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 하면 ‘살충’ 떠올려, 2015년 후 ‘살균’ 인식 제고…700개사 방역예비군 국민 안전 지킬 것
한국방역협회는 ‘코로나19 종결을 위한 긴급대응팀’을 운영하면서 방역당국과 공조해 국회 방역을 비롯, 여러 방역작업을 진행했다. 홍원수 한국방역협회 회장. 사진=임준선 기자
#민관 공조 방역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나
코로나19로 인한 방역작업에는 국내 방역업체들이 총출동했다. 자칫하면 2차 감염으로 확산될 수 있는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방역 작업이 긴박하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보건소 등 국가기관의 방역시스템에만 의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평소엔 방역작업이 매일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방역기사를 상주시키기에는 운영상의 단점이 있다.
이번 경우처럼 확진자의 동선에 따라 여러 곳에서 빠른 방역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과 방역업체와의 면밀한 연결이 필요하다. 다행히 국내에는 많은 수의 사설방역업체가 존재한다. 국내 코로나19의 확산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설업체들의 소독과 방역작업이 큰 역할을 했고 그 뒤에는 한국방역협회가 있었다.
만약 방역작업을 공공기관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면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더 오래 지속될 수도 있었을 거라고 홍원수 한국방역협회 회장(거문환경 대표이사)은 말한다. 다행히 국내에는 전국적으로 수천 개의 방역회사가 존재하고 있는데 일정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한국방역협회에 가입된 정예 회원사만 700여 개에 이른다. 예전에는 주로 공공재로서 운영되어 왔던 방역산업이 사회 전체의 위생이 일정수준으로 올라간 1990년대 이후 점차 민간화 돼 민간회사가 방역작업을 위탁 운영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방역은 이미 공공기관에서 모두 감당하기에 어려운 영역이 됐다.
때문에 보건복지부 산하 1979년에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방역협회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질병관리본부 등 방역당국과 밀접하게 공조해 전국의 방역작업에 큰 역할을 했다. 협회에서는 ‘코로나19 종결을 위한 긴급대응팀’을 운영하면서 방역당국에서 협조요청을 하면 각 지자체에 위치한 지회로 연결해 지역의 방역업체들에 작업을 맡기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방역작업을 진행했다. 협회는 “전례 없는 비상사태였던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역업체들마다 그 어느 때보다 방역에 대한 사명감이 작용했다”고 전했다.
한번은 국회까지 문을 닫은 적이 있었다. 한국방역협회를 통해 방역작업이 지시됐고 저녁 6시부터 새벽 5시까지 밤새 방역 작업이 이어졌다. 민간업체가 아니었다면 지연됐을 작업이었다. 홍 회장은 “협회는 회원사들의 이윤창출에 도움을 줘야 하는 이익단체지만 방역산업의 특성상 공공성을 띨 수밖에 없는 분야”라며 “단순한 공조로 그칠 것이 아닌 정부에서 보호·육성해야 하는 산업”이라고 못 박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던 것이 확인된 2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신종플루와 메르스로 선행한 ‘살균의 기억’
홍원수 한국방역협회 회장에 따르면 일반인들이 살균에 대해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2009년 신종플루 때부터였다. 이후 2015년 메르스를 겪으며 살균의 중요성이 더 절실해졌다고 한다. 그는 “말하자면 메르스가 예방주사였다. 그전에는 ‘소독’ 하면 살균에 대한 개념보다는 해충을 잡는 살충에 대한 인식이 많았다”며 “바이러스 같은 세균은 눈에 보이지 않다보니 의료기관 외에 일반에는 민감한 이슈가 아니었지만 신종플루와 메르스 등을 거치며 살균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농화학과를 나와 방역회사 (주)거문환경을 3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는 홍 회장은 1960~1970년대의 해충잡기운동부터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거치며 위생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기를 지켜봐 왔다. 1980년대 초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생기고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생활위생에 관한 구체적인 법령들이 적용되면서 방역은 이미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1979년에 보건복지부 산하에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방역협회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질병관리본부 등 방역당국과 밀접하게 공조해 전국의 방역작업에 큰 역할을 했다. 자료=한국방역협회 제공
미국만 해도 공공 및 일반시설의 소독 작업은 강제조항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의무소독 법령으로 인한 수요 때문에 구 단위로 몇 십 개의 크고 작은 방역업체가 운영되고 있다. 한국방역협회가 위치한 성동구에도 20~30개의 업체가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방역산업의 기본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는 얘기다.
#방역예비군으로 국내 방역안전 지켜낼 것
홍 회장은 방역산업이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사실 30~40년 동안 국내에서 해충 작업이 꾸준히 이어져온 터라 살충에 대한 수요가 한계에 도달해 업계가 포화상태라고 생각했는데,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살균 분야로의 새로운 시장이 생긴 셈”이라며 “균을 전염시키는 매개체인 파리, 모기, 바퀴벌레 등의 해충이 없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한 살균의 필요성이 생긴 것”이라고 전했다. 환경파괴와 그로 인한 온난화, 고령화 등으로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 상황이 더 자주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코로나19 방역작업을 진행하면서 방역산업은 국가나 민간 어느 한쪽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고 협력해야 할 산업임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업 중 방역업체들에서 방역약품과 마스크 부족 현상이 있었다. 협회가 보건복지부에 건의하고 복지부가 이를 환경부와 행안부에 전달해 방역장비와 약품 부족을 해결할 수 있었다.
홍원수 한국방역협회 회장은 “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방역 예비군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중세에는 유럽의 전염병이었던 페스트가 중국까지 오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21세기의 전염병은 하루 만에도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다”며 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