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대 출마하면 ‘트리거’ 역할…당권파 친문·친노계, 이낙연과 물밑 교류 정황
더불어민주당 주류, 친문계 분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해찬 대표가 5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제3차 중앙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친문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느냐.” vs “결이 다르긴 하다.”
친문계에 대한 당내 인사들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네 번의 전국 단위 선거 승리로 친문계 몸집은 커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세분화됐다. 친문계가 아닌 계파는 이개호 의원을 비롯한 NY(이낙연 당선자)계, 우상호 이인영 의원의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친박원순계(박홍근 기동민 의원 등), 친이재명계(정성호 김병욱 의원 등) 정도다. 이를 뺀 나머지 3분의 2가량은 친문계로 분류된다.
다만 친문계 역시 △당권파 친문계(김태년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등) △문재인 청와대 참모그룹(윤건영 윤영찬 당선자 등) △노무현 정부 출신(홍영표 전해철 의원, 이광재 당선자 등)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김병기 박주민 의원 등) △21대 총선 영입자(김남국 이수진 당선자)로 분화됐다. 이 중 친문 직계가 주축이 된 ‘부엉이 모임’은 전해철 의원 등 노무현 정부 출신의 친문계가 다수를 차지한다. 21대 총선 과정에서 이해찬 대표가 영입한 인사 중 일부는 ‘당권파 친문계’에 가깝다. 친문계가 87년 체제 이후 가장 복잡한 ‘단일 계파’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친문 분화의 트리거(방아쇠)는 이낙연 당선자다. 이 당선자가 친문계 중 어느 그룹과 오월동주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분화의 양상은 달라진다. 친문 분화가 약으로 작용할지, 독으로 작용할지도 결정된다. 오는 8월 민주당 당권 경쟁을 거치면서 여권 세력지도가 한층 선명해진다는 얘기다. 당내 인사들에 따르면 ‘당권파 친문계’는 이 당선자와 접점 찾기에 돌입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권파 친문계 핵심 중진 의원이 이 당선자에게 전당대회 출마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파워가 ‘김태년 vs 전해철’ 원내대표 경선의 변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권파 친문계가 NY계 포섭의 선점 효과를 누린 것으로 분석된다. 당 일각에선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파 친문계와 NY계가 힘을 합치면, 부엉이 모임 등의 ‘성골 친문계’를 이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친문 직계인 부엉이 모임은 홍영표 의원을 지지하고 있다. 송영길 의원은 86그룹과 호남, 우원식 의원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등을 기반으로 각자도생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당권파 친문계의 물밑 작업 이후 민주당 주류 분화의 움직임이 뚜렷이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후원회장을 지냈던 이기명 씨는 5월 17일 언론과의 통화에서 “(총선 기간) 종로 캠프 사무실에 매일같이 나갔다”며 이 당선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원조 친노(친노무현)계와 친문계를 동시에 상징하는 이 씨가 이 당선자를 지지하자, 파장은 컸다. 당권파 친문계와 친노계 일부가 시차를 두고 ‘이낙연 러브콜’을 보낸 만큼, 당내 역학구도의 새판 짜기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낙연 당선자가 5월 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비상경제대책본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낙연 당선자도 ‘당권파 친문계→이기명 지지’ 전후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식사 정치’가 대표적이다. 이 당선자는 5월 7일 낙선자 15명과 식사를 한 데 이어 같은 달 14일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에 참여한 전직 장관들과 만찬을 했다. 하루 뒤에는 4·15 총선에서 자신이 후원회장을 맡았던 고용진·김병욱 당선자 등 20명과 오찬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이 당선자는 다수의 인사로부터 “당권에 도전해야 한다”며 출마를 권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40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차 광주를 찾은 이 당선자는 민주당의 광주·전남 당선자 14명과도 오찬을 함께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당권 행보를 위한 ‘사전 포석용’ 세 규합”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특히 이 당선자는 광주·전남 당선자와 오찬 후 기자들과 만나 오는 8월 전당대회 출마와 관련해 “빨리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남에서 그간의 행보보다 한발 앞선 발언을 한 셈이다. 이 당선자가 당권 도전을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이때부터 확산됐다. 이 당선자가 전당대회 출마를 위한 워밍업에 나서자, 4·15 총선 때부터 몸을 풀었던 당권 주자들은 불출마 의견을 잇달아 냈다.
이 당선자와 호남이 겹치는 송영길 의원은 “이낙연이 나오면 불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자와의 연대설에 휩싸였던 김부겸 의원도 불출마로 가닥을 잡았다. 우원식 의원도 불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당권 주자 중 이 당선자의 출마 여부와 관계없이 당권 도전에 나설 인사는 홍영표 의원 정도다.
이 당선자는 21대 국회 개원(5월 30일) 직후 당권 도전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 내부에서 출마 압박이 거센 만큼, 그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다. 출마 가능성은 반반이다. 재선의 친문계 의원은 임기 7개월짜리 여당 대표라는 점을 언급,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당내 일각에선 40% 지지도를 넘어선 이 당선자가 당권까지 거머쥘 경우 문 대통령 레임덕(권력누수)만 재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는 반대로 이 당선자 출마에 베팅한 친문계 의원들도 적지 않다. 특히 이 당선자가 4월 17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난 직후에는 “친문계가 당권 도전에 대한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라는 말이 삽시간에 퍼지기도 했다.
이낙연 출마에 베팅을 한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당권을 통한 ‘당내 우군 확보’와 ‘호남 지역주의 탈피’다. 이 당선자 멘토로 알려진 ‘동교동계 원로’ 정대철 전 의원도 “이 당선자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 민주당 복당을 신청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 당선자가 당내 우군 확보와 호남 지역주의 탈피에 실패하면, 대권 고지에 오를 수 없다는 의미다. 대세론에 근접했다가 이 두 가지 이유로 대권에서 미끄러진 대표적인 정치인은 고건 전 국무총리가 꼽힌다. 행정의 달인인 고 전 총리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여권의 대안론으로 떠올랐지만, 진보진영 내 우군 확보에 실패하고 ‘호남 주자 한계론’에 부딪혀 결국 중도 낙마했다.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이 당선자가 친문계 분화의 방아쇠를 당긴다면, 범친문계도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이 당선자와 가까운 NY계는 이개호 의원과 함께 민평련의 설훈 오영훈 의원 등이 꼽힌다. 당권파 친문계를 비롯해 정태호 진성준 당선자 등 15명 안팎의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자신이 후원회장을 맡았던 22명의 당선자, 호남 그룹 등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낙연이냐, 비이낙연이냐’를 놓고 분화의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당선자가 막판 장고 끝에 불출마를 택하면서 친문 분화의 트리거 역할을 뒤로 미룰 수도 있다. 야권 관계자는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 잠룡이 심판대에 먼저 등판하는 것은 보수진영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며 “문 대통령도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에 직을 넘길 만큼, 우리 정당사의 대표는 만만하지 않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반대파의 흔들기에 백기투항하면서 중도 낙마했다. 4년 만에 당내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이 주류의 분화로 바뀌었을 뿐, 본질은 내부의 권력암투다. 이낙연 당선자는 독이 든 성배를 받을 것인가. 그의 핵심 측근은 “나도 정말 궁금하다”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