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권 5곳 중 2곳 유찰…코로나19 직격탄에 임대료 책정 방식 수정 여부 주목
‘면세대전’이 기대됐던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 사업권 입찰에서 사상 초유의 유찰 사태가 발생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천공항 제1터미널의 한 중국 항공사 카운터의 한산한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T1) 면세사업권은 ‘흥행보증 수표’로 인식돼 입찰 때마다 대기업의 경쟁이 뜨거웠다. 특히 2018년 롯데면세점 자진 반납 당시에는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이끄는 신세계면세점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신라면세점이 맞붙는 ‘사촌대결’ 드라마가 펼쳐지기도 했다. 롯데면세점은 사드 보복 및 임대료 부담 등을 이유로 사업권을 조기 반납한 지 한 달 만에 같은 사업권에 재도전했으나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했다. 당시 ‘괘씸죄’가 적용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올해의 경우, 오는 8월 계약이 끝나는 대기업 대상 면세점 사업권 입찰에 롯데‧신라‧신세계면세점 등 ‘빅3’와 현대백화점면세점까지 참여하며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다. 입찰 대상 지역은 DF2(화장품‧향수)와 DF3(주류‧담배‧포장식품), DF4(주류‧담배), DF6(패션‧잡화), DF7(패션‧잡화) 등 5곳이었다. 그러나 지난 27일 입찰 마감 결과,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최대 매출처였던 DF2에 단 한 곳도 입찰 참가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DF6에는 현대백화점면세점만 의사를 밝혀 유찰됐다. 반면 DF7에는 ‘빅3’와 현대백화점면세점 등 모든 사업자가 참여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유찰된 두 곳에 대해 재입찰을 진행할 방침이다. 업계에 따르면 재입찰은 규정상 같은 조건으로 진행되도록 정해져있다. 이번 유찰의 가장 큰 배경은 높은 임대료가 꼽힌다. 결국 재입찰을 실시된다고 해도 또 다시 유찰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재입찰을 진행할 것”이라면서도 임대료 조정 가능성 및 재입찰 시기에 대해서는 “어제(2월 27일)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 세부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 대기업 면세점 관계자는 “다들 화장품 쪽이 가장 인기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만큼, 놀라운 결과”라면서도 “DF2의 경우 최소보장금 자체가 다른 구역보다 월등히 높다보니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고 전했다. 이어 “같은 조건으로 재입찰이 예정되어 있는데,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입찰은 지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나오게 규정돼 있어 상황을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소보장금은 면세점 사업자가 매달 납부하는 임대료로 인천공항에서 제시한 DF2의 연간 최소보장금은 1161억 원이다. 면세사업자는 매출액에 품목별 영업요율을 곱한 금액이 최소보장금보다 높을 경우 차액을 더해 납부하고, 최소보장금보다 낮을 경우 최소보장금을 납부한다. 최소보장금은 매출과 관계없이 면세사업자가 매달 내야 하는 최소한의 임대료인 셈이다. 그러나 입찰 경쟁을 벌일 경우 더 높은 입찰가를 제시하는 쪽이 유리해지므로 최소보장금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면세점 사업자들은 업황 악화에 따른 임대료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는 지난 2월 27일 인천공항공사 측에 공문을 통해 코로나19 사태 안정화 시점까지 임대료 인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점협회 관계자는 “인천공항공사 측에 임대료 인하를 요청했고, 인천공항공사 측이 대안을 요구해 관련 면세사업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전달했다”며 “긍정적으로 검토해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언론에 구체적인 언급을 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관련 업계는 임대료 인하가 어려울 경우 임대료 책정방식 수정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매출액에 판매품목별 영업요율을 곱하는 방식만으로 임대료를 책정할 경우, 적자를 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이 방식은 이미 제주공항과 김포공항 등에 도입돼 활용되고 있다. 인천공항만이 최저보장금 제도를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면세점 사업자들 간 지나친 경쟁을 꺼리는 분위기도 이번 유찰의 배경으로 꼽힌다. 2018년 인천공항공사가 제2터미널 개항으로 제1터미널 면세점 임대료를 일괄 인하했을 당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당시 인천공항공사는 이용객 감소를 이유로 임대로 T1 임대료 27.9% 인하를 제안했다. 인하폭에 기대에 못미친다는 일부 면세사업자의 주장에도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 등이 인하안을 수용하면서 인천공항공사가 제안한 인하폭으로 결정됐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당시에는 업체마다 의견이 달랐지만, 지금은 모두가 어려워 그때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이전보다 매출이 60~70% 떨어졌다. 사실상 관광업계는 활성화 차원보다는 생존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 상황”이라며 “한시적으로 영업요율 제도를 도입해 주기만 해도 면세점업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인천공항공사는 T1 면세점 입찰 전 사업권 재구성을 시도했으나 관세청의 거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공항공사 사업권 재구성안의 핵심은 기존 사업권 5곳을 3곳으로 통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경우 임대료는 높아지는 반면 사업권 수는 줄어든다. 경쟁 과열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초 인천공항공사의 뜻대로 사업권이 재구성됐다면 이번 유찰은 피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기존 사업권 구성에 대한 개선방안을 검토했으나 시장에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종적으로는 기존 사업권 구조를 최대한 유지해 입찰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과 현재 상황은 또 다르다. 면세사업권 유찰과 코로나19에 따른 면세점 매출 급락에 따라 인천공항공사나 면세사업자 모두 임대료 인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인천공항공사는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면세점 임대료의 비중을 낮춰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말 온라인 면세점 통합플랫폼을 통해 사업을 다각화하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무산됐다. 인천공항공사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과 관련해 사업자 제안 내용 등을 추가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인천공항공사는 중소기업에 한해 정부 차원의 임대료 감면 지원 계획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월 27일 브리핑을 통해 정부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재산의 임차인에 대한 임대료를 인하할 계획을 밝혔다. 코레일과 인천공항공사 등 공공기관 또한 임대료를 20~30% 인하할 예정이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