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도시 밖으로 빼내기 위해 잠든 승객 위장까지…“거리서 시체 불태운다” 가짜뉴스로 시민 혼란
코로나19가 덮친 에콰도르에서 시신 처리를 둘러싼 괴소문이 퍼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망자 수가 늘어나자 미처 시신을 매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문 앞에 부패한 시신을 방치하면서 도시 전체가 악취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퍼지는 관련 동영상을 보면 참혹하기 그지없다. 거리 한복판에서 시신으로 의심되는 형체가 불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여기가 지옥이구나 싶을 정도다. 이런 사태에 대해 미국의 ‘데일리비스트’는 “가난이 세계적인 유행병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섬뜩한 예”라고 보도하면서 에콰도르의 실상에 대해 소개했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시신을 운구하는 차량들이 에콰도르 과야킬의 공동묘지 앞에 길게 늘어서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에콰도르 태평양 연안의 항구 도시인 과야킬. 요즘 이곳의 모습을 보면 ‘죽은 도시’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거리에서는 시체가 썩어가고, 이로 인한 악취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코를 찔러대고 있다. 이를 가리켜 ‘데일리비스트’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나타난 가장 암울한 모습이다”라고 묘사했다.
지금 이곳을 ‘지옥’이라고 묘사한 ‘엘 디아리오 엑스프레소’의 블랑카 몬카다 기자는 “지금 영안실 냉동고에는 시신들이 가득 쌓여 있다. 병원 복도에도 늘어서 있으며, 심지어 병원 밖에도 쌓여 있다”라며 참혹한 심정을 토로했다. 병원에서 사망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인 편에 속한다. 미처 병원에 가지 못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빈민가에서는 시신들이 집안은 물론이요 길거리나 주차장, 혹은 화물 트레일러에 부패된 채 방치되고 있다. 이 지경이다 보니 하늘 위에서는 독수리떼가 기회를 노리면서 빙빙 도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다.
공동묘지 역시 이미 수용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때문에 매장 허가를 받은 시신 가운데 일부는 외딴 들판에 비석도 없이 묻히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신을 처리하는 정부의 늑장 행동을 기다리다 못한 일부 시민들은 가족의 시체를 몰래 도시 밖으로 빼내기 위해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도시 경계에 설치된 군 검문소를 빠져나가기 위해 시신을 잠든 승객으로 위장하는 식이다.
오는 4월 말 사망자 수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에콰도르에서는 현재 묘지 1만 개가 들어설 새로운 공동묘지 두 곳을 건설하고 있다.
하지만 3월 말부터 확진자 수가 치솟기 시작한 에콰도르에서 정부의 역할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시민들에게 정부는 “가급적 집에 머물러라” “가족 중 누군가 감염될 경우에는 알아서 최선을 다해서 대처하라”는 무책임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에콰도르 최대 도시인 과야킬이 중남미 코로나19의 진원지가 된 이유는 빈곤과 무능한 정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에콰도르에 본격적으로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여행객들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문제는 조기 방역에 실패한 데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과야킬 공항이 인근 도시로 연결되는 허브 공항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는 더 컸다. 퀴토 미주대학의 감염병 전문가인 에스테반 오르티즈-프라도 박사는 “역학적인 경계심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길거리의 벤치에 시신으로 보이는 물체가 놓여 있다. 그 위에 “911에 전화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실제 입국자들은 체온 검사만 간단히 받은 채 검역대를 통과했고, 많은 무증상 감염자들이 아무 제지를 받지 않고 도심으로 흘러 들어갔다. 여기에 더해 자가격리 지침 부족과 빈곤, 도시 과밀도, 그리고 취약 지역 사회의 높은 노인층 인구로 인해 사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오르티즈-프라도는 “이런 요소들을 모두 합하면 쾅! 하고 터져 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감염의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폭발은 공중보건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졌다.
인구 통계와 방역 시스템 부족은 차치하고 과야킬의 일부 시민들은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간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근거 없는 낮은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안일하게 대처한 까닭에 사태가 악화됐다는 것이다. 또한 날이 갈수록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알맞은 격리 지침을 내리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고 말한다.
4월 9일 기준 에콰도르 정부의 공식 집계에 따른 확진자 수는 총 4965명이었으며, 사망자수는 272명이었다.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야킬 지역 당국의 기록에 따르면, 3월 23일부터 4월 5일 사이 길거리와 민가에서 수습된 시신만 최소 1350구였으며, 보건국장은 4월 8일 하루에만 과야킬에서 15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발표하기도 했었다.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자택 격리 지침도 문제긴 마찬가지다. 에콰도르 정부는 매일 아침 5시부터 오후 2시까지 사람들이 외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상점들도 이 시간 동안만큼은 문을 열도록 허용하고 있다. 오르티즈-프라도는 “과야킬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더 강력한 통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면서 “생필품을 살 때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문제는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 사는 과야킬 지역의 많은 빈곤층에게 이런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와 관련, 과야킬 시장인 신시아 비테리 히메네즈는 최근 ‘유니비젼’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국민들이 정부의 권고를 무시한 채 계속 외출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외출금지령을 강행하려고 할 때마다) 돌과 칼을 들고 경찰을 쫓아버린다”고 설명했다.
가짜 뉴스로 사람들을 호도하고 있는 SNS 인플루언서들도 문제다. 오르티즈-프라도는 “에콰도르 정부는 격리 조치와 관련해 SNS에 유포되고 있는 위험한 글들을 통제해야 한다. 여기 에콰도르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수백만 명의 팔로어를 둔 인플루언서들이 있다. 이들은 팔로어들에게 ‘아무 일도 없다. 그러니 거리로 나가라. 당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선동은 매우 위험하다”라고 꼬집었다.
SNS에서는 시신으로 의심되는 물체를 불태우는 동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이에 대해 분노한 시민들이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고인의 가구나 소지품을 불태우는 일종의 시위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처럼 현실적인 위험을 부인함으로써 대중을 위험에 내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그저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 가령 거리에서 시신으로 의심되는 형체를 불태우는 동영상을 공유하면서 공포심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실제 SNS에서 퍼지고 있는 이 동영상 속에서 일부 시민들은 거리 한복판에서 무언가를 불태우면서 항의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대해 몬카다는 “거리에서 시체를 불태우고 있다는 뉴스가 곳곳에서 보도되고 있지만 이런 일은 실제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명확히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동영상은 시체를 불태우는 모습이 아니라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일종의 신호다. 몬카다는 “실제 그들은 고인의 가구나 관, 혹은 소지품을 불태우고 있었다. 시신을 처리하는 당국이 빨리 올 것을 호소하는 필사적인 행동이었다. 실제 이를 위해 타이어와 가구를 불태우는 사람들도 있다. 시체를 집 밖에 내놓는 이유는 정부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다. 이 모든 행동은 도움을 받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몬카다는 도시에는 자신과 같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말하면서 “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집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빈곤 지역에 사는 사는 많은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다. 일하러 나가든지 굶어죽든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러스 감염은 신분이나 지위를 가리지 않고 있다. 과야킬에서는 최소 열 명의 의사들이 사망했고, 1600명 이상의 의료 종사자들이 감염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마스크, 장갑, 방호복 등의 의료장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몬카다는 “내가 인터뷰한 의사들은 의료 물품이 부족해 절망적인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들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경우 병원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금을 물거나, 심지어 해고당할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더 심각한 문제는 자칫 이런 참혹한 사태가 에콰도르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중남미의 인접한 다른 국가들로 바이러스가 퍼질 경우 남미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