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진·황현주 감독은 영원한 은사”…연봉퀸 질문엔 ‘슬며시 미소만’
V리그서 숱한 기록을 쌓아올린 양효진은 이번 2019-2020 시즌을 마치고 데뷔 후 최초로 MVP를 수상했다. 사진=일요신문DB
#정규리그 MVP의 의미
2007-2008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배유나-이연주-하준임에 이어 전체 4순위로 현대건설에 지명된 양효진은 신인왕을 놓친 아픔이 존재한다. 이후 유독 상과는 인연이 없었던 그는 여자배구 최고의 센터로 활약하면서도 정규리그 MVP를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개인 성적과 팀 성적이 엇갈리면서 수상 기회를 놓쳤는데 2019-2020시즌을 현대건설이 정규리그 1위로 마무리 짓게 되자 비로소 기회가 찾아왔다.
“어렸을 때는 MVP 한 번 받는 게 소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랑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MVP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별다른 생각 없이 시상식에 참석했다가 큰 상을 받게 돼 더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양효진은 2019-2020시즌 V리그 팀·개인상에서 후보에 오른 이다영(전 현대건설, 현 흥국생명), 디우프(KGC 인삼공사)와 MVP 경쟁을 벌였는데 기자단 투표 총 30표 중 24표가 양효진에게 쏟아지면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MVP에 선정됐다(이다영 3표, 디우프 3표).
이다영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양효진의 MVP 수상에는 자신의 지분이 50% 정도 포함됐다며 “맛있는 거 사줘야 한다. 소고기 사 달라”는 애교 섞인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다영이 성격상 재미있게 방송하려고 말한 내용일 것이다. 우리 팀에서 다영이와 함께 배구하며 항상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나한테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했고, 그 부분이 팀 성적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 시즌은 다영이한테도 성장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양효진에게 물었다. 이다영에게 소고기 사줬는지를.
“만나야 사줄 수 있는데 아직 만나지 못했다. 흥국생명으로 팀을 옮긴 터라 얼굴 보기가 어렵다. 만약 만나게 된다면 당연히 사줄 의향이 있다.”
#‘기록 재벌’과 양효진
양효진은 2019-2020시즌 V리그에서 공격성공률, 블로킹, 오픈공격, 속공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면 4관왕을 기록했다. 국내 선수 중 4관왕은 남녀 통틀어 양효진이 유일하다.
이런 그도 처음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다. 신인 드래프트 전체 4순위로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었고, 신인왕도 놓쳤지만 그는 현재 여자 배구 최고의 센터로 자리매김했다.
양효진은 “선수생활 하는 동안 블로킹 1위 자리는 빼앗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이영미 기자
“신인 때는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든 모습을 보였다. 키는 타고났지만 큰 거 외에는 운동선수로서의 장점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게 부족했다. 점프력도 떨어졌고, 체력도 좋지 않았다. 신인인데 고참 선수처럼 항상 병을 달고 살았다. 관절도 안좋았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독한 훈련밖에 없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뛰었고, 더 많은 땀과 눈물을 쏟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힘든 과정을 어떻게 참고 지냈나 싶다.”
그토록 절치부심해서 쌓아 올린 다양한 기록들 중 양효진이 가장 아끼는 기록은 무엇일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블로킹을 꼽았다.
“내 포지션이 센터니까 블로킹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신인 때부터 감독님한테 많이 혼나며 배운 부분이 블로킹이라 블로킹에 대한 애증이 있다. 나이 들면 키가 줄어들고 점프력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다. 선수생활 하는 동안 블로킹 1위 자리는 빼앗기고 싶지 않다.”
양효진은 11시즌 연속 블로킹 1위와 개인 통산 블로킹 1202개를 기록했다. 이 또한 남녀 선수 통틀어 최초의 기록이다.
#영원한 은사, 홍성진, 고 황현주 감독
양효진이 현대건설 입단 후 처음 만난 감독은 홍성진 감독이었다. 홍 감독은 기본기가 부족한 신인 양효진을 혹독하게 몰아세웠다.
“오전 9시에 시작한 훈련은 12시 전에 끝나야 하는데 나 때문에 오후 2시까지 팀 훈련이 이어지기도 했다. 나로 인해 선수들이 점심도 못 먹고 기다린 것이다. 얼마나 미안하고 민망했는지 모른다. 울면 안 되는 팀 규율로 울지도 못해 화병이 생길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 현대건설에서 함께 생활했던 (한)유미 언니랑 그때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내가 독하게 그 상황을 견뎌내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말하더라. 어렸으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그때는 모든 걸 배우려고 노력했으니까.”
홍성진 감독이 양효진에게 기본기를 알려줬다면 이후 현대건설 사령탑을 맡은 고 황현주 감독은 양효진에게 속공 기술을 알려줬다.
“고등학교 때까지 기술적인 배움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공격 기술을 배울 때 몸은 힘들어도 보람을 크게 느꼈던 것 같다. 황 감독님은 상대 세터가 공을 토스했을 때부터 블로킹을 준비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덕분에 속공 성적도 좋았고, 블로킹도 그때부터 1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나한테는 홍성진, 고 황현주 감독님은 영원한 은사님이다.”
#슬럼프를 통해 배운 배구 인생
양효진 배구 인생이 순탄하게만 흐른 건 아니다. 그는 프로 10년 차 때 ‘그분’이 오셨다고 말한다.
“그 무렵 갑자기 배구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지면서 내 목표조차 불투명해졌다. 어렸을 때부터 배구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 그때 브레이크가 걸린 셈이었다. 하루라도 훈련을 안 하면 불안해했던 내가 그때는 훈련조차 멀리하고 싶더라. 엄마랑 통화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그 일 이후로 배구를 대하는 시점에 변화를 맞이했던 것 같다. 오로지 배구만 알았던 내가 배구 밖으로 눈을 돌렸고, 배구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부분을 통해 해소하는 방법을 배웠다. 물 흐르듯 흘러가게 놔두며 누가 이기는지 내적 싸움을 벌였는데 그렇게 시간을 보낸 부분이 도움이 됐다.”
양효진의 단점은 느린 발로 이동 공격에 약해 개인 시간차 공격에 의존한다는 부분이다. 양효진도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러나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운동했다가 부상 위험에 노출되느니 장점을 더욱 극대화하는 걸로 방향을 바꿨다고 말한다.
“현재 대표팀의 라바리니 감독님은 속공을 잘 때리고 외발 이동 공격을 잘하는 센터를 원하신다. 그런 부분에서는 내가 부족한 점이 많은 편인데 나이가 어렸다면 감독님의 눈에 들려고 안 되는 훈련 해가며 발버둥을 쳤을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해도 안 된다는 걸 알기에 혼자 부대끼기보다는 내가 잘하는 걸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7년 연속 연봉퀸에 올랐던 양효진은 아직 구단과 연봉 계약을 맺지 않았다. 이재영이 흥국생명과 FA(자유계약)를 맺으며 연봉 4억 원, 옵션 2억 원에 3년 계약을 맺은 터라 양효진이 어떤 형태의 연봉 계약을 맺느냐에 따라 ‘퀸’ 자리의 향방이 정해질 것이다. 양효진은 ‘연봉퀸’ 이야기에 슬며시 미소부터 짓는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