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정배 의원(왼쪽), 신기남 의원 | ||
4·24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천정배 신기남 의원 등 신주류 강경파들이 신당 공세를 주도하며 ‘세 불리기’에 성공하자 한광옥 박상천 김태랑 최고위원, 정균환 원내총무 등 구주류 중진들이 ‘신당 반대’의 종전 입장을 바꿔 신당 참여를 전제로 한 ‘물타기 작전’에 나선 것이다.
양측은 일단 신당이 ‘국민통합’ ‘정치개혁’을 목표로 추진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적으론 신주류 강경파들이 ‘개혁’에 우선순위를 두고 일부 구주류 인사에 대한 ‘인적 청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구주류측은 ‘통합’에 무게를 두며 현재의 민주당 구성원들이 가급적 모두 참여하는 가운데 외부 세력을 수혈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신주류 강경파들은 신당지지 흐름 확산을 위해 “신당의 명분과 이념에 동의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천정배 의원)며 ‘문호 개방’ 방침을 밝혔다가 예상치 못한 구주류 중진들의 ‘신당 참여’ 선언으로 전략이 헝클어지자 크게 당황하고 있다.
반면 구주류 중진들은 ‘통합신당론’에 동조하는 입장인 정대철 대표와 김원기 고문 등 신주류 지도부, 김근태 김상현 조순형 고문 등 중도파 중진들과 연대를 모색하며 신주류 강경파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에 들어갔다.
먼저 신주류 강경파들은 신당 지지 흐름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야와 제도권 밖 범개혁세력들이 결집하는 ‘개혁신당’으로 설정한 신당의 좌표가 ‘민주당+α(알파)’ 형태의 ‘통합신당’으로 변질될 조짐을 보이자 고민에 빠졌다. 이들은 일부 구주류를 배제하고 당 밖의 개혁세력과 함께 개혁신당을 만들겠다던 구상에 “민주당의 분열을 전제로 한 ‘뺄셈형 신당전략’”이라는 중도파와 구주류의 비난이 가열되자 지난달 28일 신당 추진을 선언하면서 제한 없는 문호 개방을 선언했다.
▲ 박상천 최고위원(왼쪽), 한광옥 최고위원 | ||
강경파 내에서조차 “민주당의 모든 세력이 참여해 신당을 만든다면 그게 무슨 신당이냐”는 반발과 함께 ‘지금대로 상황이 간다면 한나라당 개혁파나 재야 시민단체들의 참여 명분도 그만큼 약해져 신당의 정체성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상황이 꼬여가자 강경파들은 신당의 좌표가 ‘개혁형’이 될 수밖에 없음을 재천명하고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강철 민주당 개혁특위 위원은 최근 “통합신당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며 결국 의원들이 탈당해 밖에서 신당을 하는 걸로 결론이 날 것이다. 이미지 좋은 의원 10여 명만 탈당해서 신당을 만들어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떨어지고 개혁신당의 지지는 올라가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호남 민심 이반’ 우려를 의식한 듯 “호남에서도 지금까지 3~4선 의원들이 포진하는 바람에 진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인재풀은 충분하며 젊고 유능한 사람들을 내세우면 (호남에서도) 절반 정도는 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신기남 천정배 의원도 각각 “신당의 이념은 ‘국민통합’이지 절대 ‘계파통합’이 아니다”, “민주당이 신당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민주당의 또 다른 기득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가세했다.
강경파들이 구주류와의 ‘선 긋기’를 재강조하고 나선 것은 신당 논의에 구주류의 발언권을 인정할 경우 신당의 방향이 엉뚱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들은 특히 구주류들이 신주류 지도부, 중도파와 손잡고 신당 작업의 주도권을 장악한 후 김근태 고문을 얼굴로 내세워 내년 총선 공천지분 등 기득권을 보장받으려 할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 강경파 핵심인사는 “사실 우리로서는 구주류측이 당 내외에서 개혁성을 두루 인정받고 있는 김 고문과 연대할 경우 갑갑해진다. 김 고문은 노 대통령의 ‘개혁 동지’이긴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노선으로 기울면서 ‘코드’에 문제가 생겼다. 그렇다고 김 고문을 배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혁신당의 틀이 잡힌 이후 김 고문과 지지그룹들을 합류시킨다는 구상이었는데 지금대로 가면 ‘통합신당론’을 펴고 있는 김 고문이 중도파와 구주류의 추대를 받아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강경파들은 신당 논의가 일부 왜곡될 조짐을 보이자 외곽에서부터 구주류를 옥죄어 가는 전략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불모지대’인 영남권에서부터 ‘개혁신당론’의 불을 다시 지펴나가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의 오랜 지기(知己)인 조성래 변호사 등이 주축이 되어 이달 9일 공식발족 예정인 ‘부산정치개혁추진위원회’와 지난 2일 창원에서 출범한 ‘정치개혁을 위한 참여운동본부’가 바로 개혁신당의 전위대로서의 성격을 지니며 대구에서도 이재용 전 남구청장과 권오상 변호사 등을 주축으로 비슷한 유형의 조직이 곧 출범할 예정.
강경파들은 또 ‘호남소외론’ 확산의 본거지인 광주에서도 노사모와 지난 대선기간 맹활약한 국민참여운동본부 등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개혁신당 지지조직을 곧 결성해 일부 구주류 인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 필요성을 확산시켜 나간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구주류측은 당내에서 ‘통합신당론’이 대세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전력을 경주하고 있다. 구주류측은 특히 신당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는 한화갑 전 대표가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7일 이후 현재의 6인 중진모임을 한 전 대표와 박상천 한광옥 최고위원, 정균환 원내총무 등 구주류 중진들이 다수 참여하는 ‘중진협의체’로 확대개편, 신당 논의의 중심축을 신주류 강경파로부터 옮겨오겠다는 계획이다. 구주류측은 이 같은 구상이 실현되면 수적으로 통합신당론자들이 다수를 이루는 중진협의체가 실질적으로 임시지도부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의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주류의 한 의원은 “당내에 신당 지지를 표명한 의원들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대세에 밀려 움직인 것뿐이지 신주류 강경파의 ‘개혁신당론’엔 공감하지 않는다. 특히 강경파들이 앞으로 ‘누구 누구는 안된다’는 식으로 논의를 이끌려 할 경우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가시화될 것이다. 만약 중도파들이 신당 논의의 주요 축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당내 대다수 의원들은 온건개혁론에 동조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명했다.
이 의원은 또 “신주류 강경파들은 ‘신당 카드’를 통해 우리를 고립, 고사시킨다는 구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국면대로 가면 그들의 전략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누가 뭐라 해도 중도개혁세력이 주축인 정당이며, 신당은 어디까지나 민주당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원칙하에서 외연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만약 신주류 강경파들이 끝까지 ‘인적 청산’과 ‘개혁신당’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들이 당을 나가 딴 살림을 차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