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국민기업화 계획이 무산됨에 따라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 ||
정상영 명예회장이 이끄는 KCC그룹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 명예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주식처분금지가처분신청을 낸 부분과 관련해 법원이 정 명예회장의 주장이 타당하다며 이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현대그룹의 국민기업화 계획을 앞세워 정상명 명예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기선을 잡으려 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꿈은 중대한 고비를 맞은 듯하다.
정 명예회장으로서는 그룹 경영권 획득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 날 정 명예회장 못지 않게 기뻐한 이들이 또 있었다. 서초동 KCC그룹 본사 8층에 위치해 있는 그룹 홍보팀이었다. KCC그룹 홍보팀은 모처럼의 ‘승전보’에 들뜬 분위기였다.
‘옛 동지가 오늘의 적군으로.’
현재 KCC그룹 홍보팀과 현대그룹 홍보팀을 빗대어 한 말이다.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이 날로 격해지면서 물밑에서는 홍보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양자의 대결구도를 홍보전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의 주도권은 여론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과 현 회장의 얘기가 연일 언론의 중요 지면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양측의 홍보전이 얼마나 치열한 지를 알 수 있다. 일부에서는 현대그룹의 경영권 다툼을 두고 언론에서 지나치게 확대 생산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두 그룹은 최근 홍보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이들 홍보팀원들의 프로필을 보면 한때 현대그룹 계열사에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등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는 점에서 서로의 장·단점에 대해 속속들이 꿰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현대계열사 관계자의 말이다.
홍보전이 본격화된 것은 이달 초 KCC그룹이 홍보조직을 보강하면서부터. KCC그룹은 지난 1일 지난 2000년까지 현대그룹의 홍보분야를 총괄했던 이영일씨를 KCC그룹 홍보고문으로 영입하며 홍보전의 서막을 알렸다.
이 고문은 모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현대건설 이사대우를 시작으로 현대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이후 지난 96년부터 현대그룹 문화실(현재 구조조정본부) 홍보팀 부사장을 맡았다가 금강기획, 현대건설 홍보책임자로 자리를 옮겼고, 지난 2000년 <문화일보> 부사장으로 가면서 현대그룹과의 고리가 끊겼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정 명예회장의 부름을 받고 또다시 KCC그룹의 홍보실로 돌아온 것. 더욱이 KCC그룹은 단순히 이 고문을 영입한 것이 아니라 홍보조직도 완전히 개편했다. 현재 KCC의 홍보팀은 이영일 고문을 정점으로 전주 KCC이지스 농구팀 단장을 맡았던 안문기 이사가 총 책임을 맡고 있고, 그 밑에 홍보 1, 2팀이 나눠져 있다.
이에 맞서는 현대그룹의 홍보맨 파워는 어떻게 될까.
현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측의 홍보책임자는 현기춘 현대전략기획실 상무다. 현 상무는 지난 98년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부장을 거쳐 같은 해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긴 뒤 지난 2000년까지 현대건설 경영전략팀 이사를 맡았다.
그는 그동안 현대그룹의 분리,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타계 등 현대그룹에서 일어난 굵직한 일을 모두 처리하며 그룹의 공식적인 마우스(창구)로 활동해왔다. 현대그룹은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와 계열사인 현대상선, 현대증권 등에서 급파된 베테랑 홍보맨들이 한 팀을 이뤄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 상무를 정점으로 현대아산에서 현대엘리베이터로 파견된 홍주현 과장, 현대상선의 오동수 부장, 김홍인 차장, 현대증권의 강연재 전무, 박승권 부장 등이 현 회장을 보좌하고 있다. 특히 현대그룹은 현 회장이 여성 경영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계열사 홍보직원 중 여직원을 팀에 급파하는 세심함까지 보이기도 했다.
‘막상막하’의 맨파워를 보이는 두 그룹의 홍보맨들. 현재 이들은 각각 다른 ‘군주’를 맞아 전쟁을 치러야하는 상황이지만, 한때는 한솥밥을 먹었다. 두 그룹의 수장인 이영일 KCC그룹 고문과 현기춘 현대전략기획실 상무부터가 그렇다. 두 사람의 연배는 이 고문이 현 상무보다 10년 정도 선배지만, 이들도 한때는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지난 2000년 당시 이 고문은 현대건설 홍보 부사장을 맡았고, 현 상무는 같은해 전략기획팀 이사를 지냈다.
특히 이 고문의 경우 지난 1998년까지 현대그룹 문화실(현재 현대구조본) 홍보책임자를 맡았기 때문에, 현재 대립관계인 그룹 사람들을 대부분 부하직원으로 뒀었다.
그러나 두 그룹의 홍보맨들이 다소 ‘미묘한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보전쟁은 당분간 그 열기가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KCC그룹이 최근 홍보실 법인카드도 기존 3개에서 4개로 늘리는 등 홍보실 예산을 대폭 늘리며 언론사 기자들과의 거리 좁히기에 나섰고, 본사 사내에 기자실을 따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여론몰이에 나서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KCC의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 홍보실 담당자들의 대다수가 지난 2000년 당시 ‘왕자의 난’을 겪은 적이 있어 ‘노하우’가 있지 않겠느냐. 늦은 면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홍보실을 강화해야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홍보전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많다.
현대그룹에서 분가한 다른 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한때 한뜻으로 일했던 사람들인데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어 무척 씁쓸하다”며 “현대그룹의 경영권 문제가 2번씩이나 ‘분쟁’으로 비춰져 같은 ‘현대’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미지 손상 등의 피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