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사진 올리며 범죄수법 과시…초대된 760여 관전자들 “역사의 현장 보았다”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 등을 제작해 온 조주빈이 3월 18일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거됐다. 사진=연합뉴스
일반적으로 n번방과 박사방은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두 방은 운영자도 운영되는 방식도 다르다. n번방은 텔레그램 성범죄의 시초격으로 2018년 11월 처음 등장했다. 각각의 콘셉트를 가진 방이 1~8번까지 운영돼 n번방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운영자 닉네임은 ‘갓갓’이다. 범죄 대상을 찾는 곳, 다시 말해 주 활동 범위는 트위터였다. 주 범행 대상은 트위터에서 자신의 신체 일부 사진을 올리는 미성년자들로 이들의 계정을 해킹해 개인정보를 수집한 뒤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겠다며 협박하는 방식이었다.
박사방은 n번방의 후발주자다. 지난 여름 갓갓이 모종의 이유로 자취를 감춘 뒤 또 다른 수요를 찾는 가입자들이 박사방에 모이게 됐다. 그러나 실제 조주빈이 활동을 시작한 시점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2018년 12월부터다. 조주빈의 활동 범위는 트위터에 국한되지 않았다. 주로 불법사이트에서 고액 알바를 미끼로 여성들에게 접근했다. 게다가 신상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도 마다하지 않았다. 실제 박사방 피해자 가운데에는 한 가수의 팬클럽 커뮤니티 회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의 수법은 비슷하다. 갓갓과 박사는 부정하게 모은 개인정보를 협박 수단으로 사용해 음란 사진이나 영상을 요구했다. 약점이 될 만한 개인정보를 모으고 나면 “내가 너의 정보를 알고 있으니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이다. 처음에는 얼굴 사진, 춤 동영상 등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모인 영상은 피해자들의 또 다른 약점이 됐고 수위는 점차 높아졌다. 가해자들은 “이것만 하면 탈출시켜 주겠다”며 마지막의 마지막을 약속하며 피해자들의 절박함을 이용했다. 익히 알려진 가학적인 영상들은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일부 피해자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강제로 성관계를 맺어야 했다.
그런데 활동시점도, 운영하던 방도 달랐던 두 사람은 조주빈이 검거되기 전 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만났던 사실이 확인됐다. 시점은 1월 SBS ‘궁금한이야기Y’에서 n번방 사건을 다룬 이후다. 일요신문이 한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이날 두 사람이 참여했던 대화방 내용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해당 방에는 두 사람을 포함해 최소 763명의 참가자가 있었다. 모두 초대링크를 타고 들어온 이른바 관전자였다. 갓갓은 관전자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볼 수만 있도록 한동안 ‘채팅금지’를 시키기도 했다. 관전자들은 “역사의 현장을 보았다”며 환호했다. 이곳에서 범죄행위들은 대단한 작품처럼 전시됐다.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조주빈과 갓갓은 이때 처음 대화를 나눈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은 서로가 진짜 박사와 갓갓인지 알아보기 위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갓갓은 자신의 트위터 아이디를 공개했고 조주빈은 피해자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관전자들이 있으니 홍보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대화 주제가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로 흘러가자 갓갓은 “재미로 한다”고 말했고 조주빈은 “여자는 돈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조주빈이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이 방에서 피해자들은 ‘노예’로 불렸다. 이들의 실명은 아무렇지 않게 언급됐다. 갓갓이 조주빈에게 ”너에게 퀄리티가 높은 영상이 있는지 궁금했다. 하나 풀어보라“고 하자 조주빈은 곧바로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사진 속 나체 상태의 피해 여성은 마치 발작 증세가 나타난 사람 같아 보였다. 조주빈은 ”정상적이고 도도할 것 같은 애들이 박살날 때의 쾌감을,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환호할 때 나는 느낀다“고 말했다.
누구의 범죄 수법이 더 나은지 대결하는 대화가 이뤄지기도 했다. 조주빈은 “갓갓은 가학에만 빠져 있다”며 자신은 과거에는 아티스트였으나 현재는 상업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이에 갓갓은 “네 수법은 다 알려졌을 때 의미가 없다”며 “나는 노예들을 조질 때 단톡방에 모아두고 단체로 조진다. 5명을 모아두고 한 놈이 도망가면 나머지는 벌 받는 거다”라고 말했다. 역시 여러 장의 피해 사진이 유출됐다. 그중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보다 훨씬 연상의 여성이 함께 나온 사진도 있었다.
성범죄자들은 자신이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갓갓은 “나는 내 핸드폰도 안 쓰고, 인터넷도 내 것이 아니며, 아이디도 내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주빈도 “나는 경찰에 잡힐 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호언장담들은 모두 허세를 떨기 위한 허풍에 가까웠다. 조주빈은 갓갓에게 “(취재진에게) 목소리 들려준 적 없냐?” “형사가 내 녹음본 가지고 있더라” “‘그것이 알고 싶다’는 뭐가 있을까” 등의 질문을 하며 불안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조주빈은 3월 18일 검거됐다.
갓갓의 검거도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화 곳곳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드러낸 까닭이다. 그는 자신이 고등학생 수준의 해킹 능력이 있으며 지난해 자취를 감춘 이유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정시를 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유에 대해서는 “그냥 왠지 최근에 잡힌 게 내 제자 같아서”라고 답했다. 실제로 갓갓에게 n번방을 물려받은 운영자 ‘와치맨’ 전 아무개 씨(38‧회사원)는 지난해 9월 구속됐다.
경찰은 갓갓에 대한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다. 경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최근 갓갓의 유력 IP를 특정해 추적 중이다. 그와 함께 범죄를 공모한 공범자 다수는 이미 붙잡혔다. 3월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검거된 텔레그램 성범죄자는 총 124명으로 이 가운데 구속된 인원은 조주빈을 포함해 18명이다.
한편 텔레그램 성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날로 커지고 있다. ‘n번방 운영자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4일 기준 250만 명을 넘기며 역대 최다 동의 기록을 세웠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