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 호평 일색 “투구폼 매우 독특, 휴대폰 꺼내 찍을 수밖에”…몰리나 포수 “한잔 하면서 친해지고 싶다”
27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 로저 딘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마이애미 말린스 경기 종료 후 말린스 클럽하우스(카디널스와 말린스는 훈련장이 붙어 있다)에서 만난 돈 매팅리 감독은 상대팀 선발 투수로 나온 김광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매팅리 감독은 구속에 변화를 주면서 제구를 잡아 가는 김광현의 투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커브의 구속 변화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부분은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라고 꼽았다. LA 다저스 시절 류현진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매팅리 감독의 김광현 평가는 솔직했고,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김광현이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첫 등판했다. 사진=이영미 기자
김광현의 시범경기 첫 선발 등판에 대해 국내 언론은 물론 현지 매체에서도 호평 일색이다. 뉴욕 메츠와 첫 등판부터 이번 말린스전 선발 등판까지 김광현의 투구는 깔끔했고, 공격적이었으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김광현은 지난 2월 23일 뉴욕 메츠전에서 5회 등판해 1이닝을 소화했고, 27일 말린스전에서는 선발 등판해 2이닝을 던지고 내려왔다. 시범경기 중간 성적은 2경기 3이닝 무피안타 무실점 5탈삼진이다.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 제프 존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날 김광현의 최고 구속은 시속 94마일(151㎞)이었다. 구속에 변화가 컸고, 치기 힘든 매우 지저분한 공을 던졌다’라고 소개했다. 세이트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는 ‘김광현의 공은 칠 수 없는 수준이었다’면서 김광현이 150km대 초반의 직구와 변화구를 이용해 6명의 타자를 상대로 2이닝을 막아낸 상황을 묘사했다.
김광현의 선발 등판 현장에서 휴대폰으로 김광현의 투구 장면을 영상으로 담았던 크레이그 미시(FNTSY 스포츠 라디오) 기자는 자신이 경기 영상을 촬영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광현의 투구폼이 매우 독특해 보였다. 절로 휴대폰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양한 구종을 적절히 섞어 던졌고, 투구 패턴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다. 그로 인해 말린스 타자들은 타이밍을 잡기 어려워했다. 일부러 김광현의 투구 패턴을 느리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김광현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고, 타자들을 세워 놓고 스트라이크를 우겨 넣었다. 그는 매우 훌륭한 디셉션(속임수)을 갖고 있다. 김광현한테 익숙하지 않은 선수들은 그를 공략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미국 현지에서는 김광현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폼에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았다. 사진=이영미 기자
크레이그 미시 기자는 김광현의 공격적인 마운드 운영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앞으로 김광현은 경기 시간을 단축시켜 게임을 빨리 끝내는 바람에 팬들과 기자들을 일찍 집으로 보내줄 것 같다(웃음). 현재 카디널스 투수들 중 한 명(마일스 마이콜라스)이 부상을 당한 것도 있지만 시범경기를 통해 계속 실력을 증명해 보인다면 그는 정규시즌 선발 로테이션의 일원이 될 것이다.”
김광현은 말린스전에서 빠른 템포로 투구를 이어간 배경으로 “날씨가 더워 야수들에게 빨리 휴식을 주고 싶었다”면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도 빠른 경기를 원하고, 기자들한테도 빠른 퇴근을 선물하고 싶었다”는 재치 있는 대답으로 현지 기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김광현은 뉴욕 메츠전의 불펜 등판 때와 달리 첫 선발 등판을 위해 마운드에 오를 때 긴장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긴장 때문인지 말린스의 선두타자인 조나단 비야를 상대로 초구와 2구째 제구되지 않은 볼이 나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경기 초반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부분에 대해 ‘고질적인 문제’라고 표현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볼로 시작하면서 공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많이 갔다. 포수인 몰리나에게 내 폼이 무너지는 것 같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달라고 했는데 몰리나가 잘 받아줬다.”
김광현은 선두타자한테만 흔들렸을 뿐 이후에는 마운드에서 자신의 장점을 뽐내며 다양한 구종과 구속 변화로 타자들의 혼을 뺐다. 직구 최고 구속은 4일 만에 시속 92마일(148km)에서 94마일(151km)로 뛰었고, 느린 커브와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앞세워 노히트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김광현은 직구로, 상대 타자는 컷패스트볼(커터)로 인식한 부분이다. 이날 2회 선두타자로 나선 헤수스 아귈라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헛스윙 삼진을 당했던 결정구가 커터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광현은 그 공은 커터가 아니라 패스트볼이 몸 쪽으로 휘어들어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즉 커터를 의식하고 던진 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광현의 설명과 달리 말린스 타자들은 김광현이 던진 투구 중 인상적인 공으로 대부분 커터를 꼽았다. 김광현은 실제 커터를 던진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도 말이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공인구 때문인지 아니면 투구 메커니즘의 변화 때문인지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광현은 이날 베테랑 포수 몰리나와 처음으로 배터리를 이뤘다. 김광현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왜 몰리나가 최고의 포수로 불리는지를 알 수 있었다”면서 몰리나와 호흡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몰리나는 세인트루이스에서만 17년째 활약 중인 베테랑 포수다. 올스타와 골든글러브에 각각 9차례 선정되는 등 은퇴 후 명예의 전당 입성이 유력한 그는 지난번 김광현의 라이브피칭 때 타석에서 김광현을 상대해 본 후 새로운 투수를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광현은 공을 참 잘 던지는 투수다. 포수로 그의 공을 받는 것도 즐거울 것만 같다. 오승환이 있을 때는 밖에서 따로 만나 친분을 쌓았는데 김광현과도 개인적인 자리를 통해 시원하게 한잔하면서 친해졌으면 좋겠다.”
김광현은 인터뷰 때마다 “너무 들뜨기 싫어 꾹 누르고 자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시범경기 일정들, 그리고 구단 내부에서는 물론 현지 취재진의 좋은 평가들이 자칫 자신을 들뜨게 만들 수 있지만 그는 시즌 개막까지 한 달이란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길게 보고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김광현을 상대했던 말린스의 베테랑 외야수 코리 디커슨도 지금이 스프링캠프라는 걸 강조하며 시범경기와 정규시즌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무리 미친 듯이 잘해도 스프링캠프일 뿐이다. 그래서 시범경기의 결과를 두고 크게 기뻐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정규시즌 때는 경기 전 상대 선수들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상대 투수의 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공을 주로 던지는지, 이전 팀의 타자들은 그의 공을 어떻게 상대했는지 등등 세밀한 분석을 하지만 시범경기 때는 마치 마이너리그처럼 사전조사 없이 타석에 들어선다. 김광현의 볼 컨트롤 능력과 느린 커브는 수준급이었지만 정규시즌 때도 우리가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어느새 캠프가 시작된 지 2주일째로 접어들었고, 김광현도 카디널스 선수들과 조금씩 거리를 좁혀 가며 친분을 쌓고 있는 중이다. 아직 자신의 포지션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김광현은 개의치 않고 앞만 보고 간다.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맑음’ ‘좋음’으로 가득 차 있다.
미국 플로리다=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