성으로 인해 현산의 재무 안정성은 현재 신용도를 충족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저하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나가 올해 상환해야 할 차입금 규모는 1조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계약 내용에 따라 인수 완료 후 산업은행의 영구 전환사채 5000억 원을 우선 상환해야 한다. 아시아나가 지난해와 비슷한 적자를 기록한다면 빚 상환 등으로 인해 순식간에 2조 원이 사라질 수 있다.
현산 관계자는 추가 지원 가능성에 대해 “인수·합병(M&A) 특성상 계약이 진행 중인 건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아시아나 임원진과 개별 면담을 진행하다가 2019년 실적 발표 후 돌연 중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산 관계자는 “면담을 진행하다가 일정상 멈춘 것”이라고 밝혔지만 최근 좋지 않은 아시아나 실적과 맞물려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현산의 숙제는 또 있다. 아시아나 인수 후 2년 안에 에어부산 지분 55.83%를 매입해야 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의 증손회사는 손자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해야만 하는데 현재 아시아나의 에어부산 지분율은 44.1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아시아나 인수 후 에어부산을 매각하는 방안을 거론하지만 항공업 불황에 에어부산 인수자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현산 관계자는 “과거 정몽규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에어부산에 대해) 전략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