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던 이 빠졌지만 쌍방향 소통도 끊겨”…악플러들, 동영상 콘텐츠로 ‘우르르’
한 중견 연예기획사 A 대표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다음의 연예뉴스에 댓글이 사라진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A 대표는 업계 내에서도 중립을 지키고 이성적 판단을 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에게 무엇이 시원한지 묻자 “연예인들이 악플로 고통 받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앓던 이를 드디어 빼버린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럼 섭섭한 건 뭘까. 그는 “댓글은 해당 연예인과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솔직한 반응이기도 했는데, 그런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는 건 아쉽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과연 연예뉴스의 댓글이 사라진 세상, 무엇이 달라졌을까?
#‘역기능이 사라졌다’ vs ‘순기능도 사라졌다’
2019년 10월 다음이 연예뉴스의 댓글을 없앤 데 이어, 네이버도 3월 5일부터 이 서비스를 종료했다. 다음에서는 ‘하트’로 표시되는 추천만 누를 수 있고, 네이버에서는 ‘좋아요’ ‘화나요’ ‘훈훈해요’ 등 감정 이모티콘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네티즌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댓글에 비해 반응은 미미한 편이다.
다음에 이어 네이버도 3월 5일부터 이 서비스를 종료했다. 네이버에서는 ‘좋아요’ ‘화나요’ ‘훈훈해요’ 등 감정 이모티콘을 추천하는 방식으로만 네티즌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 사진=네이버 연예뉴스 화면 캡처
일단 연예계에서는 이를 쌍수 들고 반기는 편이다. 2019년 말 가수 설리와 구하라가 연이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그 이면에는 악플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포털사이트 댓글 폐지 요구 목소리가 높았다. 물론 오롯이 악플만의 영향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동안 숱한 연예인들이 악플 때문에 고통 받아 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터라 양대 포털의 이번 결정은 전반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댓글의 가치는 단연 ‘소통’이다. 대중이 언론이 주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던 시대를 지나, 특정 기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또 다른 네티즌의 지지를 통해 반대 여론을 형성해가는 과정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 댓글이 특정 인물을 향한 비방으로 변질되거나, 댓글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또 다른 루머가 양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9년 말 가수 설리와 구하라가 연이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포털사이트 연예뉴스 댓글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사진은 구하라 빈소 모습.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반면, 순기능까지 사라졌다는 반응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연예인을 비롯해 대중문화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대중’을 기반으로 한다. 대중이 소비하지 않으면 존재할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방송국에 비유하자면 ‘시청률’이 바로 그런 존재다. 시청률이 높으면 대중의 호응도가 크다는 것이고, 시청률이 낮으면 폐지가 불가피하다. 댓글 창은 바로 그런 바로미터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기사는 팩트를 전하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가치판단을 독자에게 주입해서는 안 된다. 이때 댓글을 통한 자유로운 토론은 해당 사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할 기회를 제공한다. 한 방송사 예능국 PD는 “댓글 반응을 보면 시청자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혹은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며 “이를 참고해 다음 콘텐츠를 제작할 때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줄이곤 하는데, 댓글 창이 닫히면서 쌍방향 소통이 끊긴 것 같아 아쉬움은 남는다”고 말했다.
#연예뉴스 댓글 창 폐지가 능사는 아니다?
연예뉴스 댓글 창 폐지에 대한 업계 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던 중, 흥미로운 반론이 제기됐다. 또 다른 연예기획사 B 대표는 “그게 다가 아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조치는 ‘연예뉴스’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네이버TV 동영상 콘텐츠 등에는 자유롭게 댓글을 달 수 있다. 다음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알고 있는 네티즌은 이미 연예뉴스가 아닌 동영상 콘텐츠로 달려가고 있다. 이 댓글 창에도 해당 콘텐츠에 출연하는 연예인을 향한 비수가 담긴 악플이 올라온다. 이미 TV나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공개된 영상 속 모습이기 때문에 연예뉴스에 비해서는 비판의 요소가 적지만 여전히 연예인들은 악플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B 대표는 “클릭수를 유도하기 위한 자극적인 연예뉴스에 유독 악플이 많이 달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이제 연예뉴스에 댓글을 달 수 없게 된 악플러들이 동영상 콘텐츠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연예뉴스 댓글 창을 닫는 것은 악플러와 전쟁의 또 다른 시작일 뿐, 끝이 아니다”고 말했다.
댓글 폐지 조치는 ‘연예뉴스’에 한정되어 있다. 여전히 네이버TV 동영상 콘텐츠 등에는 자유롭게 댓글을 달 수 있고 다음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네이버TV 댓글 창 캡처
많은 연예인들은 개인적으로 SNS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도 숱한 악플이 올라온다. 결국 연예뉴스 댓글 창은 그들을 향한 여러 댓글 창구 중 하나일 뿐, 전부는 아니다. 이를 폐지하는 것이 여러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B 대표는 “SNS의 경우 해당 연예인이 직접 특정 악플을 삭제하거나 차단할 수 있다. 또한 계정을 없애거나 당분간 이용을 중단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연예뉴스 댓글 창에 비해 피해가 적은 편”이라면서 “결국은 포털사이트의 이런 조치와 더불어 연예인 스스로 악플로부터 의연해지는 연습과 심리 치료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