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 없는 자리에서 기안84에 소개팅 권유 “무례” 비판…관찰예능에서 친목방송으로 변질 ‘도마 위’
‘나혼자산다’는 프로그램 기획의도와 다르게 출연진의 ‘친목 쌓기’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사진=MBC ‘나혼자산다’ 공식 홈페이지
2013년 첫 방송 이후 2017년부터 3년 연속 MBC 방송예능대상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을 받은 ‘나 혼자 산다’는 명실상부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다. 2018년부터는 한국갤럽이 선정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상위권에 줄곧 오른 인기 프로그램이다.
‘1인 가구 독신 연예인들의 적나라한 자취생활과 혼자 놀기를 보여준다’는 기획의도 그대로 이들의 가식 없는 평소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고정 출연진 역시 관찰자 입장에서 시청자들을 대변하며 편안하게 진행하는 방식으로 “웃기기 위한 비속어나 폭력적인 행동 없이도 예능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 냈다.
그러나 방송을 거듭하며 ‘관찰자 입장’에서 ‘적극적인 참여자’로 변한 출연진에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싱글 연예인의 인간적인 생활을 보여주던 방송이 출연진의 친목 방송으로 포커스를 옮기기 시작하면서 방송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게 비판의 이유였다. 이 과정에서 친목이 형성된 출연진 외에 타 연예인에 대한 불쾌한 언급이나 대우 등이 문제가 돼 시청자 게시판에 성토 글이 이어지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4월 10일 방영분이 문제가 됐다. 앞선 방송에서 박나래가 기안84에게 김민경과 소개팅을 권유한 뒤 기안84가 “김민경을 알지 못한다”고 하자 진실게임을 이용해 사실 여부를 밝히려 한 장면이 나온 것. 김민경은 2008년 KBS 23기 공채로 뽑힌 개그우먼으로 최근에는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 고정 출연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4월 10일자 ‘나혼자산다’ 방영분에서 개그우먼 김민경을 상대로 무례한 발언을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사진=‘나혼자산다’ 방송 캡처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된 이 게임에서 기안84는 끝까지 “김민경을 모른다”고 했지만 기계는 그의 답이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출연진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박나래는 “김민경 씨에게 영상 편지 하나 보내라”며 부추기기도 했다.
이 장면이 방영되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김민경이 소개팅을 요청한 것도 아닌데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너무 무례한 것 아니냐” “일진들이 한 명 지목해서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방식으로 여성 연예인이 언급되는 게 불쾌하다”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당사자의 의사가 아니라 주변인들이 “(김민경이) 지금 다이어트도 하고 있다” “사람 괜찮다, 힘도 세고”라며 칭찬 아닌 칭찬을 하며 분위기를 몰아간 것 역시 시청자들의 매서운 비판을 받았다.
비판하는 시청자들의 주장은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식으로 웃기는 불쾌한 예능 코드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 출연진의 친목 다짐으로 출연하지 않는 다른 연예인에 대한 희화화가 이뤄지는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싱글 연예인의 독신 라이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던 기존의 관찰 형식 예능이 출연진의 친목 도모로 변질되면서 초심은 잃고, ‘일진 방송’이 됐다는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방송 이후 ‘나혼자산다’ 시청자 게시판 상황. 사진=MBC ‘나혼자산다’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이 같은 문제는 비단 방송 밖의 연예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나혼산’은 현 출연진인 기안84에 대한 다소 박한 대우와 편집으로도 시청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주로 함께 출연하는 이시언의 기안84에 대한 폭력적인 행동이나 언행 등이 문제가 됐지만 이와 관련해서도 별다른 개선을 보이지 못했다. 지난 주 방송에서 문제가 불거지면 그 다음 주 방송에서 출연진이 해명하거나 사과하고, 잠잠해지면 다시 유사한 논란이 발생하는 식이다.
시청자 게시판이나 댓글란 폐지 전 관련 뉴스에서도 이와 관련한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음에도 ‘나혼산’의 제작진은 ‘마이 웨이’를 고집해 논란을 더욱 키우기도 했다.
한 예능 프로그램 관계자는 “앞서 ‘무한도전’의 경우도 시청자들 사이에서 고정 출연진의 극명한 역할 분배나 이로 말미암은 새 멤버들에 대한 텃세 의혹 등이 지적되면서 오랜 팬들이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된 바 있다”며 “당초 기획의도가 ‘평균보다 조금 모자란 사람들이 보여주는 예능’이었는데 정작 그 모자란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을 면박주고 희화화하는 모습이 평온한 주말 저녁 예능으로선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옛날처럼 비하를 이용한 ‘막말 개그’나 폭력적인 행위가 필요한 몸 개그는 더는 지상파에서 통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타성에 젖은 제작진들이 시청자들의 이런 반응을 ‘갑질’이라고 생각해 무시하는 일이 잦은 것 같다. 그런 방식을 고수하다가 유튜브나 케이블 예능보다 도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