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60주년 기념 12개 도시 분산 개최…포르투갈·프랑스·독일 ‘죽음의 F조’ 편성
4년 전 유로 2016에서 포르투갈이 우승,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커리어 최초 국가대표 타이틀 획득으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연합뉴스
#대회 60주년, 달라진 대회 방식
2012년 대회까지 오랜 기간(5개 대회) 본선 참가국 수를 16개국으로 유지하던 대회는 지난 유로 2016부터 24개국으로 참가국을 대폭 늘렸다. 아이슬란드, 헝가리 등 그간 대회에 나서기 힘들었던 국가들이 나서 색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조별리그 이후 16강부터는 토너먼트가 치러졌다.
이번 대회에선 또 다른 변화가 있다. 한 나라에서 단독 개최하거나 2개국 공동 개최라는 그간의 전통을 깨고 11개국 12개 도시에서 분산돼 대회가 열리는 것이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의 도시에서 대회가 열리며 4강부터는 영국 런던에서만 열린다. 이 같은 분산 개최는 1960년부터 창설된 대회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올해로 창설 60주년을 맞아 전 유럽의 분산 개최를 기획한 것이다. 다음 대회가 열리는 2024년에는 독일의 단독 개최로 진행된다.
‘유럽 전체를 위한 유로’라는 의도였지만 모두의 환영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우선 이동거리가 너무 길다. 조별리그 개최지 중 한 곳인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와 영국 런던 간 거리는 4000km 이상이다. 선수들과 팬들 모두 이동만으로 지칠 수 있는 상황이다.
2018 러시아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는 메이저대회 2연패를 노린다. 왼쪽부터 앙투안 그리즈만, 사무엘 움티티, 올리비에 지루. 사진=연합뉴스
#죽음의 조 F조, 새로운 유럽 챔피언은?
그럼에도 유로는 축구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대회다. 유럽 국가들만의 맞대결로 일각에서는 월드컵보다 수준 높은 축구를 즐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미니 월드컵’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번 대회에도 유럽 내 피파랭킹 1위(벨기에, 전체 1위)부터 17위(터키, 전체 공동 29위)까지 이변 없이 본선에 올라 있다.
오는 4월이 돼야 본선 진출국 24개국의 면면이 가려지지만 이미 본선행을 확정지은 20개국의 라인업만으로도 축구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특히 F조는 추후 치러질 플레이오프 결과에 따라 남은 한 자리가 정해지지만 이미 결정된 3국가만으로도 이미 ‘죽음의 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펜딩 챔피언 포르투갈과 프랑스, 독일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지난 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나선다. 대회마다 ‘최강자’로는 평가받지 못했지만 2016년 우승으로 위상을 끌어올렸다. 2019년에는 UEFA 네이션스리그 초대 우승 트로피도 거머쥐었다. 2019년 11월까지 주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소속팀에서 좋지 못한 컨디션을 보여 애를 태웠지만 12월부터 12경기에서 16골을 몰아치며 우려를 씻은 점이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4년 전 결승에 진출했지만 포르투갈에 패해 준우승에 머문 프랑스는 2년 전 월드컵 트로피를 거머쥔 ‘월드 챔피언’이다. 월드컵 이후로도 현재까지 단 2패만 기록하며 강력함을 자랑하고 있다.
독일 역시 어느 대회에서든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이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대한민국에 패하는 등 충격적인 탈락을 경험했고 이후 네덜란드, 프랑스와 맞대결에서 연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흔들리던 팀 분위기를 수습했고 유로 예선에서 네덜란드를 밀어내고 조 1위 자격으로 본선에 진출했다.
F조 외에는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잉글랜드 등이 우승 후보로 거론된다. 이탈리아는 2018년 월드컵 본선 진출조차 실패하며 ‘몰락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명장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의 조련 아래 2018년 11월부터 전승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유로 예선에서도 10연승을 달렸다. 역시 지난 월드컵에 나서지 못했던 네덜란드도 이후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 등을 잡아내며 강팀의 면모를 다시 보이고 있다. 지난 유로와 월드컵에서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은 벨기에와 잉글랜드도 예선을 1위로 통과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혼돈의 유럽, 개최 회의론 떠올라
유로는 월드컵에 이어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축구대회지만 이번 대회는 개막 여부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유럽의 상황을 뒤흔드는 코로나19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최초 시작이 아시아였기에 당초 유럽에서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일찌감치 리그 개막을 연기했던 중국, 사태의 심각성이 깊어지며 뒤따라 일정을 미룬 한국과 달리 유럽은 각국 리그를 강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탈이 났다. 각 리그 관계자는 물론 선수와 감독들 사이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탈리아 세리에 A, 스페인 프리메라리가가 리그를 잠정 중단한 가운데 “우리는 무관중으로라도 강행하겠다”고 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13일(한국시간) 미켈 아르테타 감독(아스널)과 공격수 허드슨 오도이(첼시)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긴급회의에 돌입할 예정이다.
리그뿐 아니라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등 유럽대항전도 파행 운영되고 있다. 13일 새벽 예정됐던 유로파리그 8경기 중 2경기가 열리지 못했고 그 이전 일부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일부 경기는 무관중경기가 열렸음에도 경기장 주변으로 팬들이 운집해 우려를 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로 2020의 개최도 점차 불투명해지고 있다. 유럽 내 확진자와 사망자가 증가하는 상황 속에서 대회 개최에 대한 회의론이 떠오르고 있다. 실제 대회 연기에 대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프랑스 언론 레퀴프는 13일 “UEFA는 회원 55개국 협회 대표자, 선수협회 대표자 등이 참가하는 화상회의를 17일에 열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회의에서는 각종 축구 대회와 함께 유로 2020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레퀴프는 유로 대회의 개최 시기가 1년 늦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로 2020이 아닌 2021이 되는 셈이다.
11개국 12개 도시에서 분산 개최되는 이번 대회 진행 방식이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팬데믹(Pandemic·대유행)까지 선언한 상황에서 대규모 인원이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축구 축제를 기대했던 팬들의 눈은 이제 UEFA의 회의 결과로 쏠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