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처에 투자하는 동안 주가가 떨어질 경우 주식 을 계열사에 팔아 비난을 사기도 했던 이웅렬 코오롱 회장이 최근 이를 모두 정리했다. | ||
코오롱그룹은 지난 2일 공시를 통해 투자 및 컨설팅 회사이자 이웅렬 회장이 관계했던 (주)이앤퓨처의 지분을 청산했다고 밝혔다. 이앤퓨처는 이 회장이 벤처투자를 위해 설립했던 벤처캐피털 회사였다. 이에 앞서 코오롱은 지난 7월 경영컨설팅업체인 (주)리치앤페이머스도 전격 청산했다.
한동안 그룹 내에서는 이 회장이 ‘강남 간다’는 말이 자주 돌았다. 이 말은 이 회장이 바로 이앤퓨처의 사무실이 있는 강남에 간다는 것을 뜻했다. 그만큼 이앤퓨처는 이 회장의 벤처 투자를 상징했던 대명사였던 것이다. 그런 이앤퓨처가 청산되자 벤처업계는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단 코오롱쪽에선 “지난 2000년 3월 벤처캐피털인 아이퍼시픽파트너스를 세우면서 이앤퓨처와 기능이 비슷해 이앤퓨처를 처분했다”고 주장했다. 이앤퓨처는 자본금 30억원으로 코오롱이 17%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지분 중에도 이 회장의 개인 지분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아이퍼시픽파트너스는 자본금 1백50억원에 코오롱그룹의 비상장 계열사인 HBC코오롱이 51.2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앤퓨처가 이 회장 개인지분이 많았던 반면 아이퍼시픽파트너스는 이 회장 개인지분(20%)보다 비상장 계열사 등 코오롱 계열사 지분이 많았다.
일각에선 리치앤페이머스나 이앤퓨처가 이 회장의 벤처 투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목하기도 한다. 리치앤페이머스가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이 회장의 개인투자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벤처투자 끝물이던 지난 2000년 3월 리드코프(옛 동특)라는 회사의 주식을 사들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이 회장은 이 회사의 주식 69만5천 주를 주당 5천원에 사들여 무려 1백25%의 수익률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회장이 리드코프의 주식을 사들일 때 이경숙씨 등 이 회장의 여자 형제들과 리치앤페이머스 등 이 회장 특수관계인들도 함께 리드코프의 주식을 액면가에 사들였다. 물론 이들은 이 회장보다 더 큰 시세차익을 올렸다. 2000년 9월 이들이 판 주식값은 주당 2만6천~3만3천원대였다.
반면 이 회장은 리드코프의 주가가 꼭지를 칠 때 팔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회장이 자신이 갖고 있던 주식을 상당부분 계열사에 떠넘겼다는 점. 이 회장은 지난 2000년 8월 리드코프의 지분 중 5만 주를 코오롱글로텍에 주당 5만원에 넘겼다. 액면가에 사들였으니 그는 10배의 매각차익을 본 셈이다.
이어 이 회장은 그 해 9월엔 코오롱정보통신, 리치앤페이머스, 코오롱개발 등에 10만 주를 주당 1만5천원에 매각했다. 여기서도 3배의 차익을 얻었다. 이때는 리드코프의 주가가 꼭지를 친 뒤 계속 하락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 두 거래로 이 회장은 투자원금 34억7천5백만원을 모두 뽑았다. 계열사 거래만으로도 원금을 모두 회수한 것.
하지만 이 주식을 사들인 코오롱 계열사는 결과적으로 큰 손해를 입었다. 이 회장으로부터 주당 5만원에 리드코프 주식을 사들인 코오롱글로텍은 매입시점 1년 뒤인 2001년 11월 주당 1만9천5백원에 이를 처분했다. 1년 만에 13억원의 손실을 본 것. 물론 이 회장으로 리드코프의 주식을 사들인 코오롱의 다른 계열사들도 대부분 투자손실을 입은 채 리드코프의 주식을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주식 거래로 이웅렬 회장과 특수관계인은 큰돈을 벌었다. 리치앤페이머스는 이 회장이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 지분을 인수, 이 회장의 투자손익에 물타기를 해준 셈이다. 리드코프의 주식을 매입할 당시 매입에 참여한 코오롱 계열사들은 “유망 벤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은 투자 활동의 하나”라고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룹총수의 손실을 만회해준 꼴이 된 것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때문에 일각에선 경영투명성과 관련해 이 회장과 코오롱 계열사들의 주식 투자에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코오롱 계열사들이 주가가 하락하는 시점에 이 회장이 투자했던 회사의 지분을 사들인 것은 다분히 그룹 총수의 투자손실을 방어해 준 것이라는 지적이다.
리치앤페이머스에 대해 코오롱쪽에선 이 회사의 구체적인 지분구조 및 투자자 내역을 공개하길 꺼리면서 “임직원들이 출자해 만든 회사”라고만 밝혔다. 사실 국내 기업 현실상 계열사 지분이 없고 임직원이 출자한 회사의 경영권이 독립적으로 운영된 경우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리치앤페이머스도 사실상 이 회장 개인 회사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이 회장은 자신의 벤처투자 지분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동원됐던 리치앤페이머스를 청산하고 사실상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벤처캐피털 성격의 회사였던 이앤퓨처를 청산함에 따라 그런 잡음 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코오롱에선 잇단 벤처 관련 회사의 청산에 대해 구조조정의 일환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방만하게 벌였던 기업투자를 축소해 그룹경영을 투명하게 하겠다는 주장인 것. 실제로 코오롱은 지난 2001년 코오롱상사를 분할해 FnC코오롱, 코오롱인터내셔널, 코오롱CI 등 3개사로 분사시켰다. 이어 코오롱상사의 투자지주회사 역할을 하던 코오롱CI에 HBC코오롱을 합병시켜 그룹 전체의 소유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최근 진행되고 있는 코오롱의 벤처 관계사 청산에 대해 “구조조정의 일환이냐, 말썽을 빚었던 이 회장의 개인 주식 투자에 대한 끝마무리냐”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