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불기소 이유로 무고 단정할 순 없어”…1· 2심 유죄, 대법서 뒤집혀 파기환송
직장 선배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가 무고죄로 역고소 당한 부현정 씨가 파기환송심에서 최종 무죄를 받았다. 2018년 10월 ‘#미투, 세상을 부수는 말들’ 퍼포먼스 참가자들이 침묵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회사 선배인 KBS 촬영 기자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가 무고죄로 역으로 고소당한 부현정 씨는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파기 환송했다. 파기환송심은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은 재상고하지 않았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기습 추행이 있기 전까지 어느 정도 신체 접촉이 있었다고 해도 입맞춤 등의 행위까지 동의하거나 승인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입맞춤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부현정 씨의 객관적으로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A 씨를 고소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사건의 시작은 5년 전이었다. 2015년 2월 KBS 행정 직원이었던 부현정 씨는 같은 회사 선배 촬영 기자 A 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부 씨는 A 씨가 7개월 전쯤인 2014년 5월, 함께 술을 마시고 나와 골목길을 걷던 가운데 자신의 팔을 잡아 버려진 소파에 앉힌 뒤 포옹하고 입을 맞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2015년 5월 해당 사건을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결정했다. 부 씨는 항고했지만 기각됐다. 이후 법원에 재정신청까지 했지만 또 기각됐다. 부 씨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성추행 피해 사실을 밝히는 ‘미투’에 나섰다.
A 씨의 역공이 시작됐다. A 씨는 2016년 1월 부 씨를 무고죄로 고소했다. 검찰을 이를 기각했다. 항고와 기각이 되풀이됐다. 하지만 A 씨가 재정신청을 내자 법원은 2016년 11월 이를 받아들였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은 무고를 인정해 부현정 씨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배심원 7명 가운데 6명이 유죄로 평결했다. 1심 재판부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A 씨가 장기간 수사를 받도록 했지만 부 씨가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부현정 씨는 항고했지만 2심 재판부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부 씨와 A 씨가 단둘이서 4시간 동안 술을 마시고, 상당한 시간 동안 산책을 했다는 점과 자연스럽게 신체 접촉을 하는 듯한 장면이 나타나는 CCTV 영상을 근거로 “부 씨가 성적수치심을 느꼈다고 볼 사정을 찾을 수 없고 오히려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A 씨가 같은 회사 선배와 부 씨, 부 씨의 남자친구가 동석한 자리에서 무릎 꿇고 사과한 점을 들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소에 이르게 됐다는 부 씨의 고소 동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 원심을 뒤집는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은 ‘신고 사실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극적 증명만으론 신고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라고 단정해 무고죄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참조했다.
대법원은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고 해서 그 자체를 무고했다는 적극적인 근거로 삼아서 신고 내용을 허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나 신고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설령 부현정 씨가 사건 당일 일정 수준의 신체 접촉을 용인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신체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갖는 주체로서 언제든 그 동의를 번복할 수 있다”며 “기습 추행이 있기 전까지 A 씨와 어느 정도 신체 접촉이 있었다고 해서 입맞춤 등의 행위까지 동의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기습 입맞춤한 사실이 있고, 사실의 정황을 과장하는 데 불과하다면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 환송했고,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이번 사건을 변호해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이끌어 냈던 이은의 변호사는 “대법원은 성폭력 피해 신고를 무고로 오인해선 안 된다는 판단을 동일하게 해왔다. 이번 파기환송심은 그런 사법부의 입장을 확고히 한 것으로 보인다”며 “여전히 현업에서 피해자들에게 무고의 굴레를 씌우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일선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이 부분을 환기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부현정 씨는 일요신문에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직장도 못 다니고 재판을 받았다. 아직도 상대는 민사소송으로 1억 원, 상대 부인은 5000만 원을 걸어 날 괴롭히고 있다. 세상이 나와 같은 사람들의 고통을 모른척하지 않길 바란다”고 전해왔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현실에선 입맞춤 등 신체 접촉의 맥락이 중요한데, 법의 판단을 받을 땐 맥락이 중요하지 않고 신체 접촉 사실이 중요하다. 현실과 간극이 있다”며 “‘소극적 증명’만으론 무고죄가 성립되긴 어렵다는 판단이 나오고 있어 성폭력 고소가 오남용 될 소지가 없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