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윤석열’ 타깃 정하고 물밑 국지전…여권 공수처 통한 압박 예고, 검찰 신라젠과 라임 배후 별러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윤석열 총장 임기는 2021년 7월까지다. 여권의 고민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검찰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문재인 대통령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은 물론 차기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윤석열의 검찰’이 문재인 정부 실세들을 벼르고 있다는 정황이 뚜렷한 이상,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게 친문 진영 입장으로 보인다. 친문 핵심으로 꼽히는 한 정치권 인사는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총장과는 함께 갈 수 없다. 윤 총장 쪽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상황이다. 우리가 먼저 치지 않으면 오히려 당한다. 그렇다고 임기가 보장돼 있는 검찰총장을 강제로 끌어내릴 순 없는 노릇이다. 본인 스스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솔직히 이 정도 됐으면 윤 총장이 진작 내려왔어야 했는데, 아직 버티고 있으니 또 다른 수를 모색해야 할 것 같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기간 내내 ‘검찰개혁’을 주요 이슈로 띄웠다. 원내 1당을 확보해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구호였다. 민주당은 부인하지만 범민주당 계열로 분류되는 열린민주당은 아예 ‘조국’을 전면에 내걸었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이 있는 인사들을 비례명단에 대거 배치했다. 조국 수호가 곧 문재인 정권을 살리는 길이라며 ‘서초동 촛불’ 세력을 끌어안겠다는 포석이었다. 이러한 장면은 여권이 검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총선 전 불거진 일련의 정황들 역시 이런 기류에 무게를 더한다. 윤 총장을 오랫동안 따라다녔던 처가 관련 의혹이 재점화한 것도 그중 하나다. 민주당과 여권 인사들, 총선에 출마했던 후보들은 연일 이를 거론하며 윤 총장을 공격했다. 진보진영 몇몇 시민단체와 언론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를 놓고 윤 총장 측은 그 배경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여권의 노림수와 맞닿아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한때 검찰총장 ‘직속 부대’로 통했던 대검찰청 감찰본부의 감찰을 둘러싼 논란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채널A와 윤 총장 최측근 검사장 간 유착 의혹에 대해 한동수 대검 감찰본부장은 4월 7일 휴가 중이던 윤 총장에게 “감찰을 개시하겠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다. 검사장급 인사, 그것도 사회적 관심이 모아졌던 사안에 대한 감찰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알린 것에 대해 내부에서조차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1월 7일 오후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상견례를 마치고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지난해 10월 외부공모로 임명된 한동수 감찰본부장은 진보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우리법연구회는 현 정권 법조 주요 인맥풀로 꼽힌다. 윤 총장으로선 자신의 참모이긴 하지만 한 부장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동수 부장은 지난해 조국 전 장관 압수수색 후에도 수사팀에 대한 감찰 시도를 했다가 무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감찰본부는 ‘윤석열 사단’으로 통하는 일부 특수통 검사들에 대한 비위 의혹도 확인 중이라고 한다.
이를 종합했을 때 윤 총장은 말 그대로 ‘내우외환’에 휩싸인 상황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윤 총장 성격상 밖에서의 공격은 얼마든지 참겠지만 안에서조차 ‘항명’에 가까운 이런 움직임이 나오는 건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 검찰 수사관도 “이제 총선이 끝나면 윤 총장을 향한 여권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 사범 수사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번 감찰 파동은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권은 7월 출범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통해 윤 총장 압박의 수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최강욱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3월 3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윤 총장이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동시에 법무부 주도의 감찰 라인 역시 윤 총장 주변을 훑을 전망이다. 조국 전 장관 수사 과정에서의 권한 남용 부분 등도 감찰 대상이 될 것이 확실시된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 전언이다.
서초동 주변에선 윤 총장이 중도에 하차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긴 한다. 하지만 윤 총장 측근들은 하나같이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윤 총장과 가까운 한 법조계 인사는 “윤 총장은 수사 때도 그렇고 항상 정면 돌파하는 스타일이다. 피하지 않는다. 결정적인 하자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편으론, 본인이 버티고 있어야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 후배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윤 총장 측은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 될 것이란 여권 일각의 공공연한 압박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우선 검찰총장의 장모는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장모가 받고 있는 사문서 위조 혐의 역시 마찬가지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또는 그 직계가족의 공문서 위조만을 수사할 수 있다. 윤 총장이 장모 수사에 직접 개입했다는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하기는 힘들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앞서의 윤 총장 측 인사는 “법조항도 따져보지 않고 공수처 수사 대상 운운하는 것은 정치적 공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면서 “설령 수사대상에 포함되더라도 정치권이 언급하는 자체가 공수처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윤 총장의 팔다리가 다 잘려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검사가 그들만 있는 게 아니다. 부당한 외압으로 총장이 쓰러지는 것을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총장 측은 여권의 파상공세에 원칙으로 응수하겠다는 각오다. 본연 업무인 수사에 총력전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선거가 끝난 후 본격 착수하기 위해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첩보수집 등 기초 작업을 진행했고, 최근엔 몇몇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을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여의도에서도 총선 후 대형 권력형 게이트가 터질 것이란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다. 집권 후반기 불거졌던 게이트가 대통령 레임덕을 앞당겼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권으로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셈이다.
현재 서울남부지검이 수사하고 있는 신라젠과 라임자산운용 사건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풀이된다. 두 사건 모두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끊이질 않는다. 서울중앙지검의 고위급 인사는 “자세한 내용은 말해줄 수 없다”면서도 “신라젠과 라임에 관련된 돈이 도대체 어디서 나와 어디로 갔는지를 찾는 게 최우선 과제다. 그 다음은 이들을 비호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세력이 누군지를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신라젠과 라임의 자금줄뿐 아니라 이에 연루된 정치권 배후를 규명하는 게 검찰의 목표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