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업계 위기 속 인수계약 두 달 연기 끝 체결…불황 버텨내면 실적 상승 전망도
지난 2일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제주항공의 B737-800 기종. 사진=제주항공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 의사를 밝힌 건 2019년 12월. 당시 제주항공은 이스타홀딩스와 주식매매계약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맺고, 경영권 인수 절차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제주항공은 2019년 12월 31일을 주식매매계약 체결일자로 공시했지만 올해 1월로 체결 예정일을 미룬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월 31일 실사 일정이 늦어졌다는 이유로 체결 일자를 2월로 다시 연기했다.
계약 체결이 늦어지자 일각에서는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설이 흘러나왔다. 최근 일본 불매운동, 홍콩 민주화 시위에 이어 코로나19라는 악재가 등장하면서 항공업계가 유례없는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스타항공은 직원들의 지난 2월 월급을 40%만 지급하는 등 특단의 조치에 나서기도 했다.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는 “정부의 긴급 지원 및 금융기관을 통한 금융 지원 등 여러 자구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면서도 “긴급한 상황을 해소하기에는 시간과 여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제주항공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주항공은 3월부터 6월까지 최대 4개월간 희망자에 한해 임금 70%를 보장하는 유급 휴직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또 희망자에 한해 해당 기간 동안 주 2~4일 근무하는 근로일 단축 제도도 시행 중이다.
2월 28일에는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등 6개 LCC 사장단이 정부에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원 △공항사용료 및 세금의 전면 감면 조치 시행 △고용유지지원금 비율 한시적 인상 등을 요구했다. 이들 사장단은 “지금의 국가적 재난은 항공사만의 자체 노력만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라고 호소했다.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이상 회사 정상화를 위해 제주항공이 추가로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돼 적자가 이어진다면 제주항공으로서는 이스타항공 지원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제주항공의 부채비율은 2018년 말 168.41%에서 2019년 말 352.74%로 상승했다. 또 제주항공은 2018년 706억 원의 흑자를 거뒀지만 2019년에는 362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 때문인지 당초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을 695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최종 인수가는 545억 원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545억 원도 제주항공 자본총액(2019년 말 기준)의 약 17%에 해당해 적은 규모라고 할 수 없다.
이석주 제주항공 사장은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은 현재 코로나19 이슈 등으로 인한 항공시장 상황을 고려해 항공업계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양사 간의 양보를 통해 가격조정을 이뤄냈다”며 “운영효율 극대화를 통해 이스타항공의 경영 안정화 및 수익성 개선을 목표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제주항공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포국제공항의 LCC 국내선 출국장. 사진=임준선 기자
제주항공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이스타항공을 손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 지난 2월 개정된 항공사업법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은 자본잠식률이 50%가 넘는 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되거나 완전자본잠식이 되는 경우 항공교통사업자에게 재무구조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개선 명령 후에도 2년 이상 자본잠식률 50%가 넘으면 항공 면허 취소나 6개월 내 기간을 정해 사업을 중단시킬 수 있다.
2018년 말 기준 이스타항공의 자본금은 485억 7000만 원, 자본총액은 약 253억 원이다. 당시 기준으로 이스타항공의 자본잠식률은 47.91%로 재무구조 개선 요구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2019년 항공업계가 전반적으로 부진해 현재는 자본잠식률이 50%가 넘을 것으로 보이고, 심지어 완전자본잠식 상태라는 관측도 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2019년 말 기준 이스타항공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추정된다”며 “따라서 이스타항공에 상당한 규모의 증자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이는 제주항공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이스타항공을 운영하는 게 효율적인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며 “여러 방안을 생각하고 있지만 당장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는 밝히기 어렵다”고 전했다.
다만 최근 불황을 버텨내고 향후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이전보다 실적이 크게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LCC 중에서는 제주항공이 압도적으로 많은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어 규모의 경제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항공안전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은 각각 45대와 23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어 두 회사의 항공기를 합치면 총 68대다. 이는 국내 항공사 중 대한항공(182대), 아시아나항공(86대)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 4위인 티웨이항공(28대)과도 적지 않은 차이가 난다.
김유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스타항공의 실적 및 재무상태 관련 불확실성, 자본잠식 상황으로 추정되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금유출 가능성 등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면서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시장재편이 모두 마무리된 시점에 제주항공이 확보할 시장지배력, 원가경쟁력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제주항공 측은 구체적 지원 방안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렇게 큰 문제가 된다면 인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석주 사장도 사내 메일에서 “이스타항공 인수에 대한 직원들의 우려가 크다는 것을 경영진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공급 과잉의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국내 항공업계는 조만간 공급 재편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