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모이는 곳 기피 상황 속 주목…삼성·현대차 도입으로 확산 분위기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잡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주주총회 전자투표제가 도입 10년 만에 활성화 계기를 마련하고 있어 주목된다. 사진은 국내 한 상장사의 주주총회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삼성전자·현대차 전자투표 전격 도입
전자투표제는 주총이 열리기 전 열흘간 주주들이 온라인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본인 인증만 하면 모바일 등으로 주총 안건에 대해 찬성이나 반대를 표시할 수 있다. 주총 일정이 겹치거나 주총 참석을 위해 장거리 이동이 불가피한 경우 등에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올해는 특히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서울이 아닌 수원을 주총 장소로 선택한 삼성전자는 올해 처음으로 전자투표제를 활용한다. 삼성전자의 소액주주는 6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현대차그룹은 계열사 중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차증권, 현대비앤지스틸은 이미 전자투표제를 도입했고 현대차를 비롯한 나머지 9개 계열사도 올해 주총부터 전자투표제를 시행한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결정은 소액주주들의 주주권을 보장하고 주주총회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에 앞서 SK그룹과 롯데그룹은 이미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올해 전자투표제를 도입했고 포스코그룹도 전 상장사로 전자투표제를 확대키로 했다.
#미진한 전자투표 행사율, 반전 마련되나
주총에서 전자투표는 그간 활용도가 낮았다. 지난해 전자투표 행사율은 5% 수준에 머물렀다. 이유는 제도 자체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이 컸다. 코스닥 상장사의 한 관계자는 “단기 투자를 통한 이익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소액주주가 많은 상황에서 주총은 사실 관심 밖의 일이었다”라면서 “제도 자체에 대한 홍보 역시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국민연금과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펀드가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앞세우면서 소액주주들의 인식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기업들도 적극적이다. 한국예탁결제원 등과 전자투표 이용 계약을 체결한 상장사는 2월 기준 1486개사로 전체 상장사 2354개사의 63.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탁원은 올해 최대 500만 원 수준이었던 주총 전자투표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주주들이 지문인증 등 간편인증을 통해 편리하게 전자투표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전자투표로 의사를 표시했더라도 추후 변경이나 철회도 가능해진다. 특히 올해는 예탁원과 미래에셋대우 등에서 실시되던 전자투표 플랫폼 경쟁에 삼성증권도 합류했다. 삼성증권의 전자투표 서비스는 출시 3개월 만에 신청 상장사가 200개 사를 넘어섰다.
#전자투표 확산, ‘이슈 주총’ 변수될까
상장사 입장에서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이른바 ‘3% 룰’이다. 상장사가 감사 및 감사위원을 선임할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행사 지분이 3% 안으로 제한된다. 2017년 섀도보팅(Shadow Voting·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폐지되면서 감사 선임이 상장사 주총의 주요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해 주총에서 감사 선임에 실패한 코스닥 상장사는 125개 사에 달했다. 주총 정족수 미달로 감사 선임 안건 자체가 부결되면 관리종목 지정 등의 사유가 된다.
전자투표는 주총에서 대주주 간 표 대결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KCGI 등은 한진칼 주총을 앞두고 전자투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확보한 지분율 차이가 크지 않아 전자투표를 통해 소액주주의 표심을 잡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법무부가 전자투표제 도입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상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전자투표가 의무화가 현실화될 경우 해외와 같이 전자투표 행사율이 크게 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