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양정숙 연이은 악재 부실검증 논란…친문 진영 “총선 승리 이끌었는데 무슨 책임이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3월 30일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열린 더불어시민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처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한 당선자 6~7명이 5월 1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회동을 가졌다. 총선 직후 상견례차 만나기로 약속된 자리였다. 하지만 이날 모임은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였다고 한다. 비례전용 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의석(17석)을 합친 180석으로 대승을 거뒀지만 불미스러운 일이 잇달아 터진 뒤였기 때문이다. 4월 23일 성폭력 혐의를 받는 오거돈 전 시장이 사퇴했고, 며칠 후엔 더불어시민당 비례명단 5번으로 당선된 양정숙 당선자와 관련된 여러 의혹이 쏟아졌다.
회동에 참석했던 한 당선자는 “다들 곤혹스러워했다. 아직 당선자 신분이라 입장을 밝히긴 어렵지만, 당 지도부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보자는 선에서 논의를 마쳤다”면서 “유야무야 넘어가려 한다면 180석 공룡 여당의 오만으로 비쳐질 것이다. 또 야당에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당이 총선 전 인지하고도 승리를 위해 묵인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드시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귀띔했다. 당의 대응 태도에 따라 향후 당 내홍으로도 번질 수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는 총선 대승 후 여권 물밑에 퍼져 있는 우려를 반영하기도 한다. 실제 여러 악재가 불거진 후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상승세는 꺾였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4월 30일 발표한 문 대통령 지지율은 60.6%였다. 전주보다 3.1%포인트(p) 떨어진 수치다. 민주당 지지율은 7.4%p 내린 45.2%로 나타났다. 총선에서 크게 이긴 후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오거돈·양정숙 사태가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선거 대패로 침체됐던 1야당은 거센 공격에 나섰다. 미래통합당은 오거돈 전 시장을 고발하는 한편, 자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양정숙 당선자에 대해선 부실 검증 등을 문제 삼고 나섰다. 특히 여권이 이러한 내용 등을 총선 전에 알고 있었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다. 김성원 통합당 대변인은 “민주당이 충분히 도덕적 흠결을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선거를 앞두고 비난 여론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묵인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이제야 뒷북 제명, 늑장 고발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여권에서도 쓴소리가 흘러나온다. 공개 입장 표명에 대해선 꺼리는 모습이지만 물밑에선 불만이 역력하다. 앞서 언급된 초선 당선자들 모임에서 나왔던 것과 비슷한 내용들이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국민들이 우리에게 180석을 준 것은 일을 제대로 해 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된다. 빨리, 그리고 확실하게 털어야 한다”면서 “초선만 68석이다. 그들을 포함한 당내 인사들과 국민들에게 납득할 만한 수준의 해명을 내놔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총선 직후 당을 떠나겠다고 밝혔던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이름이 다시 오르내리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 양 전 원장은 총선 전략 수립과 공천 등을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진, 친문 핵심 중 핵심이다. 그는 더불어시민당 출범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양정숙 부실 검증 논란, 총선 전 오거돈 성폭력 사건 대처에 대한 석연찮은 부분들이 불거지자 양 전 원장 책임론이 당 안팎에서 대두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래통합당도 일련의 사건들 ‘몸통’으로 양 전 원장을 지목하고 있다.
친문 진영은 발끈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출신의 한 당선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미래통합당이 그러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내부에서조차 양 전 원장이 비판받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양 전 원장은 사상 초유 승리를 이끌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과 뭐가 다르냐. 설령 양 전 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해도, 이미 사퇴 의사를 밝히고 야인으로 돌아간 상태다. 지금 양 전 원장을 거론하는 것은 정치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한 친문계 의원도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오거돈, 양정숙 사건은 당에서도 어떻게 해볼 수 없었던 개인의 일탈 성격이 짙다. 통합당에서 자꾸 이런 저런 의혹을 거론하는데 대부분 억지에 불과하다. 여기에 우리가 말려들어서야 되겠느냐. 특히 몇몇 중진급 정치인들이 초선들을 선동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우려스럽다. 180석이 많은 것 같아도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부 분란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행동들은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다.”
여권 내 이런 양상이 포착되는 것에 대해 정가에서도 남다른 시선을 보낸다. 친문 핵심이자 여권의 대표적인 ‘스핀 닥터(정치홍보전문가)’로 꼽히는 양 전 원장을 두고 벌어지는 공방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한 민주당 전직 의원은 “공룡여당 내부의 정파 간 주도권 싸움 신호탄 성격이 보인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금의 민주당은 친문계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이에 대한 견제심리와 반발감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시간이 갈수록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다. 8월 전당대회, 멀게는 차기 대선을 앞두고 양정철 이름이 회자되는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읽힌다”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