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피싱사이트 피해자들 ‘알선책’ ‘가입자’ 지목해 신상공개…2차 피해 심각, 경찰 수사 나서
주홍글씨는 조주빈(박사) 등 성착취 사건 가해자와 가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행위로 유명세를 얻은 텔레그램 방이다. 이들은 “우리는 텔레그램 자경단이다. 주홍글씨는 텔레그램 강력범죄에 대한 신상공개 및 범죄자의 경찰 검거를 돕기 위해 텔레그램 및 온라인상 어디에서든 활동하고 있다. 특히 텔레그램 3대 강력범죄를 강력히 규탄하며, 범죄자들의 인권 또한 따지지 않는다”라고 소개했다.
텔레그램 주홍글씨방. 이들은 스스로를 자경단이라고 부른다. 사진=주홍글씨 캡처
주홍글씨의 행위는 디지털 성범죄자를 단죄한다는 점에서 잠시나마 여론의 공감을 얻었으나 이에 대한 2차 피해 역시 극심하다. 가해자와 가해자의 가족은 물론 사건과 무관한 주변인의 정보까지도 모조리 공개했다. 일부 운영진은 이들의 여자친구와 가족에 대한 외모를 품평하기도 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신상과 사진이 여과 없이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1만여 명의 가입자 가운데 이런 부분에 문제 제기를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일부 언론에서 2차 피해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야 일부 사진이 삭제됐을 뿐이다.
최근에는 무고한 여성이 박사방 알선책으로 몰려 피해를 입은 사실도 있었다. 3월 26일 주홍글씨 방에 이례적으로 여성 A 씨의 신상정보가 ‘박제’됐다. 박제는 타인의 실수나 잘못을 스크린샷 저장하는 온라인 은어다. 운영자는 “과거 박사가 본인이 어떻게 여자들을 구했는지 올렸던 대화 내용이다”라는 말과 함께 대화 내용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쪽이 “얼굴, 몸매, 인지도에 따라 (돈이) 다르게 지급된다. 인스타 유명인은 입장금액의 20퍼센트를 지급한다”고 하자 상대방이 “저희 온라인 카페 회원 중에 인스타 유명인도 있으니 연결시켜 주겠다. 스폰서라고 하겠으니 비밀 지켜 달라”고 답한다. 운영자는 “A 씨가 박사방에 입장할 때 사용한 것”이라며 A 씨의 개인정보가 담긴 사진도 함께 박제했다. 즉 A 씨가 온라인에서 여성들을 모았으며 이 대가로 박사에게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주홍글씨에 A 씨의 신상이 공개되자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A 씨를 향한 모욕성 발언이 빗발쳤다. 텔레그램 대화방 중 하나인 ‘최고인민법원’방의 한 회원은 “이거야말로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다)다” “여자들끼리 좋은 알바거리를 제공 안할 수 없다”며 A 씨를 조롱했다. 맥락 없이 성희롱적 비난을 하는 회원도 다수였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A 씨가 박사방에 가입했으며 돈을 받고 여성들을 알선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주홍글씨 운영자가 “박사와 A 씨의 대화”라며 게재한 사진은 대화 주체가 잘린 캡처였다. 사진에는 대화 내용만 남겨져 있어 대화를 나눈 사람이 누군지는 사실상 확인이 불가능했다.
주홍글씨 운영자가 증거라며 제시한 ‘A 씨와 박사의 대화’, 오른쪽은 이에 대한 반응이다. 그러나 사진만으로는 대화 주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사진=주홍글씨
가입 당시 A 씨가 냈다는 개인정보 사진 역시 과거 한 피싱 사이트를 통해 유출된 정보였다. A 씨는 3월 26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8월 개인정보가 유출된 적이 있다. 한 비트코인 사이트에서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해서 가입했는데 알고 보니 피싱 사이트였다. 당시 유출 피해자만 400명이 넘었지만 결국 범인을 잡지 못했다. 이번에 주홍글씨에 올라온 사진은 당시 유출된 사진이다. n번방이나 박사방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일요신문이 당시 피싱 사이트에서 유출된 A 씨의 사진을 입수해 비교해본 결과 두 사진은 동일한 것으로 보였다. 현재 A 씨는 사이버수사대에 관련 사실을 신고한 상태다.
다른 방에서 ‘유료 회원’으로 소개되었던 남성 20명의 사진 역시 A 씨와 같은 피싱 사이트에서 유출된 것으로 보였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정보 가운데 일부가 n번방 가입자 정보로 둔갑되어 쓰이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주홍글씨 자료의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편 성착취 가해자들이 피싱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이와 결탁해 신상정보를 모아왔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n번방 운영자 갓갓도 피싱 링크를 이용해 트위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신상 정보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 범죄심리 전문가는 “조주빈은 자기과시적인 사람이다. 허세 부리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을 언급하며 늘 자의식 과잉 상태에 빠져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다른 방 운영자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것은 박사방 회원 수나 회원 가운데 유명인이 있다는 사실로 증명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피싱 사이트를 직접 운영하거나 피싱 사이트에서 개인 신상을 대량 구매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정보를 얻어 왔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얻은 정보로 몸집 부풀리기를 했을 수도 있고, 실제 협박이나 사기로 나아갔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3월 31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는 성착취 사건과 관련, 개인정보 침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책임수사관서를 지정했다. 주홍글씨, 아카츠키 등 다양한 텔레그램 자경단의 활동의 취지와는 별개로 일반인 개인정보를 취득해 공개하는 행위는 불법이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2차 피해 역시 무시할 수 없어서다.
현재 A 씨에 대한 신상정보는 모두 삭제된 상태다. 주홍글씨 총 관리자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 삭제한다. 주홍글씨 이외의 방들은 주홍글씨와 연관이 없다. A 씨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해명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